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느림은 생존에 부적정 요소…빠른 판단과 실행은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
기업에서 느림은 미덕이 아니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2015년 11월 부산 사하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난데없이 원숭이 소동이 벌어졌다. 국제적 멸종 위기 1급인 느림보 원숭이 ‘슬로 로리스’가 잇따라 3마리나 발견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원숭이가 동물원이나 연구실에서 탈출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누가 밀수로 들여와 반려동물로 키우다가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슬로 로리스가 국제적 멸종 위기 1급으로 지정될 정도로 개체수가 급감한 것은 신체 조건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원숭이는 체구가 작다. 몸길이가 26~38cm, 몸무게가 375~2000g에 불과하다.

또 열 생산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해 체온이 낮다. 그래서 방글라데시·인도·태국·브루나이·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따뜻한 열대우림 지역에서만 살고 있다.

슬로 로리스의 가장 큰 약점은 느리다는 점이다. 이 원숭이는 지구에서 가장 느린 동물 중 하나다. 100m를 가는데 3시간이나 걸린다. 보통 하루에 150m 정도 이동하는데 사냥할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니면 절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숲이 무성한 곳에서 살아야 하고 먹이 활동도 밤에 할 수밖에 없다.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는데 위험에 처하면 도망치기 어려워 부동자세를 취한다.

슬로 로리스는 먹이경쟁에서 밀리다 보니 주된 먹이도 다른 동물들이 싫어하는 것들이다. 냄새가 독하거나 몸에 가시가 돋아 있어 다른 동물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곤충들이 주식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이뤄낸 한국 기업의 경쟁력

슬로 로리스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느린 동물이나 물고기·곤충들은 대부분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거나 이미 멸종되고 말았다. 기후가 변하거나 개발이 진행되면서 숲이 줄고 있지만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느림보 동물의 대표 격인 나무늘보도 개체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무늘보는 6개 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갈기나무늘보는 이미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나머지 5종도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종으로 분류돼 있다.

이처럼 느림은 동물·물고기·곤충의 생존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느린 생물이 빠른 생물보다 도태될 확률이 높다. 느림은 직장 생활에서도 결코 장점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아니 느림은 거의 무능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 느림을 장점으로 꼽는 것은 눈 씻고 봐도 드물다.

직장에서 느림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빠름이 추앙받는 것은 경쟁 때문이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다. 게다가 내수 시장도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경쟁은 필연적으로 속도를 요구한다. 가격이나 품질 못지않게 속도가 승패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

한국의 대표 문화인 ‘빨리빨리 문화’는 계절이 한 해에 네 번씩 바뀌는 기후의 영향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제사회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최대 강점은 기술이나 품질이 아니라 영업과 마케팅이다.

한국기업은 세계 그 어느 기업들보다 시장 변화에 민감하고 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산업화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들이 짧은 시간에 선발 공업국가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핵심 경쟁력이다.

한국 패션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동대문 패션 상가는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동대문에는 현재 수만 개의 개인 디자이너 점포가 밀집해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의류 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하루 방문객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곳의 장점은 최신 유행하는 제품을 싼값에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만 개의 가게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제품 가격은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 또 감각이 살아있는 옷이 아니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에 가게 주인들은 유행에 극도로 민감하다.

동대문 패션 상가의 이런 장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속도다. 동대문에서 속도는 경쟁의 핵심 요소이고 생명줄이다. 이 줄을 놓치면 금방 도태된다. 동대문 상가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은 인터넷이나 상가 등을 뒤져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옷을 디자인한다.

그런데 오전에 옷을 주문하면 그날 저녁에 옷이 만들어져 나온다. 어떤 옷이 고객의 눈길을 끈다 싶으면 다음날 아침 가게마다 비슷한 옷들이 걸려 있다.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펼쳐지는 ‘속도’ 전쟁

경쟁과 속도는 국내 패션 기업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삼성전자·애플·LG전자·화웨이 등 각국의 대표 전자 기업들이 격돌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연구소와 공장을 24시간 가동한다.

제품의 개발 기간과 내구연한이 긴 자동차 시장에서도 신기술에 기반 한 신차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속도 경쟁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이렇게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경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가 속도다. 따라서 기업들이 속도를 중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 빠른 실행과 평가는 직장인들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다. 반대로 느림은 직장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 판단과 실행이 느린 직장인들은 직장 내 경쟁에서 뒤져 궁극적으로 대열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적지 않은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려고 한다. 빠르게 판단하거나 실행하지 않는 것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직장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느리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실행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이 생겨날 수 있고 성과의 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따라서 조금 늦더라도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속도보다 완성도가 중요하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속도를 양보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물론 ‘느리게 살기 철학’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자는 아니더라도 ‘느림의 비즈니스’로 일정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 강요받지 않고 자연과 환경,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일부는 ‘패스트패션’이나 ‘패스트푸드’와 반대 개념의 ‘슬로패션’이나 ‘슬로푸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자연 생태계와 전통을 보존하면서 천연 유기농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속도에 관심이 없거나 속도의 중요성을 폄훼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업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속도가 아무리 빠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니 다소 늦더라도 완성도에 치중해야 한다.

직장인들의 업무 능력이나 성과도 당연히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지양하고 개선해야 할 일이지 권장하고 평가할 것이 못 된다.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인정신이지 속전속결이 아니다.”

◆임원이 되고 싶다면 업무 처리 속도를 높여라

하지만 기업의 경영자나 임원들은 이런 주장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기업은 완성도와 속도를 모두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높은 완성도를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를 빨리 내놓아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에게 완성도와 속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유능한 축구 선수는 공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는다. 몇 초 안에 판단해 필요한 곳으로 연결한다. 한 발만 늦으면 상대 선수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베테랑 야구 선수는 고속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고 걸러낼지 쳐낼지, 친다면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할지 빠르게 판단하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완벽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채용이나 승진에서도 느림을 걸러내고 빠름을 선택하고 있다. 많은 면접관들이 채용 과정에서 후보자에게서 느림의 가능성이 발견되면 감점을 준다. 면접관들은 느린 사람들의 업무 성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기업 경영자들은 판단과 실행이 느린 직장인들에게서 관심이 분산돼 있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관심이 흩어지다 보니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느린 사람들이 기업에서 승진하고 주요 직책을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제로 일을 잘하고 성과를 잘 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판단과 실행이 빠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말도 빠르다. 겉으로 말과 행동이 느린 것 같아도 실제 업무 추진 속도는 결코 늦지 않다. 빠른 사람들은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즉각 판단하고 실행한다.

반면 느린 사람들은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의사결정을 미룬다. 그렇게 되면 실행도 당연히 늦어진다. 특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에서 구성원 한 사람이 늦으면 조직 전체의 업무 속도가 떨어진다. 기업에서 한 사람의 느림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빠름을 익혀야 한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 시티처럼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기업의 생리, 특히 한국 기업의 구조적 특성을 감안할 때 빠름은 직장인들이 갖춰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어떤 사람들은 빠름은 타고난 성향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태생적으로 조금 느린 성향의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빠르게 하는 것은 교육과 훈련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의지와 연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습관이다.

이 습관이 쌓여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에서 업무 효율을 높이고 동료들과 관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면 빠름이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조직에서 임원을 꿈꾸고 있다면 반드시 업무 처리 속도를 높여야 한다. 조직의 책임자가 느리면 조직 전체가 느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