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입학시험 SHSAT 폐지 추진…아시아계 반발 커
뉴욕시장의 특목고 개혁, 이번엔 성공할까
(사진)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이 6월 3일 브루클린의 한 중학교에서 특수목적고 입시 제도 개혁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김현석 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미국 뉴욕시는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드는 도시다. 교육열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뉴욕시에는 모두가 선망하는 세계 최고의 특수목적고가 아홉 개 있다. 졸업생 4명 중 1명이 하버드대 등 미국 동부의 최고 명문 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며 70~80%가 유명 대학에 진학하는 최고의 학교다. 최근 이런 특목고 입시 제도를 놓고 뉴욕시가 최근 격동에 휩싸였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6월 3일 새로운 특목고 입시 제도를 제안했다. 인종적 다양성을 높이겠다며 현재 특목고 입학시험(SHSAT)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블라시오 시장은 “학업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이 특목고에 입학할 공정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고 뉴욕시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SHSAT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계가 휩쓰는 뉴욕 특목고 입시


이는 스타이브슨트·브루클린텍·브롱스과학고 등 특목고 입학을 아시아계가 휩쓸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뉴욕시 8개의 특목고에는 1만5540명의 재학생이 있는데, 이 중 62%가 아시안이고 백인이 24%다. 히스패닉은 6%, 흑인은 4%로 두 인종을 합쳐 10%에 불과하다.


가장 유명한 특목고인 스타이브슨트에는 작년 신입생 953명 가운데 흑인은 고작 10명에 그쳤다. 재학생 중 아시아계는 무려 73%나 된다. 뉴욕시 전체 공립고의 신입생을 따지면 흑인이 30%로 가장 많고 히스패닉 40%, 아시아계가 17% 정도다.


뉴욕 주에선 1971년부터 주법에 따라 특목고는 SHSAT 성적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SHSAT는 8·9학년(중학교 2~3학년) 학생의 영어·수학 과목 실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영어와 수학 시험이 각각 45문항과 50문항씩 출제되고 시험 시간은 총 150분(2시간 30분)이다.


블라시오 시장은 SHSAT를 통한 입시 방식을 바꾸겠다며 두 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SHSAT를 폐지하고 지원자의 7학년(중학교 1학년) 성적과 뉴욕 주 표준 시험 성적에 기반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뉴욕시 모든 중학교의 성적 우수자들에게 특목고 입학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 전환은 3년에 걸쳐 진행된다. 3년 동안 SHSAT를 실시하지만 이를 통해 선발하는 학생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각 중학교에서 최상위 성적(1년 차 3%, 2년 차 5%, 3년 차 7%) 학생들 중 지원자를 입학시킨다는 것이다.


SHSAT 폐지 법안은 뉴욕주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6월 1일 이런 내용의 법안(‘A 10427-A’)이 주하원에 상정됐다. 하지만 승인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는 SHSAT 시험을 유지하되 신입생의 20%를 디스커버리(Discovery) 프로그램을 통해 뽑는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출신 학생 비율을 높이기 위해 고안됐다.


뉴욕시가 SHSAT 합격 점수 바로 밑에 있는 저소득층 학생 중에서 뽑아 특목고 정원의 20%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뉴욕시는 SHSAT 성적뿐만 아니라 내신과 출석 현황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겠다며 작년 가을부터 이미 특목고 신입생의 5%를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을 통해 배정했다.


이 방식은 이미 시행 중인 방안을 확대하는 것으로 주의회 승인이 필요 없다. 블라시오 시장은 첫째 개혁안이 주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변경안을 2019년 가을 학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블라시오 시장은 개혁안이 시행되면 특목고의 흑인과 히스패닉 비율이 45%에 이르고 여학생 비율은 현재의 44%에서 62%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시장의 특목고 개혁, 이번엔 성공할까
(사진)브루클린에서 6월 4일 아시안·아메리칸 단체 주최로 특목고 시험 폐지 반대 시위가 열렸다.


◆동문회도 특목고 시험 폐지에 반대


특목고 입시 제도 변경이 발표되자 뉴욕시는 찬반 운동에 휩싸였다. 특목고 동문회와 아시아계 학부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발표 당일인 6월 4일 아시안·아메리칸 단체들이 브루클린에서 ‘SHSAT 유지하라’, ‘인종차별 멈춰라’, ‘우리 미래 보호하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SHSAT 폐지는 아시안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블라시오 시장이 아시안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편견을 갖고 있
다”며 “특목고에 재학 중인 아시안 학생 상당수도 저소득층”이라고 밝혔다. 실제 현재 특목고 재학생의 절반은 뉴욕시가 분류한 저소득층 출신이다.


이들 단체가 시작한 특목고 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운동에는 하루 만에 1만 명이 서명했다. 시위는 6월 5일에도 이어졌고 시위를 주도한 아시안·아메리칸 단체들은 향후에도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표적 특목고인 스타이브센트고와 브루클린텍 동문회는 합동 성명서를 내고 “특목고 시험 폐지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수많은 어린이와 가정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정책이 최소한의 의견 수렴이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정부의 계획은 인종 다양성을 위한 해답이 아니다”며 “중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대 중국인 학생회를 이끌고 있는 브루클린텍 졸업생인 데이비드 리 씨는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을 통한 입학 확대는 시험 점수가 높은 학생을 부당하게 배제하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이라며 “제도 변경으로 아시아계 학생 수를 줄인다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인들도 가세하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우려를 표명하며 6월 1일 주하원에 상정된 SHSAT 폐지 법안의 주의회 승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아시안 밀집 지역인 퀸스의 토비 앤 스타비스키(민주) 뉴욕 주 상원의원은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이 입학 기회의 갖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특목고에 재학 중인 수많은 아시안 학생들은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로지 성적으로만 뽑는 현재의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뉴욕시에서는 공립학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특목고 진학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SHSAT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카르멘 파리냐 뉴욕시 교육감은 “현재 뉴욕시 특목고는 아시안 학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특정 인종의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특목고 시험(SHSAT) 성적 하나로만 입학이 결정되는 현행 입시 제도에 다양한 기준을 결합하는 새로운 입시 제도를 통해 인종 불균형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목고는 사립학교가 아닌 공립학교로 납세자들의 세금을 받아 운영되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대적인 변화 카드 꺼낸 진보 성향 시장


브루클린에 사는 학부모인 해리엇 하인즈 씨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가정 사정이 어려워 시험 준비를 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불공평한 시험제도를 끝내는 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고교 입시 변경 문제는 뉴욕시의 해묵은 과제다. 뉴욕시는 2001~2013년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 재임 때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문제를 확대해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했다.


3개이던 특목고를 9개로 확대했고 자율형 공립학교인 차터스쿨을 300여 개 이상 새롭게 허용했다. 그 대신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공립학교들을 폐쇄해 2002년 이후 117개 공립 고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13년 진보 성향의 블라시오 시장이 등장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그는 2014년에도 특목고 입학 기준을 변경하려고 추진했지만 법안이 뉴욕주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결국 백지화됐다.


블라시오 시장은 취임 초기 차터스쿨에 대해서도 “(차터스쿨이) 공교육 시스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며 예산 배정을 줄이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차터스쿨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비영리단체 등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자율형 공립학교다.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전문적이고 독특한 커리큘럼을 운영해 교육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도입된 차터스쿨은 블룸버그 시장 때 뉴욕시에서만 400여 개로 늘었고 현재 6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2002년 2000여 명이던 뉴욕시 차터스쿨 재학생은 현재 1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블라시오 시장은 차터스쿨 상당수가 뉴욕시 공립학교의 공간을 무상으로 쓰고 있고 또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공립학교 예산이 감소해 공교육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블라시오 시장은 지난해 뉴욕시 공립학교에서 전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인 ‘프리 스쿨 런치 포 올(Free School Lunch for All)’을 시행하기도 했다. 2016년까지는 소득수준에 따라 75%에게 무료로 줬던 급식을 가구 소득 등에 상관없이 무료로 점심을 준 것이다. 블라시오 시장이 이번에는 특목고 입시 제도를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