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국회, 한일 위안부 합의 존중해야 하는 이유
(일러스트 김호식)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오는 5월 30일 개원하는 여소야대의 20대 국회는 개원 전부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해 벼르고 있다. 하지만 외교정책은 한국 사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국과 그 국민들이 있고 지켜보는 국제사회도 있는 만큼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외교 사안 가운데 하나가 일본군 성노예 정부 간 합의다. 국회 개원 즈음에 그 합의의 이행 조치로 재단이 설립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합의안을 발표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일본은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도의적’ 차원에만 머무르는 사과가 아니라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며 일본 정부 최고 수장인 아베 신조 총리가 사죄를 표명해 일단 사죄와 책임 인정 대목에서는 ‘통과’로 판정 내리는 분위기다.

10억 엔 수준의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재단을 출연해 다양한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2012년 있었던 민간 모금과 정부 예산을 섞어 의료복지 지원과 위로 사업에 썼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일본 정부는 이상 말씀 드린 조치를 한국 정부와 함께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일본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일본 측의 말이다.

한국 장관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는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고 했다. 또한 동일한 전제로 일본과 마찬가지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불가역적 해결’은 피해 당사자들을 대신해 정부가 할 수 없다며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가 정부 차원에 국한해 이뤄진 약속이라고 제한하면서 당사자 차원이나 역사적 해결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했다.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판 자제도 민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설립의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정부도 전시 성폭력의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국제사회의 논의에는 계속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하게 첨가된 것은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 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한국 외교 장관의 말이다.

한국 정부는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즉각 소녀상 이전은 합의한 것이 아니며 정부가 협의는 하되 강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되풀이했다. 소녀상 언급은 협상 당시 한국 측이 포함하지 않도록 버텨냈어야 하는 대목이다.

합의문 내용에 대해 불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합의문이 필요했다는 점에서는 한국 정부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양자 간 외교 현안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91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제기되면서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한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걸고 외교전을 펼쳤는데,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 일체화를 추진하면서 오히려 한국을 고립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 한국은 일본군 성노예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됐고 아베 총리도 한일 국교 수교 50주년을 맞는 작년을 넘기기 전에 미국이 종용하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것이다. 강경 노선을 달리던 양국 정상이 난제였던 성노예 문제에 대한 정부 간 타결을 역설적으로 하게 된 셈이다.

합의안 발표는 장관들의 구두 발표라는 형식이지만 여느 정부 문건 만큼 외교적 비중이 크다. 한국 측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1993년 발표된 ‘고노담화’도 당시 관방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착실한 이행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합의문은 약속이 파기되면 서로에게 책임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합의문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국이 먼저 약속을 깨는 것은 우리에게 손해다. 한국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곧잘 비판하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