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감정노동자 보호법' 통과…전 산업계 확산까지는 시간 걸릴 듯
산업의 발달에 따라 노동 형태도 변했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삼차산업이 등장하면서 육체노동·정신노동 외에 ‘감정노동’이 새롭게 추가됐다.감정노동이란 개념을 처음 소개한 이는 앨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다. 혹실드 교수는 1983년 자신의 저서에서 “감정노동은 타인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고무하거나 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2015년 환경노동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감정노동자는 560만~740만 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1~41%를 차지한다. 2013년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실시한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 실태 조사’를 보면 감정노동자들은 인격 무시와 욕설 등 폭언, 신체적 위협, 성희롱 등에 시달려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릇된 인식 교정 역할 기대
금융회사 콜센터 및 창구에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5개 법안이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여신전문금융업법·자본시장법·보험업법·상호저축은행법·은행법 개정안 등이다. 이들 법안에는 2015년 7월 김기식 의원(더불어민주당·정무위 간사)이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발의한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
금융노조를 비롯해 업계 관계자들은 개정안 통과에 박수를 보냈다. 그동안 갖은 언어폭력에 노출돼 온 근로자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침내 마련됐기 때문이다.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감정노동에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어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게 지금까지의 상황”이라며 “이번 법을 계기로 회사 차원에서 직원을 ‘블랙 컨슈머(악의를 갖고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된 법안은 금융회사에 대해 상담 직원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 폭행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와 상시적 고충 처리 기구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는 이른바 ‘감정노동자’로 표현되던 고객 상담 직원에 대한 기업의 보호 의무를 확인한 것으로, 향후 해당 근로자들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고객 상담 업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업계 종사자들부터 개정된 법안의 혜택을 우선적으로 받게 됐지만 비금융 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기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무위원회 법안만 본회의를 통과했고 환경노동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은 통과하지 못해서다.
2015년 5월 황주홍 의원(국민의당 전남 강진·고흥·보성·장흥)이 발의한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현재 계류돼 있는 상태다. 국회법에 따르면 19대 국회 임기 만료 시점인 5월 29일까지 해당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폐기되므로 사실상 회기를 마친 이번 국회에선 물 건너간 셈이다.
한편 개정안은 법무부의 의견을 반영해 ‘형사 고발 또는 손해배상소송 등 필요한 법적 조치’는 삭제된 상태로 처리됐다. 법무부는 “사인이나 법인에 대해 형사 고발을 의무화한 경우는 없다”면서 “근로자 본인의 고소 의사와 무관하게 회사에게 고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근로자의 고소권 등 침해가 우려된다”며 이 같은 수정 의견을 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옳지만 회사에 그 고발을 의무화하는 것은 지나치다” 고 지적했다.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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