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해지는 자신을 스스로는 왜 모를까. 오만하지 않고 살 방법은 없는 걸까. 정신의학에서는 오만이 과도해질 경우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진단하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박한선 선생은 오만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오만은 항상 상당한 어리석음과 관련돼 있다. 오만은 늘 파멸의 한 걸음 앞에서 나타난다. 오만해지는 사람은 이미 승부에 지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철학자 카를 힐티(Carl Hilty)의 말이다.
자랑, 허세, 교만, 오만 등으로 표현되는 심리적 특성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가치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내적인 경향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성격 경향이 과도하게 나타날 경우에,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진단을 붙이기도 한다. 어떤 특정한 성격에 ‘정신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임상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분명 평균보다 훨씬 ‘오만’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신과 외래에 제 발로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보통은 이들의 오만과 독선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찾아온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정신의학적 진단 체계(DSM-IV-TR)에 의하면,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다한 느낌, 자신이 이룬 성취나 재능에 대한 과장, 우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끝없는 성공과 권력, 명성에 대한 갈구, 과다한 존경과 특혜의 요구, 그리고 이를 위해서 타인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 등으로 정의 내려진다. 그런데 일부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성격 패턴은 기업의 오너나 중역, 정부의 고급 관료,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오만함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갖추어야 할 필요악일까.

사실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리더십과 흔들림 없는 추진력은 아주 유용한 능력으로 간주된다. 특히 혁신과 도전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창업자 집단에서는 어느 정도의 오만과 독선이 종종 ‘애교’로 취급되기도 한다.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말한 것처럼 기존 가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 소수(the creative minority)에게 있어서 강한 자신감과 내적 확신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는 종종 지독한 오만과 고집 센 독선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창조적 소수가 큰 성공을 거둔 후 점차 지배적 소수(the domi- nant minority)로 전락해 가는 과정이 이른바 휴브리스(hubris)에 의해서 일어난다. 토인비가 말한 휴브리스란, 성공한 사람이나 집단이 과거에 이룬 성공의 경험이나 방법론을 우상화하는 심리적 경향, 즉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의 오만과 독단을 일컫는 말이다.


오만은 자기애적 인격장애
그러면 이러한 병적인 오만함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인간은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기 때문에, 그러한 관계 속에서 몇 가지 원초적인 욕구를 가지게 된다. 첫째,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서 자기 안으로 융합하려는 욕구, 둘째,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다. 이를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이상적 자기와 과대 자기라고 했다. 만약 부모에 대한 이상적 자기가 충분히 내재화되지 못하거나 혹은 타인으로부터 충분한 이해와 칭찬을 받지 못하면 자기애적 인격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적절하게 공유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바람, 즉 공감의 욕구가 있다. 코헛은 이러한 자기 대상관계가 적절하게 성장하지 못하면 성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이상화된 부모가 적절하게 내면화되지 못하면 무의미한 단기적 결과에 연연하며 성과주의에 집착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충분한 칭찬과 인정 욕구가 좌절되면 끊임없이 자신을 과대하게 여기고 과시하려는 유아적 욕구가 지속될 수 있다. 한편 공감과 교감의 욕구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타인의 느낌과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즉 자신만이 옳고 잘났으며, 늘 눈에 보이는 단기 목표에 매달리고, 이러한 근시안적 태도 속에서 타인은 단지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오만함과 독선이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일약 유명인의 반열에 오른 스타 경영자의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소개되고는 한다. 그들은 혁신적 아이템을 가지고 공격적 사업을 성공시켜서 짧은 시간 내에 조직을 크게 성장시키고, 본인 스스로도 큰 부와 명예를 얻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담을 잘 들어보면 흔히 우연한 행운이 남다른 능력으로, 부당한 마케팅이 기발한 전략으로, 강요된 초과근무가 자발적 노력으로 미화돼 있고는 한다. 그들의 과거는 온통 자기자랑과 허세로 가득하다.



일부러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하직원은 모두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고, 고객은 자신의 놀라운 혁신에 감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변의 조언과 위기 신호도 먹힐 리가 없다. 주변에서 용기를 내어 조언을 해주어도, 오히려 자신의 권위나 명예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몹시 불편해하며 앙심을 품게 된다. 점차 모두가 입을 다물게 된다. 다행히 일이 잘 되고 있을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붙어 있겠지만 한번이라도 삐끗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러한 오만과 독선에 빠진 사람이 집단의 강력한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되면, 집단 전체가 비슷한 심리적 경향으로 점차 동화되는 병적 현상이 일어나고는 한다. 집단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리더와 다른 의견을 견지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자기애적 인격을 가진 리더는, 사실 타인의 의견 따위에는 거의 아랑곳하지 하지 않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집단 전체의 방향과 태도가 왜곡되게 된다. 집단의 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급속도로 성장한 신생 조직일수록 리더의 개인적 역량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토인비는 휴브리스에 빠진 집단 전체가 이내 코로스(Koros), 즉 도덕적 균형의 상실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코로스 상태에 이른 집단은 곧 아테(Ate), 즉 파멸에 이르게 된다. 오만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에 의해서 결국 처벌당하는 것이다. 창조적 혁신을 통해서 신속한 성공을 이룬 집단이, 결국 똑같은 에너지에 의해서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선과 아집, 오만으로 가득한 인물, 그리고 그 집단이 종종 혜성같이 나타나 유례없는 큰 성공을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빈도의존성 선택(frequency-dependent selection)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생태계에서 소수 전략(minority strategy)을 취한 개체가 크게 번창하는 현상을 말한다. 앞 페이지 그림과 같이 온통 오른쪽으로만 비늘을 뜯는 집단에서는, 왼쪽으로 뜯는 개체가 큰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다. 왼쪽과 오른쪽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 물론 과감하게 색다른 시도를 한 것은 칭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단지 시대의 흐름을 잘 탄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한 번의 성공으로 우쭐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자연계에서 흔히 관찰되는 빈도의존성 선택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특정한 개체가 취한 소수 전략이 성공해 점차 집단의 지배 전략으로 굳어지면, 기존 전략은 선택적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혁신적 전략은, 오늘의 고식적 전략으로 변모한다. 기존 전략을 고수하는 집단은 결국 도태되고 만다. 하긴 그래서 또 다른 창조적 소수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성공을 거둘수록 거의 필연적으로 점점 오만해지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 성공한 사람이 끝까지 계속 승리하고, 후발 주자가 역전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서 빠져나오라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부적절한 휴브리스를 일으키는 상황적 요소는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자기애적 성향, 둘째, 과거의 성공, 셋째, 무비판적 주위 칭찬의 수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칙이나 제도를 무시하고 내리는 결단이나 실행이다. 매튜 헤이워드(Mattew Hayward) 등의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경향과 현실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허황된 결정, 그리고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태도가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업이 대중매체에 자화자찬식 기사를 내보내거나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휴브리스의 징조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만 좌우된 것이 아니다. 주변의 도움이나 어느 정도의 운, 우연한 기회 등이 잘 만나면 한두 번은 크게 인정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자신이 그동안 해 온 방식이 반드시 옳았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기막힌 혁신적 방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 계속 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기업, 더 나아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빠져나와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얼른 적응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토인비는 세상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발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달콤한 열매는 전체 구성원이 모두 나누어 먹는다. 우리가 유능한 리더를 칭찬하고 존경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잔뜩 오만해져서 자기기만과 독선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아집에 빠진 리더가 전체 집단을 파멸로 이끌고, 결국 모두가 그 피해로 인해 고통 받는 일도 적지 않다. 운 좋게 큰 성공을 이루었다면 보다 겸손한 태도로 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새로운 위치와 상황에 걸맞은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겸손한 자만이 애써 얻은 성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박한선 정신의학자·신경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