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네덜란드 철도회사·항공사, 대중교통 시설물 재활용해 상품 만드는데 앞장서
'업사이클', 착한 소비가 만드는 순환 경제
(사진)네덜란드 국적 항공사 KLM은 승무원들의 유니폼 폐기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KLM)


[김민주 객원기자] 네덜란드에서는 대중교통 시설물과 대중교통에 사용된 천을 재활용한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순환 경제와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네덜란드의 국영 철도 회사 네덜란드철도(NS)는 몇 해 전부터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NS-업사이클(폐자원에 디자인 요소를 입혀 다시 사용하는 것)’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업사이클', 착한 소비가 만드는 순환 경제
(사진)네덜란드철도와 스타트업 트베이엔데어는 기차 좌석에 사용된 천으로 가방을 만들었다.(/트베이엔데어)

◆폐자원에 디자인 더해 가치 창출

이는 기차역이나 교통수단 내에서 발생되는 공공 폐기물을 원재료 삼아 새 상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NS 측은 2020년까지 낭비되고 있는 쓰레기의 75%를 재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NS는 원재료를 재사용하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고 불필요한 생산을 막아 미래의 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대표적인 정책은 역내에서 기차의 출발과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대형 안내 표지판을 생활에 필요한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2011년 설립된 스타트업 펄드라이드후드(Verdraaid Goed)다.

이들이 디자인한 업사이클링 상품들은 싱크탱크(SMO),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과학자 모임(Het Groene Brein) 등이 함께 참여해 만든 웹사이트 로프트굿즈(Loopedgoods)를 통해 현재 판매되고 있다.

펄드라이드후드의 제품들은 네덜란드 기차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기본으로 한다. NS는 기차의 운행 시간이 변경됨에 따라 매년 수천 장의 안내 표지판이 교체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기차역에서 매일 접하던 공공시설물을 기성품으로 바꾼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은 조명·쟁반·공책·액자, 화분용 소품, 휴대용 기차노선도 등이다.

조명은 시간 안내 표지판을 작은 입자로 쪼갠 후 이를 반구 형태의 전등갓이나 구 형태로 만들고 안쪽에 램프를 달아 제작하는 방식이다.

기존 표지판의 밝은 노란색이 제품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집 안에 비치하면 환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판매량이 높은 제품으로 손꼽힌다.

공책·쟁반·액자 등은 NS 기차 시간표와 고유 지명 등이 고스란히 인쇄돼 있기 때문에 독특한 디자인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구매하고 있다. 또한 열차 시간은 일정 기간을 기준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구입을 서두르는 한정판 마니아들도 등장하고 있다.

펄드라이드후드의 창업자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공시설 폐기물을 상품화할 여러 디자인의 실험 과정을 공개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업사이클', 착한 소비가 만드는 순환 경제
(사진)네덜란드철도와 스타트업 펄드라이드후드는 기차역의 공공시설물을 기성품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다.(/트베이엔데어)

◆가방으로 부활한 기차의 폐기물

또 다른 정책은 기차 좌석에 사용된 오래된 천과 가죽들을 뜯어 가방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도 작은 스타트업 트베이엔데어(2ndare)가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와 창의성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 5명이 창업해 만든 트베이엔데어는 기차를 통해 생산되고 있는 폐기물에 주목했고 기차 좌석에 사용된 재료를 재활용할 방안들을 NS 측에 내놓았다.

이들은 오래된 천과 가죽을 이용해 세련된 가방을 선보였고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경영 철학 덕분에 네덜란드 내의 여러 젊은 기업인 상 등에서 수차례 수상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트베이엔데어가 제작하는 가방 중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짙은 초록색 천으로 만든 숄더백이다. 이 가방은 매우 오래전 스타일의 기차에 사용되던 좌석의 천을 재료로 삼아 고전미를 강조했다.

비록 낡은 천을 뜯어 만들었지만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가방의 안쪽 부분에 휴대전화와 태블릿PC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주머니를 만들기도 했다.

또 1등석에 사용되던 좌석의 머리 베개 부분만을 이용해 만든 가방도 눈길을 끈다. 1등석의 베개 커버 2장을 활용해 만든 이 가방은 파란색과 녹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가방마다 각각 열차번호와 좌석 번호가 표기돼 있어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차나 버스의 천을 이용해 작은 소파 쿠션이나 베개를 만들기도 한다.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담을 수 있는 손가방을 비롯해 태블릿PC 전용 커버도 제작하고 있다.

시즌에 맞춰 제작되는 상품도 있다. 2013년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이 취임할 당시 암스테르담
역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주요 기차역에서는 새 국왕의 등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트베이엔데어는 이를 폐기하는 대신 가방으로 제작했다.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네덜란드의 국적 항공사 KLM도 항공 관련 폐기물의 업사이클링에 관심이 많다.

KLM은 2010년 1만1000여 명의 여성 기내 승무원을 비롯해 지상직 승무원, 조종사들의 유니폼을 대거 교체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9만kg에 달하는 유니폼 폐기물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버릴 방법을 모색했다.

이 항공사는 네덜란드의 산업 디자이너, 디자인 전공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 유니폼으로 가방·슬리퍼·허리띠·여행가방용 이름표 등을 제작해 판매했다.

또 2년 전에는 자국의 유명 디자이너 및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소속 학생들과 함께 ‘플랜 투 프로덕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행기 좌석용 천과 카펫·안전벨트, 오래된 TV 스크린을 재활용해 가방·안대·여행용 슬리퍼 등을 제작했다. 이를 암스테르담의 한 백화점에 전시하며 업사이클링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MOAM이란 단체와 2015년부터 협업을 통해 폐타이어·안전벨트·기내 장식품들을 패션 아이템으로 바꿔 컬렉션을 개최하기도 했다.

용어 설명
업사이클(up-cycle) :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단어. 재활용품을 통해 가치를 더한다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