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판 러스트벨트' 회생프로젝트, 부활하는 디트로이트 현장을 가다]
-마크 덴슨 DEGC 부사장 “창의적 인재 늘면 대기업 투자는 따라와”

[디트로이트(미국)=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떠오르는 디트로이트(Detroit is on the rise).’ 디트로이트시경제개발기구(DEGC)의 구호다. 지금 디트로이트가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을 이렇듯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문구가 또 있을까. DEGC는 1978년 미시간 주 정부가 도입한 비영리기관이다. 거의 40여 년간 디트로이트 경제 부활의 ‘엔진’ 역할을 도맡고 있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 금융가에 자리한 DEGC 사무실에서 지난 10월 12일 마크 덴슨 DEGC 투자개발부문 부사장을 만났다. 덴슨 부사장은 “현재의 디트로이트는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시’로 바뀌었는데도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며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외에도 다양한 산업이 성장하는 최첨단 기술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가게·스타트업 키워 도시 매력 높이니 ‘쿨 키드’ 몰려들었죠”
-최근 디트로이트의 경제 부활을 보여주는 여러 숫자 중 가장 의미 있는 지표를 꼽는다면.

“디트로이트 내 투자 금액은 오랫동안 하락세를 그려오다 디트로이트시의 파산 신청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상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지표는 디트로이트에 대한 투자의 종류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과 연관된 자동차 할부 금융 서비스를 시작으로 최근엔 금융 서비스 분야도 상당히 커지고 있다. 차량 간 커뮤니케이션이나 보안 기술 혹은 대용량 배터리와 관련된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고 최근에는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산업의 다양성’이 매우 커졌다.

또 하나는 이 도시에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는 새로운 건축물의 숫자다. 지금 이 도시는 어디를 가더라도 크레인이 보인다. 말 그대로 수십억 달러가 투자된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부동산 개발은 당장의 수익을 기대하며 진행하는 투자가 아니다. 자신을 위한 투자라기보다 ‘손자 세대’를 위한 투자다.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란 의미다.”

-DEGC는 최근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다른 글로벌 도시와 비교해 디트로이트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갖는 매력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디트로이트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선에 자리해 있다. 기업으로서는 매우 저렴한 비용에 손쉽게 두 나라에 대한 접근과 사업 진출이 가능하다. 둘째, 교통 인프라가 잘돼 있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번성했던 지역이 갖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용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는 물론 시카고 등과 비교해도 이곳은 거주비용과 사업을 영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

-디트로이트의 경제 부흥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디트로이트의 성장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구·문화적인 측면 등이 결합되면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시간적·지리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트로이트의 흥망성쇠를 얘기하려면 사실 아주 오랜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2008년 이전 디트로이트는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슈퍼볼’이나 ‘내셔널 풋볼 리그’와 같은 메이저 스포츠 게임을 활용했다. 국가적인 대형 스포츠 게임을 유치하며 그 과정에서 도로를 정비하고 공원을 지었다. 인근에 호텔이 들어섰고 상권이 살아났다. 이와 같은 메이저 이벤트가 TV를 통해 노출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어 이곳에 땅을 사고 새롭게 건물을 올렸다.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가 닥쳤다. 당시 미국은 ‘감기’에 걸렸지만 디트로이트는 ‘독감’에 걸렸다. 이듬해인 2009년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 등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빅3가 줄줄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자동차 기업들의 위기와 함께 수많은 일자리가 디트로이트에서 사라졌고 디트로이트의 인구 유출이 본격화됐다. 곤궁해진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삶으로 인해 세수가 급감했다. 결국 2013년 디트로이트시 지방정부는 파산을 선언해야 했다.

지금 돌아보더라도 2010년 무렵은 우리에게 정말로 힘들고 우울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조금 다른 걸 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DEGC는 디트로이트를 미국의 도시들 가운데 ‘미국 내 가장 가치가 큰 시장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디트로이트의 얼굴’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디트로이트의 얼굴’을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당시 디트로이트의 자산 가치는 말도 못할 정도로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당시 우리가 고민한 것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이 메시지가 누구에게 전달돼야 할까.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바꾸기 시작한 것은 작은 가게들과 아주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디트로이트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는 저렴한 비용(affordability)과 개방성(openness) 그리고 자원의 활용성(availability)이었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에 커피숍을 열고 싶다면 1층에 자기 가게를 열고 2층에 자신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또 자기 앞집에 갤러리를 열고 자신은 그 뒷집에 주거할 수도 있다.

이 도시에 하나둘 이와 같은 작은 가게들이 늘어났다. 여기엔 버블티 가게가 생겨나고 저기엔 요가 스튜디오가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런 작은 가게들을 중심으로 한 ‘홈 아트’가 디트로이트의 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동시에 디트로이트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

-버블티 가게, 요가 스튜디오와 같은 작은 가게들이 지금과 같은 ‘디트로이트 부흥’을 이끌어 낸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인가.

“맞다. 내 기억으로는 2010년대 초반쯤 이제 막 하버드대를 졸업한 젊은 청년이 디트로이트에서 BBC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이 청년은 ‘하버드대를 졸업했는데 왜 디트로이트에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기에 ‘나는 스물네 살이지만 9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다’고 대답해 화제가 됐다. 당시 디트로이트에는 이런 식의 낙관론이 서서히 퍼져 갔다.

이 같은 기회가 젊고 창의력 넘치는 사람들을 이 도시로 끌어당겼다. 말하자면 디트로이트에서는 아주 적은 돈으로 창고도 사고 집도 사고 공간을 넓게 쓰는 게 가능했다. 이는 소위 ‘쿨 키드’ 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됐다. 예술가·건축가·디자이너·소프트웨어 개발자·엔지니어 등 온갖 종류의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디트로이트에 몰려들었다.

디트로이트에 건축사 사무소 하나가 문을 열면 그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버블티 가게를 이용하고 갤러리를 찾아가는 고객이 됐다. 그렇게 더 많은 버블티 가게와 갤러리와 요가 스튜디오가 생길수록 이 도시의 매력은 더 높아졌다.”
“작은가게·스타트업 키워 도시 매력 높이니 ‘쿨 키드’ 몰려들었죠”

-최근에는 구글과 같은 대기업들도 디트로이트에 새로운 사무실을 여는 등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선순환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매력 있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직업군이 몰려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 같은 흐름이 포드·구글과 같은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고리 역할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디트로이트는 큰 바닷속 생태계다. 이 바다에 더 많은 물고기가 모여들기 위해 DEGC가 해야 할 일은 바닷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바닷속에 수초(작은 가게)들이 풍성하게 자라나면 물고기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물고기가 많아지면 고래나 상어(대기업)도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이게 2010년 이후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경제적 변화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가.

“2010년 이후 디트로이트의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소상공인이든 스타트업이든 이들에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해 주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할머니의 레시피로 제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음식점이나 혹은 식료품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이 레시피를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면 디트로이트 내에 푸드 이노베이션과 관련한 인큐베이터 업체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스타트업 기업가가 획기적인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우리는 이 기업가에게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해 보고 시제품까지 만들어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디트로이트 역시 이와 같은 모든 환경이 갖춰지고 나서야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이 됐고 실제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재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DEGC가 집중하는 것은 이 도시에 더 많은 자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이미 도시가 갖고 있는 자원들이 보다 서로 손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큐레이팅’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각각의 자원이 자리한 점과 점을 연결해 ‘접근성’을 높여주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미드타운에 가게를 내든 혹은 조금 더 깊은 주택가에 자리 잡든 디트로이트 내의 원하는 모든 자원에 한 번에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보행자 도로를 가꾸거나 디트로이트 도로 위의 Q라인도 이와 같은 ‘연결성’을 높이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행로를 가꾸는 것이 어떻게 ‘자원의 연결성’을 높여줄 수 있나.

“몇 년 전만 해도 디트로이트미술관에서부터 이곳 다운타운의 금융가까지 도로를 걸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걸어오는 내내 도시의 풍경이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로에 ‘초록색’을 심는 작업을 진행했다. 도로 위 쓰레기를 없애고 깨끗하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지금은 도로를 걷다 보면 풍경이 꽤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경험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인프라를 투자하고 건축을 바꾸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감정적인 관여도를 높여야 한다. 결국 사람들을 어떻게 밖으로 끌어내고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만드느냐의 싸움이다.”

-작은 가게와 스타트업을 통한 경제 부흥 전략이 ‘디트로이트 산업의 다변화’를 유도하는 데도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요즘의 산업은 옛날과 달리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고 쉽게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전처럼 한 가지 전략만으로는 산업의 다양성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변화들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인프라 투자와 관련해서는 ‘공간’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크고 멋진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공간에 대한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도시를 걸어가면서 ‘아, 나 여기에 투자하고 싶어’, ‘아, 여기 이 빌딩을 호텔로 바꾸면 멋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이런 환경이 안 된다면 다양성도 얻지 못한다. 환경이 바뀌면 매력 있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든다. 결국 비즈니스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3P라고 생각한다. 가격(Price)·공간(Place)·사람(People)이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가꿔 나가는지가 도시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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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5호(2018.10.22 ~ 2018.10.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