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근무할 때는 제대로 휴가를 간 기억이 없다. 공장이 노는 날에 맞춰 전사가 공동으로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7월말부터 8월초까지로 휴가기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도 노사협의 사항이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기까지는 어떤 계획도 세우기가 어렵다. 직책이 높고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은 그마저 누리기가 쉽지 않다. 교대로 나와 비상근무도 해야 하고, 공장 고치는 일 감독도 해야 하고, 또 상사가 회의라도 하자면 나와야 한다. 모든 것을 뿌리치고 쉰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일년 내내 제대로 쉬지를 못하는데 일주일도 안되는 휴가마저 맘대로 못쉰다는 사실이 늘 나를 좌절케 했다.얼마전 검찰 고위간부가 대낮에 폭탄주를 먹고 실언을 한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군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폭탄주는 세간의 비난도 아랑곳않고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사장과 회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최고 학벌을 자랑하고 이성적이고 능력있는 사람이 폭탄주를 돌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폭탄주를 저렇게 합리적인 사람이 무슨 이유로 돌리는 것일까. 폭탄주는 짧은 회식시간에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탄생했다. 어차피 취하자고 먹는 것, 빨리 먹고 취하자는 것이다. 폭탄주가 유행하는 조직을 보면 대개 시간여유가 없고 팍팍한 조직이다.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면서 술 마시고 취하기에는 너무 바쁜 것이다.유명한 관광지를 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장면 중 하나가 단체로 놀러온 아주머니들의 춤판이다. 관광버스를 탈 때부터 시작해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잠시도 쉬지를 않는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노래에 맞춰 흔들어대고…. 조용히 바깥 경치를 즐기면서 생각에 잠기는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노래방 기계가 차에 설치된 이후에는 버스 안에서의 노래와 춤은 훨씬 그 농도가 진해졌다.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극성스럽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해는 된다. 제한된 시간에(일년에 단 한번, 그것도 겨우 이삼일) 많은 스트레스를 풀자면 저렇게 극렬하고 효율적으로 놀아야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새로운 회사의 경영을 맡으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 중의 하나가 근무일수다. 업종 자체가 지식산업이다 보니 근무시간에 실적이 비례하지 않고 충분한 휴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직원들의 애로사항 넘버원이 바로 과도한 근무시간이었다. 토요일은 나와봐야 하는 일도 없는데 괜히 나와 시간만 죽이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약간의 리스크는 있었지만 주 5일로 바꾸었고 결과는 좋았다. 무엇보다 소신껏 일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일 때문에 주말에 나오더라도 머리가 맑았다. 주 5일로 바뀐 후 6일 근무에 비해 생산성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휴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휴식없이 일만 하는 것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것과 같은 파괴적 행위다.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날 수도 있지만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폭탄주나 관광버스 안에서의 난장판 춤은 모두 짧은 휴식과 급한 성격이 낳은 결과물이다. 여유가 없다보니 잠시라도 틈이 나면 화끈하게 놀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유가 생기면 저절로 없어질 문화적 산물이다. 휴식은 게으름도 낭비도 아닌 재충전을 위한 필수적 투자다. 휴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참다운 휴식에 대해 음미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