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맹목적 일사불란은 망하는 지름길, ‘톱다운’과 ‘보텀업’ 방식도 조화 이뤄야
‘냉정과 열정사이’…전략 경영의 핵심은 ‘밸런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마음 한뜻으로 일사불란하게 힘을 합쳐 나아가자.” 교장 선생님 훈화나 사장님 말씀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경영은 줄다리기가 아니고 당장 내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일사불란하게 한곳으로 달려갔다간 다 같이 망할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경영자는 없다. 만에 하나 미래를 내다본다고 해도 남남이 모여 사는 세상에 생각도 다르고 속사정도 다른 어른들이 일편단심으로 뭉치기도 어렵다.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여러 가지 입장과 생각을 가진 사람의 힘을 모으려면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담아가는 밸런싱의 지혜가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에 대한 오해

전기자동차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자동차 산업의 현실은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수소 연료가 대세가 될지,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세가 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에너지원이 중심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가솔린·디젤 내연기관을 이용한 차량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맞물린 이해관계도 복잡하기 때문에 변화의 폭과 속도는 훨씬 조심스럽게 전개될 수도 있다.

경영자로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하며 대비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중요한 기술이라면 복수의 사업부에 맡겨 경쟁과 보완을 꾀할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밸런싱의 지혜다.

하지만 하나의 대안에 집중하면서 부족한 돈과 인력을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해 분산하다 보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될지도 모른다. 속 좁고 안목 짧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만 정답이라고 우겨대고 여기에 감정까지 실리면 회사는 엉망이 된다.

따라서 밸런싱을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보유 자원과 관리 역량이 필요하다. 경영학 책은 좋은 말이 가득해 항상 그 핵심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전략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조조정 시대의 슬로건은 한 가지만 죽어라 고집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 가는 밸런싱의 지혜를 따르더라도 그 폭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얘기일 수 있다.

리타 맥그래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변화의 시대, 혁신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탐색과 실험적 도전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밸런싱의 폭을 주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라는 뜻은 아닐까.

◆상의하달? 하의상달?

최고경영진이 수립한 전략 계획은 실무를 맡은 구성원에게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회사가 추구하는 특정 방향에 맞춰 새 사업안을 제시하고 방향이 다른 사업은 자제하라는 자원 배분의 원칙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의 전략 계획인데 이른 시간에 조직의 힘을 모으는 데 유리하지만 전략이 실천되는 현장 사정과 동떨어진 공상적 계획을 고집하는 경직적 경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톱다운 방식은 직접 일하는 현장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업안으로 제안되고 최고경영진의 전략 방향에 반영되는 ‘보텀업’ 방식과 함께 이뤄질 때 더욱 효과적이다. ‘상의하달(上意下達)’, ‘하의상달(下意上達)’과 같은 뜻이지만 전략 경영의 내용을 더해 생각해 보자.

세계경제와 산업의 움직임, 높은 수준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주는 전략적 의미 등 실무 현장에서 접하기 힘든 이슈는 톱다운 방식의 전략 계획에 적합하다고 생각돼 왔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 사업 내용에서는 직접 일하는 사람들 나름의 정보 판단이 더해질 때 비로소 효과적일 수도 있다.

케이블TV나 IPTV 기업을 예로 들면 시청자의 미디어 소비 패턴이나 콘텐츠의 감성 포인트를 잘 모르는, 하루에 TV를 단 한 시간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바쁜 중역들이 편성 전략과 사용자 접점 설계에 손을 대다 낭패를 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 뉴미디어의 미래 어쩌고 하는 컨설팅 보고서를 아무리 열심히 봐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현실을 모르다 보니 말만 둥둥 떠다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산, 연구·개발, 영업 등 실무 현장에서의 구체적 사업 아이디어가 더 높은 수준의 장기적·거시적 전망에 비춰볼 때 그 의미가 더 잘 살아날 수 있다.

연구자의 독자적 의지를 함부로 꺾으면 의욕 자체가 없어진다. 창의적 연구는 우연히 얻어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정한 선에서 눈감아 주기도 한다. 3M의 접착 메모지는 이런 우연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일회적 아이디어나 성공이 체계적 기업 역량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입지를 만들기 어렵다.

관료화한 기획 부문이 전략 계획을 어명으로 삼아 권세를 휘두르는, 보텀업의 과정이 죽은 기업은 현장의 사연을 전혀 모르는 경직된 관료 조직이 돼 버린다. 현장의 다양한 일에 파묻히고 일회적 성공에 매몰돼 전략의 큰 줄기를 잃어버리는, 톱다운의 과정이 역할을 못하는 기업은 감당할 수 없는 다양성과 복잡성에 방향을 잃고 만다. 톱다운과 보텀업의 밸런싱이 필요한 이유다.

전략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므로 모험적 투자가 필요하다. 세상에 그럴듯해 보이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뭐라도 일을 벌여야 실적이 생기고 경력도 쌓이는 기업의 현실에서 사업 계획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정말 되는 사업인지 회사 돈으로 한번 해보고 자신감이 붙으면 회사를 나가 자신의 사업장을 꾸리려는 엉큼한 생각을 지닌 직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업에 따르는 여러 가지 이권이나 남을 휘두르는 권세를 누리려는 속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영악하고 엉큼한 생각이 밉다고 아무것도 못하게 틀어막는다면 그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

가속장치 역할을 하는 사업과 투자의 의지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꼼꼼하고 보수적 관리와 맞물려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밸런싱의 지혜가 필요하다.

◆시장과 경영자의 시각차 극복해야

외부에서 영입한 인력들이 머릿속에 그리던 사업을 잔뜩 벌이다가 회사만 망쳐버린 사례도 있다. 반대로 인재라고 영입했지만 사업 계획이나 보고서만 만들게 하고 ‘진짜 사업’은 뒤로한 채 책상물림으로 두는 사례도 많다.

남 줄 수 없어 물려받아 경영하지만 솔직히 뭘 해야 좋을지 잘 알지도 못하고 일을 벌이는 사람들의 엉큼한 속셈이 불안해 그냥 ‘되는 일 없게’ 꽁꽁 닫아걸고 재산을 지키는 회사도 곳곳에 있다.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으니 결정권은 불안한 세습 경영자에게 더 집중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결정권이 몰리면서 회사는 화석이 된다. 불안함과 답답함은 기업 내 궁정정치를 만들고 사업이 아닌 정치를 하는 환관이나 기업 내시의 권세가 등장한다.

천천히 망하더라도 대대손손 우아하게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시작된 ‘철통 방어’가 궁정정치로 진화하면 회사는 어느새 기업 내시가 ‘회사 공무원’을 부리면서 끼리끼리 나눠 쓰는 판이 돼 버린다. 퍼뜩 정신 차린 경영자가 뭐라도 해보려고 들지만 꽉 짜인 이해관계 구조는 늪과 같아 헤어날 수 없다.

촘촘하게 얽힌 사업 이권,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연 때문에 회사를 팔 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니 되는 일 없게 닫아걸고 지키다 허수아비가 돼 버리는 셈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왕조의 몰락과 비슷하지 않은가.

기업의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찾아온 샐러리맨이다. 일 배우고 기반을 만들어 내 일을 하려는 이도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사업과 관리 사이의 균형을 세밀하게 챙기는 밸런싱이 없으면 회사는 금방 회사 공무원과 기업 내시의 천국이 돼 버린다.

경영자는 남이 모르는 기회를 찾아 남다른 방법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투자나 대출을 받으려면 이런 ‘남다른 생각’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투자나 대출을 하는 금융시장의 당사자들은 ‘남다른 기회와 방법’을 주장하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사업 계획과 경영자에게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므로 일단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새 사업을 벌여 원재료 납품과 건물 임대로 이득을 챙기면서 망하게 되면 손실은 투자자 몫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시너지를 위한 사업 다각화, 안정적 사업 포트폴리오, 미래 사업 개발 등 전략 경영 책에는 좋은 말이 금융시장의 경제 논리 앞에서는 번번이 ‘경영자의 이득을 위한 주장’으로 반박 당하기 일쑤다.

전략 수준의 경영에서는 시장과 경영자의 다른 시각을 인정하고 시장을 설득하는 노력이 불가피하다. 시장과 경영자의 다른 시각을 조화시키는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밸런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