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CJ 등 주요 그룹은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를 위해 핵심 자산을 활용한 전략적 재편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삼성생명·바이오 분할과 삼성물산 역할 확대를 통해 지배력 강화와 주주환원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IPO를 활용해 미래차 투자와 지배구조 개편 자금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CJ는 올리브영 합병을 통해 지주사 편입, 배당 확대, 오너 2세 체제 공고화 등 승계 구도를 완성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지배구조 재편 시나리오
핵심 쟁점은 삼성생명이 1970~1980년대 판매한 유배당 보험 상품이다. 당시 계약자들이 납입한 보험료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지분을 매입했고, 이는 40년이 지난 지금 막대한 평가이익으로 불어났다.
삼성생명 회계 논란이 개편 도화선
계약자와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구조였다. 2022년 기준에 따르면 계약자는 현재 138만 명 수준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고령층으로 계약자가 사망하면 배당의무도 소멸한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는 태도로 버틴다는 비판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다.
삼성생명은 유배당 결손이 1조 원에 달해 배당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실현이익만을 기준으로 한 계산일 뿐,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평가이익은 배제돼 있다. IFRS17이 도입된 현시점에서 실현이익만 고집하는 것은 국제회계제도의 근본 취지를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삼성생명이 다른 영역에서는 평가이익 기반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활용하면서 유독 배당만 실현이익을 내세우는 것은 회계적 일관성에도 맞지 않는다.
최근 금감원장과 한국 회계기준원 등이 요구하는 것은 유배당 계약자에게 배당 계획을 보험부채로 반영해 투명하게 공시하라는 것이다. 이는 한꺼번에 7조 원이 넘는 계약자지분조정 평가액을 배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가평가를 반영한 계획을 세워 분할 지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회사 재무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상황이 단순한 회계기준 해석 차이를 넘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그룹 지배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 당국의 압박 속에서 이 지분은 장기적으로 매각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중장기 매각 가능성을 검토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문제는 그 지분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다. 여기서 삼성물산의 역할이 부각된다. 삼성물산은 그룹 지주회사 성격을 띠고 있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분을 일부 흡수해 그룹 지배력 공백을 메울 가장 유력한 주체로 꼽힌다.
그렇다면 삼성물산은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첫째,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매각이다. 이는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 결정과 맞물린다. 삼성물산의 분할 후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는 약 21조 원 수준에 달한다. 이를 일부 매각하면 삼성전자 지분 매입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둘째, 에피스홀딩스 지분 매각도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다만 지주회사 특유의 디스카운트로 인해 매각 가격이 저평가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셋째, 삼성물산은 보유 자산 매각과 배당 축소 없이도 건설·상사 부문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통해 상당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금조달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삼성물산은 단순히 지배구조 보완자 역할을 넘어, 주주 환원 확대에도 나설 수 있다. 삼성물산은 내년 초 3개년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경우 삼성전자 지분 매입과 동시에 배당 확대도 병행할 수 있다.
결국 삼성생명 이슈는 보험 회사의 회계 논란을 넘어, 삼성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개편과 직결된다. 삼성생명이 버틴다고 해도 회계제도의 변화와 금융당국의 압박은 피하기 어렵다. 반면 삼성물산은 이를 계기로 그룹 내 위상을 강화할 수 있으며, 바이오, 반도체, 전자에 걸친 투자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동시에 주주 환원 강화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여지도 있다.
삼성생명은 단순히 한 보험 회사가 아니다. 삼성전자 지배구조의 약한 고리이자,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축이다. 그렇기에 이번 논란은 한국 자본시장과 지배구조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 결정은 단순히 사업부문 효율화를 넘어 그룹 지배구조 전환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삼성은 과거에도 자사주 매입·소각, 계열사 간 지분 정리를 통해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해 왔지만, 이번 바이오 분할은 사업적·지배구조적 목적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사건이다.
그러나 지배구조 측면에서 더 중요한 지점은 분할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여전히 두 법인의 지분을 과도하게 보유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통 주식 물량 부족으로 주가 상승에 유리하지만, 동시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간 직접 연결고리가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자사주 신주 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삼성에피스홀딩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회사 사이에는 지분 관계가 없다.
삼성전자 분할 가능성 되살아날까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사업적 명분’의 활용 가능성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은 CDMO와 신약 개발이라는 상충 영역을 분리한다는 사업적 명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지배구조 목적이 병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역시 같은 논리로 분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사, 혹은 투자 회사와 사업 회사로의 인적분할은 사업 효율성과 책임경영 강화라는 명분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이오 분할이 선례가 된다면 전자 분할 역시 ‘사업 목적’이라는 정당화 장치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도 실제로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 발표 직후, 삼성전자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이 재점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공식적으로 분사를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적 명분과 지배구조 목적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순간, 전자 역시 분할이라는 선택지를 꺼낼 수 있다는 시장의 의견이 존재한다. 파운드리 사업은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이어지며 TSMC와 격차가 크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0월 공개적으로 분사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투자 회사와 사업 회사로의 인적분할 시나리오는 여전히 잠재적 카드로 남아 있다. 그 경우 삼성전자는 투자 회사와 사업 회사로 분리되며,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해 투자 회사 지분을 최대 30%까지 확보해야 한다.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 분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향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 후 핵심 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 분할 후 주가 흐름이다. 매각을 검토한다고 가정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 상승이 유리하다. 둘째, 삼성생명 문제다. '보험업법' 개정 시 삼성생명은 보유 삼성전자 지분 7.6%를 매각해야 한다. 이는 오랫동안 지배구조의 약한 고리로 지적돼 온 금산분리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은 단순한 사업 재편이 아니라 지배구조 전환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상속세 완납과 금융계열사 규제, 글로벌 경쟁 환경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새로운 지배구조 설계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전환기 속에서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 대주주 지배력 강화, 미래차 중심 사업재편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현대자동차그룹은 모비스에서 모듈·사후관리(AS) 부문을 떼어내 글로비스와 합병하고, 대주주가 지분을 교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합병 비율이 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결국 무산됐다. 이는 향후 개편에서 ‘공정성’ 확보와 주주 설득이 핵심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과거 모비스의 분할 가능성 등이 거론됐지만 정공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현재 약 55%를 보유 중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직접 지분 21.9%를 들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일부 지분 매각으로 지배구조 개편 자금을 마련하는 시나리오다. 확보된 현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이나 상속·승계 비용 충당에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단순 자금조달을 넘어 미래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로봇 자동화 솔루션은 완성차 산업과 시너지를 내며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다.
CJ그룹 지배구조 재편의 핵심 변수, 올리브영
최근 2년간 CJ는 올리브영의 외부 지분을 정리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올리브영을 CJ 지주사로 흡수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올리브영이 지주사에 편입될 경우, 현금창출력이 지주사로 귀속되면서 배당 여력이 확대되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지적돼 온 지주사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동시에 경영에 참여 중인 이선호 경영 리더와 이경후 브랜드 리더는 올리브영을 통해 각각 지분과 그룹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며, 이는 오너 2세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합병은 또 다른 측면에서 승계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한다. CJ 주가는 2015년 이후 장기간 약세를 보이며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비용을 낮추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는 증여·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승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결국 올리브영 합병은 외부 지분 정리 이후 지주사 편입, 배당 확대, 자본 재배치, 그리고 오너일가 지배력의 안정화라는 일련의 단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합병 과정에서의 교환 비율 산정은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가장 큰 과제다. 과거 국내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합병 비율 논란은 주주 반발을 불러왔던 전례가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올리브영을 지주사로 흡수하는 합병은 CJ그룹 승계를 가장 깔끔하게 완성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지배구조 단순화와 지주사 가치 제고, 그리고 오너 2세 체제의 공고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다. 최근 이어진 올리브영의 실적 호조와 외부 지분 정리 과정은 이러한 로드맵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판단된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