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 team]태평양, 상속 자문·송무의 툴 제시하다
상속 문제는 일반적인 소송처럼 승자와 패자로 가를 수 없는 가족의 문제다. 계산기를 두들기고, 법전 문구를 뒤지기에 앞서 가족 간 상처를 최소화하는 현안 해결의 툴(tool)이 제시돼야 한다는 게 태평양의 생각이다.

상속 문제는 주로 절세의 측면에서 다뤄져 왔지만 세금 문제를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오로지 남는 것은 가족이다. 이복형제로서의 서러움, 딸들의 소외감, 재혼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 등 지나온 세월에 대한 한풀이 성격이 짙은 것이 바로 상속 문제이기 때문이다.

1980년에 설립돼 변호사 386명을 포함해 외국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약 529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대형 법무법인 태평양이 상속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2013년 가사팀의 설립이었지만, 그 근간에는 산업화 1세대의 고령화, 가족관계의 다변화 등으로 인한 고객들의 요구가 컸다.

태평양의 모토는 ‘절세는 상속 분쟁 예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함을 전제로 추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절세’라는 잣대 이전에 ‘가족’이라는 대명제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2013년 출범한 가사팀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임채웅 변호사가 이끌고 있는데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곳은 미국의 일류 로펌인 크라바스(Cravath, Swaine&Moore)나 스캐든(Skadden, Arps, Slate, Meagher and Flom LLP)에서 운영하고 있는 ‘신탁과 유산팀(Trusts and Estates)’이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국내와는 달리 미국 대형 로펌의 경우 신탁과 상속을 아주 밀접하게 다루고 있으며, 전문적이고도 체계화된 자문 능력으로 상속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태평양 측의 귀띔이다.

가사팀이 순수한 의미의 상속 분쟁 예방과 송무 분야에 주력한다면 2015년에 출범한 가업승계팀은 가사팀을 포함해 조세·기업법무·공정거래·증권금융·형사팀 등 다양한 전문 팀의 협업을 통해 기업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가족주주 간 또는 제3주주와 상속인 간 경영권 분쟁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상속 방정식, 프로그램으로 푼다
속된 말로 상속 자문이 완벽하다면 그만큼 소송이 줄게 될 것이고, 로펌 입장에서는 수입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평양은 불필요한 상속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문 영역을 좀 더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선결 과제가 있다. 복잡한 숫자들을 정확히 제어해야 하는데 가사팀에서는 ‘상재분할’이라는 상속재산 계산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 부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임채웅 변호사가 서울가정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임했을 당시 업무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상속분과 유류분 부족분을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게 가사팀의 설명.

장성순 변호사는 “상속재산 계산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상속인들이 과거에 받았던 재산들을 상속 개시 시점의 가치로 평가해야 하는 ‘특별수익’이라는 개념 때문이다”라며 “상속재산을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 툴을 활용해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단순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숫자를 제어하게 되면 그때부터 각 요소의 성질이 이해되고, 보이지 않던 다른 게 많이 보인다”라며 “우선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는데 상속인들에게 얼마의 상속재산을 인정해주면 그 이후 어떻게 재산이 분배되는지 정확히 결과를 알 수 있어 상속인 간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숫자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 상속 현안의 해결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보다 충실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사팀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가사팀은 섭외사건(당사자, 법률 행위 등이 발생한 지역 등이 여러 국가에 걸쳐 있어서 어느 나라의 법을 적용할지 문제가 되는 사건)에 있어서도 다른 로펌과 차별화한 툴을 갖추고 있다.

태평양은 국내 로펌으로 처음 중국 베이징(北京)과 두바이에 해외사무소를 개설하고, 중국 상하이, 홍콩,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시티 사무소를 포함해 총 6개의 해외사무소를 보유하는 등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린 로펌이다. 이 같은 저력을 토대로 상속과 관련된 섭외 소송에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섭외사건의 상당 부분은 일본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과거 한국에 재산을 둔 피상속인의 사망 전후 또는 몇 세대가 지난 이후 재산 처리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재일교포 중 연로하신 분들이 한국에 와서 여생을 보내려고 하면서 일본에 있는 자식 세대와 상속재산을 놓고 갈등을 빚으며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미국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3개 주(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로스앤젤레스(LA)와 샌디에이고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에 사건이 집중돼 있다.

임 변호사는 “태평양은 실무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킹을 확고히 구축하고 있으며, 현지 로펌과의 협업을 통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섭외사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상속은 한풀이, 동반자 돼 품다
미국 국적을 가진 김 모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한국의 한 재력가의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버지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왜 머나먼 타국에서 가난하게 숨어 살게 됐는지와 늦게나마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남편을 여의고 어렵게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박 모 씨는 남편의 형제들이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한 과정에 의문을 품었다. 결국 형제들이 취득한 특별수익을 찾으려 로펌에 문을 두들겼고, 형제들이 과거 아버지로부터 받은 토지가 재개발, 재건축이 돼서 전혀 다른 주소지로 바뀐 것을 일일이 찾아내 법원에 사실조회 등을 거쳐 상속재산의 규모를 추산할 수 있었다.

임 변호사는 “상속 분쟁은 그동안 꾹 눌러두고 있던 감정들이 일시에 폭발하며 일종의 한풀이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가족 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고 전했다.

상속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때때로 법률 자문보다는 상속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동반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가사팀 일원들의 제언이다.

부광득 변호사는 “고객을 직접 방문해 유언장을 받으면서 이를 동영상으로 찍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한번은 유언장에서 특정 자녀를 배제하려고 해 이들 가족관계의 내용이나 속사정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며 “상속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자료들보다는 그 가족의 내부적인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화 변호사는 사전 상속 플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자산가의 경우 건강하게 사업을 운영하다가 갑자기 어린이 지능으로 퇴화하며 문제를 겪었다”며 “당시 자식들에게 재산권을 준 부분이 피상속인의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겪어야 했는데 사전에 상속 플랜을 짜 놓았다면 가족 간 불화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임 변호사는 “앞으로는 상속 자문을 강화해 최근 주목받는 유언대용신탁이나 성견후견제도 등의 활용 방안과 상속 협상 모델 제시 등 보다 심플하고 체계화한 틀을 만들 것이다”라고 밝혔다.
[money & team]태평양, 상속 자문·송무의 툴 제시하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