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클린턴 정부 일자리 창출 1등 공신…환경운동가로 변신해 노벨상 수상
한국 찾아오는 ‘앨 고어’ 누구인가
(사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사흘간 제주에서 열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

고어 전 부통령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의 제45대 부통령으로 8년(1993~2001)간 재임했다. 재임 기간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추진단장을 맡아 미국의 인터넷망 등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확충했다.

정보고속도로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구글·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미국 대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국제 정치계 거물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美 IT 인프라 대거 확층

고어 전 부통령은 1948년 3월 31일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테네시 주 7선 하원의원 및 3선 상원의원을 역임한 앨버트 고어와 밴더빌트 법학대학 출신 최초 여성 법률가인 폴린 고어다.

고어 전 부통령은 1969년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행정학)하고 군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역 후 지역 신문인 테네시안에서 기자로 일하며 밴더빌트대 로스쿨을 졸업,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는 로스쿨을 졸업한 해인 1976년 미국 민주당 테네시 주 의회 하원의원에 도전, 94%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면서 아버지에 이어 정계에 입문했다.

대학 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고어 전 부통령은 주 하원의원 시절 미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환경 청문회를 열었다. 이후 하원의원 4선을 거쳐 1984년 상원으로 정치 무대를 옮겼다.

고어 전 부통령은 상원의원 3선을 거쳐 1988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마이클 듀카키스에게 패배했다.

그는 1990년 상원의원에 재선한 이후 1992년·1996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짝을 이뤄 부통령에 연이어 당선됐다. 고어 전 부통령은 클린턴 정부 시절 민생 문제 해결을 전담하는 등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움직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권 8년간 2323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내세운 ‘800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의 약 3배에 달하는 고용을 이뤄낸 셈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하던 기간 미국의 고용 증가율은 21.1%로 ‘레이거노믹스’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실적(17.7%)마저 앞질렀다. 실업률도 7.5%에서 4.0%까지 끌어내렸다. 일자리 창출의 1등 공신은 고어 전 부통령이 주축이 된 정보고속도로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일자리 공약의 해법이 기업에 있다고 보고 당선되자마자 기업인과의 스킨십을 늘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전 회장, 루이스 거스너 IBM 전 회장, 샌퍼드 웨일 씨티그룹 전 회장 등을 틈날 때마다 불러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업 총수들로부터 IT 인프라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학습 받은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고어 전 부통령에게 책임을 맡겨 ‘정보고속도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정보고속도로 프로젝트는 미국의 인터넷망 등 IT 인프라를 확충했음은 물론 기초 및 응용과학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구글·페이스북·플립보드 등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IT 소프트웨어 기업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부통령 재임 시절 국제 환경 관련 회의를 주도하며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도 앞장섰다. 1997년 기후변화에 관한 ‘교토의정서’ 창설을 주도하는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그는 1992년 ‘위기에 처한 지구’라는 책을 펴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대선 낙선에도 ‘위대한 패배자’로 기록
한국 찾아오는 ‘앨 고어’ 누구인가
(사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왼쪽)와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앨 고어 부통령 부부가 2000년 8월 미시간 주 먼로에서 열린 민주당 주도권 인수인계식에서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미국 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제43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대권에 정식 도전했다. 하지만 고어 전 부통령은 당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총투표수에서 부시 전 대통령보다 54만3895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뒤졌다.

고어 전 부통령은 선거인단 5명 차(271명 대 266명)로 부시 전 대통령에게 패하는 상황이 되자 재검표를 요구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선거인단의 향배를 좌우하는 플로리다 주의 수작업 재검표를 놓고 부시 전 대통령과 미국 대선 사상 초유의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한 달 이상 대통령 당선자 발표가 지연되면서 미국은 둘로 나뉘었고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결국 부시 전 대통령의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재검표 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플로리다 주 대법원의 재검표 지지 결정을 뒤집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오자 고어 전 부통령은 플로리다 주에서 활동하던 민주당 재개표추진위원회의 움직임을 중지시키며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개인 권력보다 대의를 위한 결정이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를 통해 ‘위대한 패배자’로 미국 역사에 기록돼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당시 패배 연설에서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인의 단합과 민주주의 역량 강화를 위해 이를 수용한다”며 “대통령 당선자를 존중하며 그가 미국을 단합하려는 노력에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대선 패배 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객원교수로 활동하면서 정치권 복귀를 시사하기도 했지만 2002년 12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차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를 떠났다.

◆국제 정치계 거물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

정치권을 떠난 고어 전 부통령은 환경운동가로 새 삶을 시작했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06년 제작한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화석연료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고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문제 등을 경고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각국에서 출간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어 전 부통령은 2007년 7월 7일 환경 콘서트 ‘라이브 어스’를 세계 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며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등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10월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개인 투자에도 재능을 발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013년 5월 대선 출마 당시 170만 달러에 불과했던 그의 재산이 2억 달러까지 불어났다고 보도했다. 2004년 창업해 한동안 경영난에 시달리던 시사 전문 케이블채널 ‘커런트TV’가 효자였다.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 카타르의 위성 방송사 알자지라가 커런트TV를 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지분 20%를 보유한 고어 전 부통령은 세금 등을 제하고도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어 전 부통령은 2003년부터 이사직을 맡아온 애플의 주식 5만9000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하기도 했다. 당시 애플 주가를 기준으로 3000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였다.

그는 현재 투자회사인 제너레이션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회장 겸 애플의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앨 고어, 제주포럼과 중앙대 두 차례 강연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은 한국에서 6월 1일 오전과 오후에 두 개의 뜻깊은 행사에 참석한다. 오전에는 ‘한국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석한다. 이 행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아니발 카바코 실바 포르투갈 전 대통령,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전 대통령,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참석한다.

‘아시아의 미래 비전 공유’를 주제로 외교안보, 경제·경영, 환경·기후변화, 여성·교육·문화, 글로벌 제주 등 5개 의제에 대한 70여 개 세션을 통해 국제사회의 화합과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고어 전 부통령은 2일 차인 6월 1일 특별 세션에서 ‘기후변화의 기회와 도전, 더 나은 성장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카본프리(탄소 제로) 섬을 지향하는 동북아시아 환경 수도 제주의 미래를 전망한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파리협정을 비롯한 신기후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가운데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전 지구적 협력 방안에 대해 조언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중앙대 흑석캠퍼스에서 한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연다. 이번 특강은 중앙대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됐다. 이날 고어 전 부통령은 ‘새로운 미래와 우리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1시간 동안 강연할 예정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특강은 기후변화 및 디지털 혁명, 세계화에 대한 세부 주제에 대해 1시간 동안 강의와 질의응답 형식으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