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POLITICS-경제법안 톺아보기]
{더민주당 ‘가계부채TF’ 첫 법안 발의 예정…박병석·제윤경 의원 주축}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악성 채권자들에게 시달려 온 채무자들을 구제하고 가계 부채를 줄일 수 있는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한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내건 ‘가계 부채 경감’ 공약의 일환으로 지난 6월 2일 출범한 가계부채태스크포스(TF)가 발의하는 첫 법안이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은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했지만 회기 만료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번엔 TF 차원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다시 발의할 예정이다.
“죽은 채권은 죽은 채로 놔둬라”
(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 6월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 가계부채TF 출범식 모습. 왼쪽부터 김영주·우상호·정세균·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당시 박 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민법·상법 등의 규정에 의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은 채권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잘 알지 못하거나 법률 지식이 없어 채권 추심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채권 추심자가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채권을 헐값에 대량으로 매집한 후 무분별한 채권 추심을 일삼고 있어 소비자 보호에 역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부업자 등 채권 추심자가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추심하는 행위와 채권 추심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채권을 양도 또는 양수하는 행위를 법으로 일절 금지하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대출 채권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때부터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채무자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 대해 변제 의무가 없다. 하지만 법원의 지급명령이 있거나 채무자 스스로 변제하는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부활한다.

◆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대부 업체

바로 이 점을 노려 일부 금융회사로부터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매입한 대부 업체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단돈 1만원이라도 입금하면 원금의 절반을 감면해 주겠다는 식으로 채무자를 꼬드겨 시효를 되살리곤 했다.

죽은 채권을 부활시킨 대부 업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권 추심에 들어간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신용 정보 회사 대표라고 거짓으로 소개하는 것은 물론 법무사·법원집행관·소송대리인 등으로 신분을 속이거나 이들 명의로 채무독촉장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불법 채권 추심 신고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소폭 증가한 900건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총 3197건으로 집계됐고 2014년에는 총 3090건이 접수됐다.

김상록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채권 추심자가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고 채권 추심을 계속하거나 검찰 직원 등을 사칭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채무 미납에 따른 불이익, 도의적 책임 등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가족이나 친지에게 변제를 유도하더라도 절대 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 인터뷰 |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원칙 없는 채권시장, 룰 만들 것”
“죽은 채권은 죽은 채로 놔둬라”
제윤경 의원 약력 : 1971년생. 덕성여대 심리학과 졸업. 2007년 에듀머니 대표이사. 2012년 희망살림 상임이사. 2015년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현).

사회적 기업인 에듀머니를 1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제윤경(45)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통’으로 불린다. 국회에 입성하기 전 재무설계사로 일한 경험이 오늘날의 그를 실물경제에 밝은 경제 전문가로 만들었다.

초선인 제 의원은 현재 당에서 ‘생계형부채소위’ 간사를 맡고 있고 악성 채권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을 이달 중순 발의할 예정이다. 제 의원을 만나봤다.

▶채권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먼저 채권시장의 문제점부터 말씀드릴게요. 채권에는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소멸시효가 지나면 해당 채권은 죽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으로 부활하고 있는 상황이죠.

다시 살아난 채권은 가혹하게 추심되고 헐값에 거래되고 대를 이어 상속되는 등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채권시장이 최소한의 원칙도 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법안을 마련했습니다.”

▶가계 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 ‘시한폭탄’이라고 불릴 정도인데요.

“가계 부채 문제의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금융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채무 취약 계층은 350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단순한 연체자가 아니라 장기 연체자를 뜻합니다. 금융회사 세 군데에서 빚을 돌려막기 하는 인구수가 340만 명에 이른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는 서로 겹치지 않는데 장기 연체자의 채권은 이미 금융회사에서 상각한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즉 경제활동을 하는 전체 인구수가 2000만 명이라고 한다면 이들 중 3분의 1이 현재 장기 연체 상태이거나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셈이죠.

이들 중 일부를 구제하는 법안이 바로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입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금융회사가 불과 3개월 만에 채권을 포기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헐값에 말이죠. 저는 채권자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채무자에게는 매우 가혹한 데 비해 채권자에게는 법·제도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채무자의 도덕적 책무만 강조했지 채권자의 모럴(moral)은 문제 삼지 않았죠. 오히려 금융감독원은 너무 쉽게 승인해 줬고요. 경우에 따라 10회까지 재매각을 반복한 채권도 있습니다.

금융회사로부터 채권을 사들인 대부 업체는 별도의 라이선스 없이 8시간만 교육받으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어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말하기 전에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부터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