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31년 만의 가장 큰 감세안…연내 처리 가능성 커
트럼프 취임 9개월 만에 '감세 홈런' 칠까
[한경비즈니스=박수진 특파원(워싱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최근 눈에 띄게 밝아졌다. ‘예약된’ 홈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세제개편안 통과다.

연내 처리가 확실시되는 이번 세제개편안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둘째 세제개편안 이후 31년 만의 가장 큰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후 9개월 동안 행정명령 서명과 닐 고서치 대법관 임명 외에 한 게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세제개편안은 내년 중간선거 전까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살려 나갈 ‘반전 카드’다. 증시는 연일 기대감으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10년간 감세 규모 1조5000억 달러

미 상·하원은 최근 ‘2018 회계연도 예산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예산 결의안은 총지출 규모와 적자 규모, 관심이 있는 특정 예산에 대한 설명 등을 담은 16개 예산 관련 법안의 ‘예고편’과 같다.

2018 회계연도 예산 결의안에는 2018년뿐만 아니라 2027년까지 향후 10년간의 밑그림이 담겼다. 10년간 총지출을 5조1000억 달러 줄이고 감세를 추진하되 그 규모를 10년간 1조5000억 달러 이하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또 국방 예산은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늘리되 비(非)국방 예산은 10년간 6320억 달러 줄이기로 했다. 이런 지출 조정으로 10년 후엔 1970억 달러의 재정 흑자를 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상·하원은 ‘예고편’을 승인받고 곧바로 예산 관련 법안과 세제개편안 마련에 나섰다. 백악관과 상·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9월 27일 세제개편안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법인세율 인하(35→20%), 소득세 과표 구간 단순화(7→3~4단계), 최고세율 인하(39.6→35%), 상속세 폐지, 표준공제 2배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제개편안 ‘홍보전’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는 10월 16일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법인세 개혁과 소득’이라는 제목의 분석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표(標) 세제개편안이 통과돼 법인세율이 인하되면 가구당 연평균 4000~9000달러의 소득 증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EA는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자문 기구다.

CEA는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이 가구 소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법인세율(지방정부세 등 포함)은 38.9%로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가장 낮은 나라는 아일랜드로 12.5%다. OECD 평균은 25%이고 한국은 24.2%다.

CEA는 이같이 높은 법인세율 때문에 기업 실적이 가구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통로가 끊겼다고 분석했다. 1990년 전까지는 기업 실적이 1% 개선되면 임금도 같은 수준으로 늘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가구 소득이 0.6% 느는 데 그쳤고 2009년 이후로는 개선 효과가 0.3%로 더 떨어졌다. 높은 법인세율 때문에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에서 번 돈을 들여오지 않고 있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구 소득 연 최대 9000달러 증가 기대

이에 따라 법인세율을 낮추고 해외 유보 수익 환입 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기업 실적이 가구 소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CEA는 결론 냈다.

2조8000억 달러(약 3172조원)에 달하는 해외 유보금이 미국으로 들어와 투자되도록 길을 터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EA는 법인세율 인하로 가구 소득이 연평균 최소 4000달러, 최고 9000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CEA 위원장을 지낸 에드워드 러지어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10월 17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법인세율 인하와 가구 소득 증가 간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생소한 게 아니다”며 “개인적으로는 그만한 법인세율 조정이면 가구 소득이 연간 1800달러에서 2400달러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세제개편안엔 법인세율 인하 내용뿐만 아니라 소득세율 인하, 표준공제 확대, 자녀 세액공제 확대, 상속세 폐지 등 일반 가정에 직접 돌아가는 감세안 등이 더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더 늘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세제개편안에 집중하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 공화당을 단속하고 미시간 주와 노스다코타·펜실베이니아 주 등 지방을 돌며 세제개편안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대표적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프레지던트클럽’ 행사에 참석해 세제개편안 내용을 설명하다가 “아, 갑자기 다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민주당은 결사 반대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CEA 보고서에 대해 “숫자와 사실을 왜곡한 이런 분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 행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경제를 망치고 중산층을 다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트럼프의 감세안이 1년에 50만 달러 이상 버는 최상위 계층에는 횡재를 안겨주지만 중산층에는 부스러기만 남겨줄 것”이라며 보이콧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부유층에 혜택이 집중적으로 돌아간다는 지적에 “필요하면 최상위 1%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과세 등급을 추가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미국은 감세를 통해 소득 증가와 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40%에서 42%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낮추는데 성공하고 한국이 올리게 되면 법인세율이 역전하게 된다.

한국은 세율 인상으로 더 걷은 세금으로 아동 수당 신설, 기초연금 인상 같은 재정 사업을 확대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감세로 투자·고용 확대를 유도해 가구 소득을 올리는 ‘투자형 소득 주도 성장’을, 한국은 증세로 재정 사업을 확대해 가구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분배형 소득 주도 성장’을 추구하는 셈이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