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박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168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6%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형별로 확정 급여형 퇴직연금(DB : 퇴직할 때 지급 수준이 결정)이 110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3% 증가해 전체의 65.9%를 차지했다.
확정 기여형(DC : 사용자가 부담금을 정기 납입하고 노동자가 운용)과 기업형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 10인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특례, DC와 유사)가 4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7% 증가했다.
그리고 개인형 IRP(이·퇴직 시 수령한 퇴직급여와 가입자 개인 추가 납입액을 적립·운용)가 15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2% 증가했다. 개인형 IRP 증가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지난해 7월 가입자 기준을 자영업자, 직역연금(공무원연금 등) 가입자 등 모든 취업자로 확대한데 기인한다.
퇴직연금의 운용 현황을 보면 원리금 보장형이 154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91.6%를 차지했다. 원리금 보장형의 유형별 비율은 DB형 94.6%, DC 및 기업형 IRP 78.7%, 개인형 IRP 66.3% 등에 달했다.
원리금 보장형 적립금의 상품별 구성은 예·적금과 보험 상품(금리 확정형 또는 최저 이율 보증 금리 연동형)이 각각 68조5000억원과 64조4000억원으로 약 90%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실적 배당형 적립금은 14조2000억원(전년 대비 42% 증가)으로 전체의 8.4%에 불과했다. 상품별로는 펀드가 97.4%였고 펀드는 채권 혼합형(주식 편입 비율 40% 이하)과 채권형이 68.2%로 주를 이뤘다. ◆퇴직연금, 아직은 사회 안전망 역할 못해
퇴직연금 제도는 노동자들의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 말 도입됐다. 국민연금의 고갈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또 다른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은 반가운 얘기다.
퇴직연금 적립금 시장은 향후 지속 성장할 전망이다. 퇴직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2016년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 30인 이상, 2019년 10인 이상, 2022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시장은 2020년 378조원, 2030년 960조원, 2050년 1928조원 등으로 급증해 국민연금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아직 노후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더욱이 노후 준비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운용되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퇴직연금은 가입 후 10년 이상 유지하면 만 55세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그런데 2017년 퇴직연금 수령 개시 계좌(24만1500계좌)의 대부분이 일시금 수령을 택했고 연금 수령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의 짧은 역사로 아직 계좌당 수령액이 평균 1649만원에 불과한 점과 수령 시점이 자녀의 대학등록금, 결혼비용과 장례비용 등 생애 주기상 지출이 큰 시기라는 점에 기인한다. 또 연금 수령 시 퇴직소득세(최대 28.6%)를 30% 경감해 주고 있지만 유인 효과는 크지 않다.
따라서 퇴직연금이 노후 연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려면 연금 수령 시 더 강한 세제 혜택이나 일시금 수령 시 페널티 부과 등 지금보다 일시금 수령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연금의 메리트를 높일 필요가 있다.
또 가입자로서도 저금리 기조와 늘어나는 노후 기간을 감안해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을 깨울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2017년 연간 수익률(총비용 차감 후)은 1.88%(2016년 1.58%)에 불과하다.
적립금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은 1.49%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1.65%)보다 낮았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수익률의 의미가 아예 없다. 이에 비해 채권형과 채권 혼합형 펀드를 중심으로 운용된 실적 배당형의 수익률은 6.58%였다.
적립금이 2017년 수익률로 10년간 운용된다고 가정하면 실적 배당형 적립금은 원리금 보장형의 1.6배, 20년간 운용된다면 적립금 격차는 2.7배에 달한다.
◆글로벌 투자로 눈 넓혀야
그래서 현재 원리금 보장형 중심인 퇴직연금은 실적 배당형으로 전환해 운용을 적극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생애 주기와 여건에 맞춰 안정형과 투자형 상품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금융 지식 습득이 필수적이다. 먼저 언론의 경제면이나 경제지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금융회사들이 제공하는 여러 강좌들도 만날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최근 뜨고 있는 TDF(Target date Fund)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TDF는 은퇴 시점을 타깃 데이트(목표 시점)로 두고 생애 주기별로 주식과 채권 등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성과 주기적으로 포트 리밸런싱을 하는 펀드로, 은퇴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율을 낮춰 간다.
TDF는 미국에서 1993년 바클레이스와 웰스파고에 의해 처음 출시됐는데 2006년 미국 노동부가 TDF를 퇴직연금의 기본 옵션 중 하나로 지정하면서 급성장했다. 현재는 미국 노동자의 약 65%가 TDF에 가입해 있을 만큼 인기 있는 퇴직연금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내에서 최근 운용 규모가 1300조원에 달하며 지난 5년간 운용 수익률은 연평균 약 9%로 양호하다.
국내에서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본격화와 은퇴 자금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6년 말 700억원에 불과했던 TDF 운용 규모는 금년 4월 말 1조원을 넘어서는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년간 수익률도 8.3%로 양호하다. 현재 주요 상품으로는 KB자산운용이 미국 1위 TDF 운용사인 뱅가드, 한국투신운용이 미국의 티로프라이스, 삼성자산운용이 미국의 캐피털그룹과 제휴, TDF 상품을 출시해 운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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