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BYD 등 중국 기업 급성장…GM·도요타 등 완성차도 신기술 개발에 ‘올인’
무섭게 ‘스파크’ 튀는 전기차 배터리 전쟁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전기차 시장의 규모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약 110만 대로 추산됐다. 전년 대비 57% 증가한 약 310만 대의 전기차가 전 세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판매는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최대 2억2000만 대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IEA는 내다봤다. 물론 이 같은 수치는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IEA의 예상치보다 급격하게 전기차 판매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환경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최근 들어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이 향후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고 여기에 발맞춰 자동차 업체들 역시 잇달아 전기차 생산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각광받는 산업이 바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다. 서로 떼어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내연기관차가 가솔린과 디젤 등을 연료로 사용해 움직였다면 전기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를 통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전기차 판매가 늘수록 배터리 수요 또한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힘입어 기존 배터리 생산 업체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외 완성차 업계들마저 전기차 배터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면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 장악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본격화되는 추세다.


현재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이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아직은 업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것을 감안할 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관측 또한 제기된다.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상황을 살펴보면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무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각국의 정책이 이를 증명한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전기차 보급 비율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가 25년부터 내연기관차의 판매 금지를 선언했다.


독일은 2030년, 프랑스와 영국은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격적으로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이 2050년까지 자국 자동차 업체가 내연기관만 탑재한 차량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는 방침을 세웠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도 이와 비슷한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가솔린 자동차의 신규 공장 건설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지침을 내놓은 가운데 디젤·가솔린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에 대한 금지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 잇따라

이처럼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따라서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시장도 지금보다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운행의 핵심이 바로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심장이 멈추면 사람이 사망하듯이 전기차도 배터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국내외 시장조사 업체들 역시 전기차의 확산으로 배터리 시장의 미래 또한 밝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차 판매 증가에 따라 2016년 25GWh(기가와트시)에 불과했던 전기차 배터리 생산 규모는 2020년 110GWh, 2025년 350~1000GWh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따지면 2017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126억 달러 규모에서 2025년 626억 달러 규모로 5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에 주로 탑재되는 배터리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사용된 리튬이온전지가 성능이 향상되고 크기가 커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성능은 한 번 충전으로 500~600km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업계에서는 ‘3세대 전기차 전용 배터리’라고 부르는데, 해당 배터리 생산능력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부분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기술 유출을 우려해 이를 외부에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스텔스 이노베이션(stealth innovation)’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즉 정확하게 얼마나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뛰어난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략 중국보다 1년 정도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유수의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에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LG화학은 3세대 전기차 배터리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아우디·현대차·기아차 등 완성차 회사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도 BMW를 비롯해 폭스바겐·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 글로벌 업체 전기차 모델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 초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20분 급속 충전 기술을 접목해 최대 600km까지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를 공개하며 기술력을 뽐내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다소 뒤늦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임러와 현대·기아차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데,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3사의 실적 또한 빠르게 늘며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무섭게 ‘스파크’ 튀는 전기차 배터리 전쟁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에 기반해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 일색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소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다소 우려스러운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당분간은 호황을 누릴 수 있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다봤을 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 기술력은 ‘최고’ 평가

무엇보다 중국 업체들의 두드러지는 성장세가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꼽힌다. 기술력에서는 국내 업체들보다 뒤질지 몰라도 막대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최근 업계를 선도하는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올해 1월부터 5월) 순위에서 중국의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1~5월 동안 CATL의 출하량은 4311MWh로 18.5%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이다. 전년 동기로 따졌을 때 출하량 1위였던 일본 파나소닉은 2위로 밀려났고 LG화학은 2위에서 4위로 순위가 떨어졌다. 삼성SDI는 4위에서 6위로 하락했다. 3위는 중국 업체인 비야디(BYD)에 돌아갔다.
무섭게 ‘스파크’ 튀는 전기차 배터리 전쟁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349%의 성장세를 보였고 BYD도 158%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10위권 업체 중 중국 업체만 5곳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역할도 컸다. 2016년부터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침으로 자국 업체들을 대놓고 밀어줬다.

중국 내 전기차 판매 가격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정도다. 이렇다 보니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업체들과 현지에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중국에 출시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출하량을 제외하면 LG화학은 2위,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4위와 7위로 나타난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이후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계획대로 이행될지는 쉽게 속단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CATL은 최근의 성장세를 몰아 국내 배터리 3사가 생산 공장을 지으며 공략해 왔던 유럽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며 국내 업체들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공급과잉 우려도 제기

또한 완성차업계가 직접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뛰어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에 미래의 위협으로 꼽히고 있다.

얼마 전 미국 GM과 일본 혼다는 보다 성능이 뛰어난 전기차 배터리를 함께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파나소닉과 함께 2030년까지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성능이 뛰어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할 계획을 내놓았고 BMW 역시 미국 스타트업과 함께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돌입했다고 알린 바 있다.
무섭게 ‘스파크’ 튀는 전기차 배터리 전쟁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향후에도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제조비용의 3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 전문 제조사가 만드는 배터리를 돈을 주고 사 넣어야 한다”며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오기 전에 자체 개발한 배터리를 완성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잡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거나 투자를 통해 기존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며 “당분간은 호황을 누리겠지만 전기차 시장의 확산이 생각보다 더디거나 지나치게 경쟁 업체들이 많아지면 공급과잉으로 업계의 구조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는?

최근 들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전기차 확산에서 배터리 성능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리튬이온전지는 성능 향상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충격이나 압력에 발화 가능성이 높고 충전 소요 시간도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진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업계에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고체 전지가 전기차에 가장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고체 전지는 기존 리튬이온전지의 양극과 음극 사이에 리튬이온을 전달하도록 채워 넣은 액체 전해질과 분리막을 고체 전해질 층으로 대체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체 전해질은 액체에서의 발열이나 인화성이 없어져 안정성을 대폭 높일 수 있고 충전 속도도 향상시킬 수 있다. 다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고체 전해질이 액체보다 리튬이온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 상용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