스카치위스키 업계의 ‘퍼스트레이디’이자 영국 위스키 매거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여성 마스터 블렌더, 그리고 한국 위스키 애호가들의 영원한 ‘누님’ 레이첼 배리(Rachel Barrie). 더 글렌드로낙의 울트라 프리미엄 라인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를 한경 <나인투나인>이 단독 인터뷰했다.
“지난해 더 글렌드로낙 리뉴얼과 새로운 미래를 알리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면, 이번에는 새롭게 출시한 울트라 프리미엄 라인을 소개하기 위해 방한했다. 한국은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나라다.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K-팝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는다. 특히 위스키, 그중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좋다. 더 글렌드로낙 입장에서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에 팬이 많다. 한국 위스키 애호가들은 당신을 ‘누님’이라 부른다.
“‘누님’이라는 표현은 작년에 처음 들었다. 귀여운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듯한 경험을 한다.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나 사진 요청을 받을 때면 여전히 어색하지만, 감사하다. 이번에도 사진만 수백 장은 찍은 것 같다.(웃음)”
- 여성이 흔치 않던 시절에 업계에 진입했다. 위스키업계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나는 더 글렌드로낙 증류소 인근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위스키 애호가였고, 더 글렌드로낙을 가장 좋아하셨다. 위스키가 일상일 만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대학생 때는 화학을 전공했는데, 어느 날 스카치위스키 연구소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문을 발견했다. 그때 위스키업계에서 일하게 될 것임을 직관적으로 느낀 것 같다. 그곳에서 짐 스완 박사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위스키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 좋은 위스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최고 위스키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다. 1차원적이지 않고 다차원적인, 복합적인 레이어를 지녀야 한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로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교향악단처럼 밸런스의 조합이 중요한데, 특히 피니시는 교향악의 피날레이기에 더욱 아름다워야 한다. 한 잔 더 마시고 싶게끔 유혹을 일으키는 위스키가 좋은 위스키라고 생각한다. 더 글렌드로낙을 마셔보면 알 수 있다.(웃음)”
- 마스터 블렌더가 가장 자주 마시는 위스키도 궁금하다.
“가장 오랜 시간 사랑하고, 또 늘 함께하는 위스키가 더 글렌드로낙 12년이다. 내게는 한 잔의 ‘포옹’처럼 다정한 술이다. 과일과 너츠, 초콜릿과 진저의 풍미가 조화로운데, 오랫동안 고수해온 우리 증류소의 캐릭터를, 그것도 합리적인 가격에 아주 잘 보여준다. 치즈를 곁들이면 맛이 더욱 풍성해지는데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연두부와의 페어링도 좋았다. 오렌지 주스와 체리 리큐어 등과 어우러진 ‘블러드 앤 샌드’ 칵테일도 더 글렌드로낙 12년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 지금까지 만든 수많은 위스키 중 최고 ‘명작’을 꼽는다면.
“어제 만든 위스키보다 오늘 만든 위스키가 좋고, 내일은 더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최근에 만든 위스키가 내게는 최고 ‘명작’이다. 그래서 지금은 더 글렌드로낙 30년이라고 말하고 싶다.”
“1992~1993년 빈티지에서 선택된 단 8개의 캐스크만을 블렌딩했다. 페드로 히메네스(PX)와 올로로소, 그리고 아몬티야도 캐스크의 조합이다.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매력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고 표현하고 싶다. 페드로 히메네스 특유의 체리, 건포도 등붉은 과일 향이 어우러지다 시나몬과 너트의 고소한 맛, 그리고 약간의 스파이시가 크레센도처럼 맛을 증폭시킨다. 마무리를 책임지는 건, 초콜릿과 헤이즐넛 크림을 연상시키는 디저트의 풍미다. 처음 입에 넣는 순간부터 마지막 여정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오크로 만든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패키지도 자랑하고 싶은데, 곧 한국이 큰 명절이라고 들었다. 귀한 분께 드리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 더 글렌드로낙 역사상 아몬티야도 캐스크를 사용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페드로 히메네스 캐스크가 굉장히 달콤하다면, 올로로소 숙성 위스키는 드라이하면서, 나는 신맛으로 표현하는 약간의 시트러스 풍미를 지닌다. 거기에 아몬티야도 특유의 크리미한 맛이 더해지며 풍미가 완결되는 마침표 역할을 한다.”
- 더 글렌드로낙 30년과 함께 21년과 40년 숙성 제품도 공개했다.
“21년은 한마디로 우아하다. 잘 익은 가을 과일의 우아한 향이 기분 좋게 하고, 오렌지와 베리가 내어주는 과일의 달콤함, 초콜릿과 진저 풍미가 입안을 즐겁게 한다. 반면, 40년은 더 글렌드로낙이 추구하는 완성도의 정점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킹 오브 셰리’라고 부른다. 깊고 복잡한 체리와 블랙베리, 조린 자두 등이 어우러지며 부드러운 시나몬이 가미된 초콜릿과 아로마틱한 카페 엘릭서 풍미까지 최상급 셰리 캐스크 숙성이 빚어낸 최고의 균형감과 복합성을 느낄 수 있다.”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의 정점! 누군가 더 글렌드로낙을 마셨을 때 ‘셰리 캐스크 숙성 싱글 몰트위스키는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
- 그러고 보니 당신은 ‘셰리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위스키 캐릭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캐스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셰리 캐스크는 대개 아메리칸이나 유러피언 오크로 만들지만 더 글렌드로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페인, 그중에서도 안달루시아 지역의 셰리 캐스크만 사용한다. 스패니시 오크 캐스크는 희소성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지만, 워낙 숨을 잘 쉰다. 거기서 나오는 천연 타닌의 강렬한 맛과 실키한 노트, 깊은 천연 컬러는 대체 불가하다.”
- 가장 좋아하는 셰리 캐스크는.
“페드로 히네메스 캐스크! 가장 귀하고 그만큼 비싸다. 캐스크를 만드는 데도 오래 걸리고 맛의 농축 또한 가장 진하다. 셰리 위원회에 따르면 더 글렌드로낙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페드로 히메네스 캐스크를 소비하는 증류소다. 약 6만 개의 셰리 캐스크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페드로 히메네스일 정도다.”
- 다른 위스키 브랜드에서는 전혀 새로운 캐스크를 사용하는 등 과감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더 글렌드로낙은 정통을 중요시하는 증류소다. 그래서 조금 보수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번 30년에 아몬티야도 캐스크를 사용한 것도 우리로서는 색다른 도전이었다. 물론 더 글렌드로낙도 소극적으로나마 실험을 한다. 보로도의 그랑 크뤼급 와인 캐스크에 숙성 중인 위스키 원액도 있다. 하지만 사용 범위는 1% 내외가 아닐까.”
- 앞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위스키가 있다면.
“스페인 세비야 지역에서 느끼는 감동을 위스키로 표현해보고 싶다. 뜨거운 태양과 잘 익은 오렌지·올리브, 플라멩코를 추는 사람들의 열정. 그런 것들을 어떻게 위스키에 담아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그러려면 역시 스패니시 셰리 캐스크를 사용해야겠지.(웃음)”
- 마스터 블렌더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만든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이 ‘레이첼 배리가 참 좋은 위스키를 만들었다’며 나의 여정을 기억해준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 찬사가 아닐까. 그런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고, 아직은 진행형이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이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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