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취임 20주년 빅 이벤트, 계열분리·증여세 화두 부각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해 11월 형제 등 친족들에게 1조원 규모의 SK(주) 주식을 깜짝 증여한 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당시 SK그룹 측은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지지해 준 친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책임 경영을 하기 위해 지분을 증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계열 분리나 지배구조 변화와 무관하다고 강조하며 확대해석을 일축했다.


하지만 사촌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SK그룹 내 오너 일가 대규모 주식 증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추후 최 회장이 물려준 주식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최 회장의 친족 증여가 그동안 경영 활동을 지지하고 성원해 준 데 대한 감사 의미를 넘어 계열 분리 등 지배구조 변화의 화두를 던졌다는 점이다.


최태원 SK 회장, 1조원 주식 증여 그 후…친족 증여가 남긴 것



◆ 최태원, 최재원 등에게 주식 1조원 증여


최 회장은 1998년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의 타계로 서른여덟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최 전 회장이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을 인수해 화학·에너지·통신의 삼각편대를 갖춘 그룹 뼈대를 세웠다면 최 회장은 반도체·바이오·배터리·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미래 산업을 키우는 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 회장 취임 당시인 1998년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의 재계 5위였지만 현재는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을 넘볼 만큼 자산 규모가 팽창했다. 최근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60개 대기업집단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공정자산을 집계한 결과 삼성이 418조2170억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SK그룹이 213조2050억원으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20조5980억원으로 2위를 기록한 현대차그룹과 박빙의 차이다. 이는 지난해 반도체 특수 등에 힘입은 결과다. 최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를 인수하며 반도체·바이오 등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이처럼 그룹이 재계 2위를 넘볼 정도로 성장한 데는 최 회장의 경영 능력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이 큰 영향을 미쳤다. SK그룹은 최 회장이 지난해 취임 20주년을 맞아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한 최종현학술원에 520억원 상당의 SK(주) 지분 20만 주를 출연한데 이어 그룹 성장의 근간이 돼 준 형제 등 친족들에게도 고마움의 표시로 SK(주) 지분 329만 주(4.68%)를 증여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먼저 친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지분의 가치는 1조원에 육박하는 9228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374억원(0.19%) 규모의 SK(주) 주식 13만3332주(0.19%)를 증여하며 최 회장의 뜻에 동참했다. 이때 주식 증여로 최 회장의 SK(주) 지분율은 기존 23.12%에서 18.44%로 줄어들었다.


최 회장의 친족 증여에 담긴 의미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먼저 최 회장이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진행 중인 이혼소송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현재 이혼소송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개인사이기 때문에 관여하기 어렵다. 재산 분할 소송은 아직 제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2003년 소버린 사태를 떠올리며 경영권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최 회장이 친족들을 대상으로 ‘통 큰’ 이벤트를 한 배경은 무엇보다 그룹 특유의 사촌 경영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지주사인 SK(주)와 SK디스커버리를 각각 책임지며 사촌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SK그룹의 창업자는 최종건 전 회장이지만 성장의 기틀을 닦은 것은 동생 최종현 전 회장이었다. 창업자인 최종건 전 회장이 1973년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최종현 전 회장이 2대 회장을 맡았다. 1998년 최종현 전 회장이 별세하자 친족들은 가족회의를 거쳐 창업자가 아닌 2대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을 3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최종건 전 회장의 아들로 2008년 작고한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종현 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 SK가(家) 5형제가 논의 끝에 당시 외환위기 속에서 그룹을 이끌 적임자로 최 회장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었다.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별다른 다툼이나 분쟁은 없었다. 창업자의 아들로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최윤원 회장과 최신원 회장, 최창원 부회장의 경영권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점도 최태원 회장의 친족 증여 결심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 증여에서 빠진 최창원, 계열 분리설 솔솔


그동안 재계에선 SK그룹 내 사촌 경영인들이 책임지고 있는 회사들의 계열 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신원 회장이 SK그룹의 모태 기업인 SK네트웍스를, 최창원 부회장이 SK케미칼을 중심으로 계열 분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최태원 회장의 작년 말 지분 증여로 가족들이 지주사 SK(주)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가지게 되면서 해묵은 이슈였던 계열 분리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지분 증여는 계열 분리와 무관하다”며 최태원 회장의 주식 증여로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최창원 부회장이 수증자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또다시 계열 분리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사촌 형인 최신원 회장에게는 280억5000만원 상당의 SK(주) 지분 10만 주를 증여했지만 최창원 부회장에게는 주식을 증여하지 않았다. 최 부회장이 이미 그룹 일부 계열사에서 지배력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K디스커버리는 SK그룹 내에 있지만 독자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SK디스커버리 최대 주주(40.18%)다.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100%)·SK플라즈마(100%)·SK가스(45.60%)를 보유한 사실상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디스커버리그룹은 SK건설(28.3%)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미 수년 전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 요건을 충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재계에선 계열 분리는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9월 SK D&D 주식 387만7500주(24%) 전량을 주당 4만4000원에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면서 1706억1000만원의 현금도 확보한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SK건설이 조기행 전 부회장과 안재현 사장 각자대표 체제에서 안 사장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것을 두고도 SK디스커버리 계열사로 편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 전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 측근 인사로 평가되며 안 사장은 최 부회장 측근으로 꼽힌다.


최태원 회장의 친족 증여에 대해 남다른 형제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주식 증여 대상과 비율의 차이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에게 총증여 지분의 절반인 166만 주를 증여했다.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49만6808주),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 주) 등 친족들에게도 주식을 증여했지만 최 수석부회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최태원 회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동생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해왔다. 최종현 전 회장 타계 당시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한 채 최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이번 주식 증여로 표시했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선 최 수석부회장이 최 회장으로부터 받은 SK(주) 주식을 자신의 경영권 확보에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아직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SK E&S 대표 시절인 2013년 횡령죄로 수감돼 3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 3년 3개월 만인 2016년 7월 가석방으로 출소했기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징역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사면된 날로부터 5년 뒤까지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 2016년 10월 20일을 기준으로 법정 형기는 이미 만료된 상태지만 5년 동안 SK그룹의 주요 관계사에서 등기이사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최 수석부회장은 2021년에야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설 수 있다.


최태원 SK 회장, 1조원 주식 증여 그 후…친족 증여가 남긴 것



◆ 증여세 신고 납부 기한 도래…일부 주식 매도


최태원 회장의 주식을 물려받은 오너 일가의 증여세 신고 납부 기한이 돌아오면서 개인당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증여세를 어떻게 납부할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증여세 신고 기한은 증여를 받은 달의 말일부터 3개월 내다. 지난해 11월 말 주식을 증여받은 수증자들은 2월 말까지 증여세 납부 재원 마련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친족 23명에게 넘겨준 SK(주) 주식 329만 주(4.68%, 9228억4500만원)에 대한 증여세 규모는 5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오너 일가 10여 명은 1월 중 증여받은 주식 일부를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창업자 일가 중 현재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최윤원 SK케미칼 전 회장 가족을 중심으로 주식의 장내매도가 이뤄졌다. 1월 처분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규모는 약 0.46%다. SK그룹 관계자는 “친족들의 주식 매각 관련해선 회사에서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이기 때문에 전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친족들의 주식 매각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신원 회장 일가 등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최태원 회장에게 받은 주식을 매각하면서 SK(주)의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기존 31.05%에서 30.54%로 낮아졌다. 최태원 회장에게 가장 많은 지분을 물려받은 동생 최 수석부회장은 향후 경영권 확보를 위해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나눠 납부하는 연부연납 방식으로 증여세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친족 증여를 계기로 최태원 회장 자녀들의 지분 소유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자녀들은 SK그룹 내 지분이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해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돋보기
-최태원 회장, ‘소버린 사태’ 이후 지배구조 혁신 추진


소버린 사태는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권을 공격한 사건이다. 소버린은 최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면서 SK주식회사(현 SK이노베이션, 지주회사 전환 전) 주가가 급락하자 약 1700억원으로 지분 14.99%를 사들여 제2대 주주로 올라서 최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당시 최 회장 등 총수 일가 직접 지분은 1.39%에 불과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SK 주가가 5000원에서 5만원대로 급상승하면서 소버린은 8000억원 정도의 차익을 실현하고 물러났다.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이후 최 회장은 2004년 이사회를 강화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으며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업구조·재무구조·지배구조가 모두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독립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와 기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가장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평가받고 있는 GE보다 더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이사회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소버린 사태 이후 최 회장은 주주 권익 보호 등 사회적 가치 실현과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공동 의사결정 체제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운영하며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배당 확대를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을 편 것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이 2월 20일 그룹 지주사인 SK(주)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한 배경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