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사양산업으로 내모는 교육정책
(일러스트 김호식)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요즘 한국에서 잘나가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가 오리온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며 2004년 10만원 하던 주가는 2012년 100만원을 돌파했고 시가총액은 40년 전에 비해 약 7900배 가까이 늘어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만약 오리온이 내수에만 머물렀다면 저출산으로 위기의 사양 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리온은 감원을 하고 생산량을 줄여 사업을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수한 인재들은 회사를 떠나고 규모의 경제에서 뒤처지며 성장은커녕 연명에 연연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리온은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혁신을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의 해결책이 구조조정과 사업 축소라고 우기는 영역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이다. 최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대한민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고용률은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졸자 중에서 취업과 학업을 포기한 소위 ‘NEET(일하지 않고 교육이나 취업을 위한 훈련을 받지 않는 무직자)’ 청소년 비중도 위기의 남유럽 국가와 함께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수위권이다.

그리고 노동시장 규제인 비정규직 보호 법안에 따라 2년 미만의 초단기 고용 기간의 취업자 수가 OECD 평균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고용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분노한 청년들은 ‘헬조선’이라고 하고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며 사회를 원망한다.

그런데 대학의 정원은 고등학교 졸업자를 초월하는 상태로 공급과잉이고 학생 수는 계속 줄어만 가고 있다. 특히 산업의 수요와 동떨어진 대학의 전공별 정원으로 비공대생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다 보니 교육부가 들고나온 것이 거창한 이름의 ‘프라임(PRIME : 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이다.

결국은 교육부의 재정 지원을 미끼로 정원 축소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평가에 자신이 없는 대학들은 사업에 응모하지 않고 응모하더라도 탈락하다 보니 소위 좋은 대학들의 정원은 줄고 그렇지 못한 대학들의 정원은 유지되는 역선택의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앞서 말한 소위 망하는 구조조정의 전형이다. 교육이 망한다는 것은 결국 교육의 질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을 보면 교육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주요 대학의 학생 정원은 3만~5만 명인 곳이 많다. 한국보다 인구가 아주 적은 대만의 대만국립대 학생은 3만8000명에 이른다. 그에 비해 한국 명문대의 학생 정원은 1만 명 남짓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대학의 교직원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좋은 교수와 전문적인 직원을 둘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이 질적인 경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교육부의 온갖 규제가 원인이다. 우선 수도권 대학들은 수도권 인구 과밀화 규제 법안의 인구 유발 기관으로 지정돼 정부의 그 누구도 정원을 늘려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질 나쁜 교육을 하는 대학이더라도 정원이 보장되고 늦게 만들어진 대학은 아무리 질 좋은 교육을 해도 학생을 더 뽑을 수 없다.

또 하나는 등록금에 대한 획일적 규제다. 많은 나라에서 등록금의 규제와 공교육의 등록금 보조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주립대학들은 해당 주의 주민과 외지의 학생에게 크게 차이가 나는 등록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호주에도 정부의 등록금 규제가 있고 등록금의 75%를 정부가 대고 있다.

하지만 외국 학생들에 대한 정원이나 등록금 규제가 없다 보니 좋은 대학들이 해외 학생 유치를 위한 품질 경쟁을 통해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규모를 유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등록금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

또 하나는 터무니없는 평가의 잣대다. 작년 기준으로 미국에선 4726개 대학 중 소위 연구 중심 대학이 115개로, 2%의 대학만이 연구를 하고 있다. 나머지 98% 대학의 교수들은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연구 중심 대학에는 연구 자원이 집중되다 보니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은 모두 획일적 잣대로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연구를 위한 연구,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는 ‘실적 채우기 용인’ 연구가 만연한다. 교육이든 상품이든 시장이 선택하게 해야 발전한다. 교육부가 죽어야 대학과 대한민국의 교육이 산다는 것을 프라임 사업이 또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대학을 사양산업으로 내모는 교육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