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보수 대통합’ 총대
- ‘급조 정당’ 오명 씻으려면 ‘노선 정립’ 확실히 해야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일까. 2020년 4월 예정된 차기 총선을 1년 반 정도 앞두고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벌써부터 ‘헤쳐 모여’ 움직임들이 나타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계 개편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세 선거에서 완승해 새판짜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여당은 두 야당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선거 앞두고 정치판에 또 등장한 ‘빅텐트론’
자유한국당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총대를 멘 양상이다. 명분은 이른바 ‘보수 대통합론’, ‘보수 빅 텐트론’이다.

견고한 지지율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맞서 지금처럼 보수 진영이 분열된 상태로는 다음 총선에서도, 대선에서도 가망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 반문재인’ 전선을 형성해 보수 결집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이 보수 중심성을 확보하고 있고 언제든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유한국당 중심의 통합을 피력했다. 통합 방식에 대해선 “하나가 되기에는 이질적인 보수가 있다”며 “당 대 당이 아닌 다양한 집단과 네트워킹을 유지하고 (보수 통합이) 가능한 분들을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잠재적 대선 후보들을 잇달아 만나 자유한국당에 합류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 보수 진영 인사들과 연쇄 회동하며 “함께하자”는 뜻을 나타냈다.

◆ 원희룡·황교안·오세훈 모두 ‘미지근’

하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황 전 총리는 ‘보수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쇄신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가 범보수 진영을 하나로 묶는 계기로 만들면 황 전 총리가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 지사는 줄곧 “중앙 정치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오로지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여 단기간 내 자유한국당 입당과 같은 선택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어렵사리 승리를 거둔 만큼 당분간 제주 도정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는 게 원 지사 측의 얘기다. 원 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국당을 나와 바른정당에 합류했고 이후 바른미래당에 적을 두고 있다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탈당해 현재는 무소속이다.

오 전 시장은 큰 틀에서 보수 대통합에 동의하면서도 입당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다. 그는 “여당 견제 기능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되는데 과연 제가 (자유한국당에) 들어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인지 등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당 내외에의 몇몇 분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당의 1차 수술(쇄신)이 진행되기 시작한 국면이고 다음 전당대회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총선까지의 몸부림은 2차 수술”이라며 “2차 수술이 가능한 여건이 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황 전 총리나 오 전 시장 모두 당장은 자유한국당에 들어가는 것보다 좀 더 시간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김병준 위원장이 보수 대통합의 끈을 엮을 만한 능력이 되는지, 자신들이 들어가 역할을 할 여지가 있는지 등을 살펴본 뒤 합류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김병준 체제가 쇄신을 제대로 해 보수 대통합을 이뤄낼 발판을 갖출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자칫 정치적 운신의 폭만 좁힐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쇄신 작업과 보수 대통합 작업이 성과를 거둔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만 현재로선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다.

보수 대통합이라는 원칙에는 동의하더라도 구체적인 통합 방법론에 대해선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리고 있다. 당장 친박근혜 세력의 핵심인 ‘태극기 부대’를 끌어안는 문제를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현격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른미래당 내 사정도 복잡하다.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1월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과 안철수 전 의원이 주도해 창당했던 국민의당이 합당해 탄생한 정당이다.
선거 앞두고 정치판에 또 등장한 ‘빅텐트론’
손학규 대표는 강경 반대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쇄신도 없이 바른미래당과 통합하자는 것은 막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했다. 또 “만약 우리 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갈 사람이 있다면 가라”는 말을 연일 반복하고 있다. 김관영 원내대표도 “자유한국당은 적폐 청산의 대상이다. 없어질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 새누리당 출신 의원들의 속내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바른미래당 명패로 차기 총선에서 지역구 구민들의 지지를 얼마만큼 얻을 수 있을지 솔직히 고민이 된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선택이 통합의 향방을 가를 변수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현재로선 자유한국당이 어떤 쇄신을 이뤄 갈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며 “통합의 명분이 얼마나 갖춰지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보수 대통합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말은 보수 대통합이라고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간 이념적인 간극은 존재한다. 그런 만큼 노선 정립을 먼저 하는 게 우선이지만 일단 몸집 불리기부터 나선 것은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선거 승리를 목표로 이념과 지지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원칙 없는 이합집산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선거 패배 책임 등을 놓고 서로 싸움 끝에 헤어졌다가 선거가 다가오자 다시 손을 잡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든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내에선 또 당명 개정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 특유의 ‘떴다방 정당’이 나올 판이다.
◆ 통합 향방 가를 유승민의 선택

한국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보수·진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를 겨냥한 1회용 급조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안정적인 정당정치 발전은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지만 이념과 철학보다 선거 유불리에 따라 서커스단 가설(假設)무대처럼 세웠다가 접기를 반복한 게 한국 정당 70년사(史)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주자를 위해 당을 만들면서 ‘위인설당(爲人設黨)’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 속 내용은 그대로인 채 간판만 바꿔 다는 ‘신장개업’도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국회의원 후보를 낸 정당은 210여 개이며 평균수명은 30개월이다. 국회의원 임기(4년)에도 훨씬 못 미친다. 2003년 11월 창당된 열린우리당을 비롯해 여러 정당들의 ‘100년 정당’을 호언했지만 몇 년 안 돼 간판을 갈아 달곤 했다.

그러다 보니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한 정당은 손에 꼽을 정도다. 1963년 5월 창당돼 1980년 10월까지 17년 5개월간 존속한 민주공화당이 가장 길다. 그다음은 한나라당(14년 3개월)과 신민당(13년 8개월) 순이다. 자유민주연합도 10년을 넘겼다.

100년 이상 당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민주·공화당, 영국 노동·보수당과는 판이하다. 이들 정당들은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주의’와 ‘정견’이 있고 그에 따라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거에 졌다고 해서 당 간판을 바꿔 달거나 당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현재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보수 대통합론은 또다시 정계 개편을 촉발할 것이다. 이합집산한 끝에 또 새로운 정당들이 탄생할 것이다. 이번엔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6호(2018.10.29 ~ 2018.11.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