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367배 커진 ETN 매력은
개설 1년을 맞은 상장지수증권(ETN)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저금리 시대의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ETN이 투자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11월 16일 현재 ETN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403억7000만 원으로, 지난해 11월 17일 시장 개설 당시(1억1000만 원)보다 367배 정도 늘었다. 상장 종목은 61개로 시장 개설 당시 10개 종목에서 1년 새 51개 종목이 늘었다. 발행 총액은 1조6000억 원으로 개설 당시(4700억 원)보다 1조1300억 원 증가했다. 한국보다 앞서 ETN을 시작했던 일본은 개장 1년 후 순자산 규모가 600억 원에 그쳤고 4년이 된 지금까지도 1조5000억 원 규모에 머무르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성장세를 보인 셈이다.
ETN은 기초 지수의 변동 폭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된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지만 발행 및 운용 주체가 자산 운용사가 아닌 증권사라는 점이 다르다. 또 ETF는 기초 자산에 10종목 이상을 담아야 하지만 ETN은 최소 5종목으로 구성할 수 있어 보다 다양하게 상품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증권사의 촘촘한 호가 관리가 ETN의 큰 매력이다. ETF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추적 오차나 괴리율이 ETN이 훨씬 적다. 실제로 거래량이 적은 ETF는 수익이 나더라도 사는 사람이 없어 꽤 큰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할 때가 있지만 ETN은 현재까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주식뿐 아니라 채권·원자재·외환까지
상품 구성이 다양화한 것도 ETN의 장점이다. ETN은 출범 초기부터 ETF와 차별화하기 위해 코스피200과 같은 기초지수를 사용치 못하게 했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ETN은 업종 대표 5개 종목만 압축 투자하는 톱5지수, 거래소가 구분한 업종이 아닌 테마별로 투자하는 테마주지수, 월간 상승률이 높았던 11개 종목을 담는 월간 베스트(Monthly best 11) 등 자체 개발해 운용하는 상품이 많다. 또한 ETN은 ETF보다 운용이 자유로워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원자재·선물 등 다양한 기초 자산으로 하는 상품이 도입됐다. ETF 시장에는 없는 위안화 국채 ETN, 코스피200선물과 미국 달러 선물을 동시에 매매하는 ETN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인버스(지수 하락 시 플러스 수익 추구)와 모멘텀, 스마트 베타(액티브+인덱스), 리스크 컨트롤(목표 변동성 기준 주식 편입 비율 조절) 등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상품이 상장됐다. 이와 함께 주식뿐만 아니라 해외투자 수요 증가에 중국과 유럽·미국 등 투자 대상 지역도 확대했다.
내년에는 레버리지 ETN, 변동성지수 ETN, 주가연계증권(ELS)을 장내 매매할 수 있도록 만든 ETN 등이 새로 상장된다. 변동성지수 ETN는 주가 상승과 하락의 방향과 관계없이 시장 진폭이 커질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다. ELS형 ETN은 아직 논의 초기 단계지만 손실 제한형, 목표 수익형 등이 구상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전략이 ETN을 통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ETN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계좌가 526개에서 3822개로 7배 늘어나면서 시장 저변도 넓어졌다. 주목할 사실은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이 유동성 공급자(LP) 역할을 하지만 시장의 성패를 가늠하는 지표는 역시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 정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50.1%를 기록했던 개인 거래 비율은 올해 3월 55.6%, 지난 8월 57.0%를 기록하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반대로 LP 거래 비율은 지난해 11월 49.7%에서 올해 3월 44.1%, 8월 42.8%를 기록해 낮아졌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 비율이 지난 8월 이후 꾸준히 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시장 개척이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12월 2일 기준으로 어떤 ETN 상품이 가장 높은 수익을 냈을까. 많은 상품들이 올봄쯤 출시됐기 때문에 최근 3개월 수익률을 보면 국내 주식을 기초로 하는 상품 중에선 ‘옥토 하드웨어 톱 5 ETN’이 23.17%로 가장 높은 수익을 냈다. 또한 ‘옥토 화학 톱5 ETN(22.95%)’, ‘삼성 화학 테마주 ETN(21.28%)’, ‘옥토 자동차 톱5 ETN(19.14%)’ 등이 뒤를 이었다. 원자재 및 해외 지수를 기초로 하는 상품 중에선 ‘신한 인버스 브렌트원유 선물 ETN(20.25%)’이 톱이었다. ‘신한 인버스 WTI원유 선물 ETN(15.30%)’, ‘신한 인버스 구리 선물 ETN(11%)’이 그다음이었다. 만약 투자자가 현재 발생 중인 유가 하락세에 베팅하면서도 수개월 후 업황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국내 화학업에 투자했더라면 3개월 동안 20%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15.4% 배당소득세는 아쉬운 부분
물론 ETN도 약점은 있다. ETN은 기본적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채권 상품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 부도 시 원금을 잃을 수 있다. 또 만기가 있기 때문에 해당 상품이 사라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경우 갑자기 상품이 사라지면 그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ETN 시장은 상위 3개 증권사가 만든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거래 대금 중 90%에 달한다.
세제도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해외 ETF와 ETN은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고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ETF는 내년부터 시행될 해외 비과세 펀드에 해당돼 당분간 주식 매매 차익과 환차익에 대해 세금이 면제된다. 거래소는 해외 비과세 펀드의 시행 기간이 끝나더라도 국내 ETF가 세제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일반 펀드와 세제가 다른 투자 회사형 ETF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ETN은 형태상 증권사가 발행한 채권이기 때문에 내년부터 시행되는 해외 펀드의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국내 주식형 ETN은 국내 주식형 ETF와 펀드처럼 비과세되지만 새로운 세제 혜택이 나올 때마다 ETN의 입지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TN은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라는 점, 장기 투자(변동성 적음)와 단기 투자(증권거래세 면제) 등 모두에 적합하다는 점, 투자자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시장이 앞으로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020년까지 순자산 총액을 5조 원대, 상장 종목 수도 200개로 늘릴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외국계 증권사들을 국내 ETN 시장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이렇게 되면 상품이 한층 다양화돼 더 많은 고객이 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