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 로펌 암호화폐 특수]
빗발치는 암호화폐 관련 소송과 법률 자문…로펌들 때아닌 특수 누려
로펌 업계, 암호화폐 법률수요 급증에 '열공 모드'
(사진) 법무법인 세종 암호화폐 TF 변호사들. 왼쪽부터 김기현, 주민정, 정수호, 조정희, 엄상연, 박세길, 정재욱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최근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한 곳은 2000억원 규모의 소송에 휘말렸다. 암호화폐가 폭등할 시점에 서버가 중단되면서 제때 매도하지 못한 이용자들이 손실을 봤다며 로펌을 통해 집단소송에 돌입한 것이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A사는 설립 초기부터 국내 한 로펌과 고정 자문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광고 심의, 명칭, 투자 유치, 이용 약관 검토 등 사업 수행에 필요한 법적 자문을 구하고 있다.

암호화폐 열풍으로 로펌업계가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와 관련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소송에 대한 대응이나 거래소 운영과 관련한 법률 자문을 위해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 등 강도 높은 규제를 펼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따라서 암호화폐 관련 법률 분쟁이나 자문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암호화폐 법률 수요를 잡기 위한 로펌들도 분주해진 모습이다.

◆로펌업계 잇달아 암호화폐 TF 구성

대형 로펌들엔 수많은 변호사들이 소속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각 팀에서 인력을 차출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거나 암호화폐와 연관이 있는 핀테크팀 등을 확대해 법률 수요를 끌어오는데 집중하고 있다.

암호화폐와 관련해 가장 먼저 대응하기 시작한 곳은 법무법인 태평양이다. 투자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2015년 국내 로펌 최초로 핀테크 TF를 출범시켜 가상통화 관련 이슈에 대응해 왔다. 일찌감치 암호화폐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 자문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초점을 맞춘 블록체인 TF를 새롭게 발족했다. 태평양 블록체인 TF는 증권금융팀·TMT팀(IT관련)·공정거래팀·조세팀·형사팀·법제행정팀 등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련된 정책 및 기술적 이슈를 아우르는 다양한 부서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팀장은 태평양을 이끄는 주축 중 한 명인 오양호 대표변호사가 맡고 있고 총 인원은 30명이다. TF에는 파트너 변호사뿐만 아니라 금융거래 및 규제에 정통한 회계사, 금융감독원 출신 등이 포진했다. 이들은 유기적으로 협업하면서 글로벌 관점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슈와 각종 법률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태평양은 로펌업계 중 가장 먼저 암호화폐 팀을 꾸린 만큼 풍부한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 ‘경험’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 암호화폐 투자에 정부 규제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부 정책의 방향을 보다 세심하게 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로펌업계 최강자로 꼽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도 암호화폐와 관련한 TF팀을 꾸린 상황이다. 태평양과 마찬가지로 변호사·회계사·전문위원·변리사·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30여 명 규모다.

핀테크 부문에서 활약해 온 이정민 변호사가 팀장을 맡고 있다. 김앤장 암호화폐 TF는 암호화폐 거래소와 블록체인협회의 자율 규제안 자문을 수행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앤장 관계자는 “최근들어 암호화폐 공개(ICO)와 관련한 문의가 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미국·일본·스위스 등 해외 규제 현황과 동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모든 유형의 ICO를 막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만큼 로펌을 통해 조언을 구하는 이들 또한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법무법인 세종과 법무법인 화우도 TF로 암호화폐 법률 수요에 대응 중이다. 먼저 세종은 지난해 말 암호화폐 TF를 구성했다. 지난해 초부터 암호화폐 관련 문의가 급증하기 시작해 결국 TF까지 만들게 됐다.

특히 그동안 암호화폐 사기 등 형사 문제들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와 형사 범죄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이용성 변호사에게 TF 팀장을 맡겼다.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자문 경험이 많은 조정희 변호사는 간사를 맡고 있다. 이 밖에 다수의 금융·정보기술(IT)·회사·형사 분야의 전문가들이 TF에 합류했다.

◆광장·율촌 정규 팀 구축으로 대응

세종 암호화폐 TF도 정부 규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암호화폐와 관련된 문제를 가능한 한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어 곧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성격, 유통과 과세 여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화우는 세종보다 앞선 2016년 초 금융 및 IT 전문 변호사들을 주축으로 암호화폐 TF를 발족했다. 이숭희 변호사 휘하에 30명의 변호사·회계사·세무사·관세사 등 전문 인력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화우의 TF 관계자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정부의 규제 방침더 계속 새롭게 발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법률적 적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정부 규제와 입법 조치가 정해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암호화폐에 수반되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법적 자문을 제공할 방침이다.

한시적 조직인 TF 대신 암호화폐와 관련한 정식 팀을 구축한 로펌도 있다. 법무법인 광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광장 블록체인팀을 구성해 핀테크·금융정보기술·보안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핀테크 분야의 전문가인 강현구 변호사가 팀을 이끌고 있다. 아직까지 암호화폐 관련 법체계가 미흡해 현행법상 가능한 영역에서 어떠한 법적 리스크에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로펌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정책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도 최근 핀테크팀에서 관련 업무 전담을 위해 암호화폐팀을 창설했다. 단순한 자문을 넘어 암호화폐 관련 자문 용역 수행, 입법 및 정책 자문까지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율촌은 암호화폐팀을 중심으로 국내외 세미나를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정보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해 여러 금융회사와 국내외 기업들의 자문 경험이 많은 손도일 변호사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임료 암호화폐로 받는 로펌도 생겨

대형 로펌만 암호화폐와 관련해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형 로펌들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가상통화와 관련된 법률 수요 잡기에 한창이다.

대형 로펌의 수임료는 비쌀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나 개인들은 상대적으로 수임료가 저렴한 중소형 로펌을 선호한다. 몇몇 중소형 로펌들은 수임료 일부를 암호화폐로 받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내세우며 고객 유입을 이끌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대금은 지난해 코스닥시장을 넘어설 정도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사례들로 비춰 보면 암호화폐 관련 소송은 참여하는 이들이 많고 소송 규모 또한 크다는 특징이 있다.

로펌은 소송 규모에 따라 수임료가 정해진다. 따라서 암호화폐 관련 소송을 맡게 되면 로펌의 수익 창출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로펌들이 암호화폐 TF나 팀을 구성해 대응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로펌 업계, 암호화폐 법률수요 급증에 '열공 모드'
(사진) 암호화폐와 관련한 법률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로펌들이 암호화폐 관련 TF나 팀을 꾸리는 이유다. /연합뉴스

특히 향후에는 법률 수요가 더욱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 강화는 사실상 확정적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존폐 여부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암호화폐와 관련된 법률 수요는 증가할 것이란 게 로펌업계의 시각이다.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지 않으면 암호화폐 시장은 양성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며 “거래소 관련 규제로 자문과 시세조종, 내부자 거래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과세 방침도 불가피한 만큼 조세 소송도 증가할 전망이다. 만약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면 이와 관련한 손실 보상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이나 헌법 소원이 많아질 것이라고 조 변호사는 예상했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