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고용의 패러다임 바꿀 것으로 기대, 임금·노동시간 놓고 노사 간 이견에 ‘좌초 위기’
표류하는 ‘광주형 일자리’…백지화 가능성도 ‘솔솔’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노동자는 임금을 낮추고 기업은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복리·후생비용을 지원해 노동자의 낮아진 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인 ‘광주형 일자리(완성차 공장 설립)’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자는 취직해 좋고 기업은 인건비를 줄여 좋고 정부와 지자체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좋은, 그래서 모두가 ‘윈-윈’인 것처럼 보이는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 모델이지만 노동계와 1대 주주인 광주시, 2대 주주인 현대차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협상만 반복하면서 백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 측에 따르면 지난 11월 15일 1차 데드라인을 넘긴 데 이어 11월 말까지 마지막 시한을 정하고 협상에 들어갔지만 주요 쟁점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국회예산심의 법정 시한이 12월 2일이어서 이달 말까지 협상을 마무리한다고 한차례 마지노선을 연장했지만 적정 임금과 노동시간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차가 커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주44시간·연봉 3500만원’이 협상의 기준

광주시와 현대차 간 핵심 쟁점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적정 임금·적정 노동시간, 지속 가능성 방안 등 두세 가지 사안이다. 적정 임금·적정 노동시간 논란은 시와 현대차가 지난 9월 협약서 초안에 명시한 ‘주44시간, 연봉 3500만원’ 부분이다.

애초 완성차 공장 노동자의 평균 연봉 9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4000만원 정도가 광주형 일자리의 적정 임금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광주시와 현대차는 협상 과정에서 초임 노동자의 평균 연봉을 3500만원 선으로 합의했고 노동계는 “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특히 근로기준법상 1일 8시간 주 40시간이 원칙이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협약서에 주 44시간을 넣는 것은 상위법을 위반하는 내용인 만큼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다만 임금 부분은 법인 신설 후 경영수지 분석을 통해 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현대차는 주 44시간이 아니라 40시간으로 하자는 것은 특근비를 따로 지급하라는 것이라며 인건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주 40시간으로 하고 초과근무는 ‘금전’이 아니라 ‘시간’으로 보상하는 ‘근로시간계좌제’를 도입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5월 광주시가 현대차에 제안했던 ‘5년간 임금·단체협약 협상 유예’ 조항 삭제도 쟁점이다. 당초 취지는 노사별로 ‘상생노사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협의회에서 결정한 사항은 최소 5년간 유효성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와 노동계는 최근 투자유치추진단 회의에서 이를 삭제했다. 이 부분이 5년간 임금을 동결하거나 노사 협상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 때문이다. 그 대신 ‘적정 임금’은 ‘자주적인 노동 이해 대변체’가 주체가 돼 교섭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현대차는 5년 계약 기간 노동조건이 쉽게 바뀌지 않는 구조, 노사갈등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고 투자를 결정했는데 시가 약속을 뒤집었다며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 부분은 신설 공장에서 생산할 1000㏄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수익성 여부다. 광주시는 국내시장이 포화 상태인 경형 SUV 생산의 지속성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변경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교섭과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연동하고 적정 단가를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조건도 추가됐다. 노동자 임금을 올릴 때 협력사의 납품단가도 올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기존 노조가 반발하고 합의문 조항이 협약서 초안과 달리 노동계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표류하는 ‘광주형 일자리’…백지화 가능성도 ‘솔솔’
◆ 노동계 반발 넘어야…수익성도 갸우뚱

설사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의 반발이 남아 있다. 이미 민주노총과 현대차·기아차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타결 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현대차를 압박 중이다.

노조는 자동차 과잉공급 상태에서 10만 대를 추가 생산하면 국내 완성차와 부품사의 붕괴를 가져올 게 불을 보듯 뻔하고 광주형 일자리로 노동자 임금이 반값으로 낮춰지면 지역 간 저임금 하향 평준화 경쟁에 기름을 붓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급과잉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한 공장 설립에 참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카셰어링(차량 공유) 등 자동차 소비 개념이 바뀌는 상황에서 생산능력 증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또한 현대차 공장이 아닌 만큼 현대차가 작업 지시 등을 직접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향후 간접고용 문제와 함께 소송으로 번질 수 있다. 기아차의 경차를 생산하는 동희오토에서도 현재 동일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협상이 잘 이뤄지더라도 현대차가 직접 투자할지 여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광주 지역 내에서 합의가 끝나지 않은 이상 현대차와의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 확보 등 정치권과의 협상은 다소 수월할 전망이다. 특히 정부와 여야 모두 ‘광주형 일자리’에 초당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합의만 이뤄진다면 예산 반영은 즉각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부와 광주시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 지원을 위해 임대주택·빛그린산단 진입로·노사동반성장지원센터·공공어린이집·체육관 등 3000억원 규모의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하고 내년도 예산에 국비 101억원을 요청해 둔 상태다. 특히 광주시는 이와 별도로 합작 법인 출자금 명목으로 시비 590억원을 내년도 본예산에 편성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지원에 나서고 있는 만큼 협상이 타결만 되면 사업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11월 22일 진행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광주형 일자리가 마지막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타협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기업은 경쟁력을 갖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고용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통 큰 양보와 고통 분담을 통해 꼭 성공하기를 기대하며 합의가 이뤄지면 정부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표류하는 ‘광주형 일자리’…백지화 가능성도 ‘솔솔’
◆ 공장 설립의 기대 효과는

광주형 일자리는 우리 사회에서 노사상생·노사협력형 일자리 창출의 전형적인 모델로 기대를 받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국내에 신규 완성차 공장이 설립된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광주에 새로운 완성차 공장이 설립된다는 것은 국내 제조업의 부활이나 고용 창출이라는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대규모 인프라 시설이 확충되면서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부도 이미 공장이 들어서는 산업단지 진입로와 임대주택 건설 등 관련 예산 3000여억원을 해당 부처별로 확보해 놓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 완성차 공장을 착공, 2021년 상반기 중 첫 완제품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복안이다.

협상이 끝나면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업단지 전체 407만여㎡(약 123만 평) 가운데 1단계 지구(264만여㎡) 내 62만8000여㎡에 현대차 공장이 들어선다.

빛그린산업단지는 내년 이후 조성되는 2단계 지구 142만7000여㎡를 포함해 전체 면적의 33% 정도가 지원 시설, 공공용지, 주거용지, 공원·녹지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 지역에 노동자 숙소, 어린이집 등 각종 생활 지원 시설이 잇따라 들어선다.

합작 법인 설립 역시 내년 상반기로 잡고 있다. 완성차 공장 법인은 자기자본금 2800억원 중 광주시가 590억원(21%)을, 현대차가 530억원(19%)을 각각 투자한다. 나머지 1670여억원은 협력 업체와 지역 경제계로부터 조달한다.

여기에 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차입금 4200억원을 보태 총 7000억원을 투자한다. 현대차는 연간 7만~10만 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위탁 업무를 맡는다. 경영은 형식상 1대 주주인 광주시의 몫이다.

완성차 공장이 설립되면 직접고용 1000명, 협력 업체 등 간접고용 1만1000여 명 등 총 1만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노동자는 시와 현대차 간 협상으로 결정되는 초임 외에도 임대주택 등 각종 정부 지원금을 보태 1인당 700만~800만원의 추가 임금을 받는 꼴이다.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한국의 산업·노동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게 된다. 노·사·민·정 합의를 토대로 결정된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 이유다.

◆ [돋보기] 광주형 일자리란?
-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폭스바겐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는 한마디로 ‘노사상생’을 지향한다. 2014년 민선 6기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공약으로 내걸면서 민선 7기까지 이어졌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전임 시장이 계획했지만 내용이 좋은 만큼 계속 사업으로 이어 가겠다”며 투자 유치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 폭스바겐의 ‘AUTO5000’을 참고했다. 폭스바겐은 2001년 경제 침체로 생산량이 급감하는 등 위기가 닥치자 별도의 독립 법인과 공장을 만들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본사 공장이 있는 볼프스부르크 지역사회와 노조가 “공장 해외 이전은 안 된다”며 회사의 제안을 수용했다. 5000명의 실업자를 기존 생산직의 80% 수준인 월급 5000마르크(약 300만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독립 회사로 설립된 AUTO5000은 이후 정상적인 궤도에 올랐고 위기가 끝난 2009년 1월 폭스바겐그룹에 다시 통합됐다. 광주시는 이같이 노사가 한 발짝씩 물러나 위기를 극복한 폭스바겐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핵심 내용 역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들지만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업체 노동자의 임금에 미치지 않는 부분은 정부와 지자체 등이 임대주택 제공 등으로 일부 지원한다. 제조업체도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하청 업체의 기술 지원 등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췄다.

광주형 일자리가 고용 절벽 시대에 청년 실업 문제를 풀고 노사상생을 꾀하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