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로보틱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한화로보틱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로보틱스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한화로보틱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5년 4개월 만에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매년 1월 2일 사내 방송을 통해 신년사를 직접 발표하는 모습 외에 한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 회장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연구개발) 캠퍼스에 이어 한화로보틱스 판교 본사를 잇달아 방문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한화그룹 사업 개편과 맞물린 시기에 김 회장이 주력 사업과 신사업을 각각 이끄는 두 아들(김동관 부회장·김동선 부사장)과 함께 현장 경영에 나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판 짠 한화, ‘김동관 중심’ 일관된 메시지

지난 4월 3, 5일 한화그룹은 지주사 격인 (주)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핵심 계열사의 사업 재편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주)한화는 건설부문의 해상풍력 사업과 글로벌 부문의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에 넘기고, 모멘텀 부문 태양광 장비 사업을 한화솔루션에 양도하기로 했다. 2차전지 장비 사업을 하는 모멘텀 부문은 (주)한화의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한다. 한화그룹은 일부 사업부에 대한 계열사 간 스몰딜을 추진해 사업군별 전문화를 통한 각 계열사 경쟁력 강화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주)한화 사업 구조 재편 전후 구조도. 사진=(주)한화
(주)한화 사업 구조 재편 전후 구조도. 사진=(주)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 개편 구조도.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 개편 구조도.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인적분할을 통해 비주력 사업을 분리하는 사업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한화비전·한화정밀기계를 인적분할해 신설법인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칭)를 설립할 계획이다. 항공기 가스터빈엔진과 자주포, 장갑차, 우주발사체, 위성 등의 사업은 분할 존속법인에 남기고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 한화비전·한화정밀기계를 보유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존속법인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순수 방산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되며,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한화비전의 보안·인공지능(AI) 솔루션, 한화정밀기계의 공작기계와 반도체 장비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분할 이후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한화비전과 합병할 예정이다.

이번 인적분할은 2022년부터 이어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 재편의 최종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11월 한화디펜스, 2023년 4월 (주)한화 방산 부문을 흡수 합병해 방산 계열사를 통합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한화오션을 인수하며 해양 방산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번 인적분할로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한화시스템 3사 중심의 방산기업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왜 자꾸 쪼개고 붙이나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현장 경영 재개와 한화그룹의 이번 사업구조 재편이 3세들의 승계 작업과 연결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 주력 사업인 방산·우주항공·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분야를,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유통·로봇 분야를 맡고 있다.

시장에선 향후 각자 맡은 사업을 나눠 담당하는 독자 경영 체제로 갈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번 김 회장의 현장 경영은 3세 경영 중간점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란 평가다.

사업구조 재편은 3형제간 승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업구조 재편으로 3형제가 담당하는 사업 영역이 정리되며 후계 구도가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차남 김동원 사장이 이끄는 금융 분야는 지분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만큼 이번 사업구조 재편의 핵심은 장남과 삼남의 ‘교통정리’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김동관 부회장이 ‘차기 총수’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이 강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부회장은 현재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주)한화·한화솔루션·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아울러 한화오션에도 기타비상무이사로 경영에 참여 중이다. 사업 재편으로 김 부회장에게 방산·항공우주·조선·에너지 등 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가 집중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 캠퍼스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 캠퍼스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또한 승계 균형도 어느 정도 맞춰졌다. 3형제간 사업영역 구분과 함께 각 사업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실적 규모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만큼 재계에선 삼남 김동선 부사장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왔다. 김 부사장이 형들보다 경영에 늦게 참여했지만 그가 맡은 유통사업 규모가 방산·항공우주·금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일 김 부사장이 (주)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부사장)에 선임되며 건설부문으로 복귀한 것도 장기적으로 건설분야가 김 부사장의 몫이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과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 한화로보틱스 전략담당 임원을 겸하며 그룹의 신사업 전략을 총괄했는데 그룹 내 역할이 추가된 셈이다.

이번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적분할로 신설되는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와 (주)한화에서 분할하는 한화모멘텀은 김 부사장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에 이어 로봇, 인공지능, 반도체 장비 등 신사업을 육성하는 임무가 맡겨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 한국 론칭을 주도한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가 흥행에 성공하며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유통부문 경영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3형제간 경영권 분쟁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 창업자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1981년 29세의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뒤 한화그룹을 재계 7위 대그룹으로 성장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은 바 있다.

부친이 50대 중후반에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형제간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아 김호연 회장이 1992년 형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반환청구소송을 냈고 그룹 분할 과정에서 수년간 법적 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3형제 (주)한화 지분 확대 과제

남은 과제는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주)한화 지분 확보를 통해 지배력을 높이는 일이다. 김승연 회장은 (주)한화 지분 22.6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김동관 부회장은 20여 년 전 동생들보다 1년 앞서 (주)한화 지분 매입을 시작해 현재 4.91%를 갖고 있다.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은 각각 2.14%씩 보유하고 있어 3세 지분이 아직 미미하다.

3형제의 (주)한화 보유 지분은 수년간 변화가 없었으나 김 회장의 배우자 고(故) 서영민 여사가 보유하고 있던 (주)한화 지분 1.42%를 2023년 3월 3형제가 0.47%씩 동일하게 상속받으면서 3형제의 지분이 확대됐다.

차남과 삼남의 지분을 합치면 4.28%로 김 부회장 지분율엔 못 미치지만 승계 과정에서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선 향후 3형제의 지분율 확대 및 형제간 격차를 벌리기 위한 추가적인 사업구조 재편이 예상된다.

(주)한화 지분을 늘리기 위한 ‘승계 지렛대’로 주목받는 회사는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다. 이 회사 지분은 김동관 부회장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씩 들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모회사 (주)한화 지분 9.7%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지분 비율에 주목한다. 장기적으로 장남 5, 차남과 삼남이 2.5씩 보유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형제가 향후 (주)한화 지분을 확대하기 위한 여러 시나리오 중 시장에선 3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와 (주)한화의 합병안이 거론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