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인터뷰]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올해 적극적 투자 나설 것
"VC는 무대의 조연... 주연 '스타트업' 빛나게 해야죠"
(사진)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새해를 맞이한 벤처업계는 기대감으로 술렁인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도 이러한 정책 방향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창업 활성화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문 대표는 “사회적으로 도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신규 투자 18개, 후속 투자 8개 등 모두 26개의 스타트업에 859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특히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원화 거래소로 출발한 코빗은 가상화폐 열풍을 타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에 인수됐고 카메라 모듈 부품 업체인 덕우전자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죠.”
"VC는 무대의 조연... 주연 '스타트업' 빛나게 해야죠"
코빗과 덕우전자 투자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비트코인이 대중에게 생소하던 2014년 미국과 한국의 유명 투자자들과 ‘코빗’에 공동투자했습니다. 당시 저희는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나 신용시스템을 대체한다기보다는 지불결제 시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결국 후속 투자 결정까지 내리게 됐죠.

덕우전자는 1992년 설립돼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초기에 TV 부품 제조 업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차량 부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죠. 덕우전자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역량이 정밀 부품을 필요로 하는 제조 영역에서 큰 강점이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특별한 투자 심사 기준이 있습니까.

“저를 포함해 네 명의 파트너가 최종 투자 결정을 합니다. 네 명이 모두 동의해야 투자가 이뤄집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간 여행자’라고 부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파악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심사 기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술’입니다. 해당 기술이 향후 10년 뒤에 신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지 봅니다. 둘째는 ‘구성원’입니다. 흔히 창업자에게 강조하는 ‘열정’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지속성이 더 중요하죠.”

다른 벤처캐피털과 다른 점이 있나요.

“2000년 창업 이후 ‘IT 기업’에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위험 요소도 있습니다. IT 산업 전체가 주저앉는다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장기간 IT 투자로 쌓아 온 노하우가 통찰력을 키워줬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까지 주로 초기 기업에 투자해 왔습니다.

한국 벤처 시장은 ‘닷컴 버블(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급속히 올랐다가 붕괴한 현상)’을 겪은 후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많이 움츠러들었어요.

2010년대 들어서야 다른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엔젤 투자자들이 신생 스타트업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초기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해 온 소프트뱅크벤처스의 ‘고집’이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한국 벤처기업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한국 벤처기업 경영자들의 열정과 도전의식은 정말 대단합니다. 코스닥 상장에 대한 열망도 높죠. 그러나 다소 급한 성향도 눈에 띕니다. 창업자라면 기업 경영의 기본이 되는 재무나 인사에도 신경을 써야 하죠. 회사의 기본적인 틀을 짜고 실천하는 점에서는 다소 부족한 모습도 눈에 띕니다.”
"VC는 무대의 조연... 주연 '스타트업' 빛나게 해야죠"
(/서범세 기자)

지난해 7월 기존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됐다. 이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중 8000억원을 모태 펀드에 투입해 벤처 투자업계에 힘을 실어줬다. 벤처 업체의 성장을 돕는 벤처캐피털의 중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의 상장 요건을 완화해 벤처캐피털의 원활한 자금 회수를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벤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정책이 있습니까.

“시장의 대한 이해는 단순한 학습이나 몇 장의 보고서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해요. 시장에 대한 정부 부처의 이해도가 더 높아져야 합니다.

과거 온라인 게임이나 현재 일어나는 암호화폐 열풍처럼 새로운 흐름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 규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국가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지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코스닥시장 상장 요건 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타트업의 상장은 공공의 자금을 원활하게 벤처캐피털에 수혈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의 테슬라 상장 제도(적자인 기업이어도 기업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미래 성장 잠재력이 높으면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를 도입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기 기업들이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만의 제도가 더 만들어져야 합니다.”

올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벤처캐피털은 무대의 ‘조연’입니다. 주연은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이죠. 올해는 투자 규모가 더 커지고 투자 건수도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스타트업에 후속 투자할 때 규모를 더 늘리는 일종의 ‘더블다운 투자’를 합니다. 올해 더 많은 투자사들이 좋은 성과를 내 ‘더블다운’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약력
1988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졸업. 1996년 미국 드렉셀대 MBA. 1990년 삼보컴퓨터 인력개발팀·회장실·전략기획팀 근무. 1996년 소프트뱅크 테크놀로지 벤처스. 1998년 소프트뱅크미디어 대표. 2000년 소프트뱅크벤처스 부사장. 2002년 소프트뱅크코리아·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현).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한국 내 자회사다. 2000년 설립된 창업 투자회사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최근에는 미디어·콘텐츠·인공지능(AI) 및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해외 및 국내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발굴하며 벤처 생태계 육성에 힘쓰고 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