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2부 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화성 삼괴고 ‘앙트십스쿨’ 가보니…첫 수업 주제는 ‘나 관찰하기’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저녁 7시에 찾아간 화성 삼괴고 도서관은 왁자지껄했다. 25명의 학생이 5명씩 조를 짜 앉아 있었고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떠들며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기업가 정신 교육 스타트업 오이씨랩에서 진행하는 ‘앙트십스쿨’ 첫 수업의 풍경이다.

앙트십스쿨은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수업이 아니다. 문제 풀이가 아닌 문제 해결을 통해 학생 스스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깨닫는 수업이다. 수업은 오이씨랩의 기업가 정신 코치인 양은주 앙꼬(앙트러프러너십코치의 준말)가 이끌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기업인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미디어에 나오는 기업인들은 구속되거나 좋지 않은 모습이 많은데 우리는 이번 수업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가치를 만들어 나간 기업가 정신에 대해 배울 거예요.” 양 앙꼬의 간단한 설명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화성 삼괴고 ‘앙트십스쿨’ 가보니…첫 수업 주제는 ‘나 관찰하기’

◆나를 관찰하며 세상과 연결하기

1주 차 수업은 ‘나 관찰하기’로 시작된다. 오이씨랩이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은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고 세상을 관찰하기 위해 자신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 관찰하기’는 다양한 카드에 관심사를 적고 카테고리로 분류한 다음 친구들과 공유하는 수업이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거창하지 않았다.

“나는 2학년 김용현이고 중고나라 직거래하는 걸 좋아해. 요즘 시세보다 싼값에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고 또 그걸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게 좋아. 카테고리는 유통으로 분류했어.”

“나는 1학년 하윤승이고 건물 모형 만드는 거랑 옷 보는 거 좋아해. 카테코리는 문화예술이랑 패션으로 분류했어.”

솔직하고 재치 있는 답변을 들은 양 앙꼬는 자신의 관심사를 세상과 연결한다. 누군가 패션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스타일쉐어 창업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주고 유튜브에 관심을 보이면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 설명한다. 설명은 20초 이내에 짧게 끝난다.

“윤승이는 건물 모형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3D 프린터로도 집을 만들 수 있는 것 알아요? 러시아 스타트업에서 3D 프린터로 36㎡(11평)짜리 집을 하루 만에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기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에 대해 친구들과 공유한 다음 팀 활동에 들어간다. ‘마시멜로 챌린지’ 시간이다. 스파게티면 20개, 테이프 1m, 실 1m를 활용해 탑을 쌓고 10분 안에 마시멜로 1개를 구조물의 가장 높은 곳에 올리는 과제다.

학생들은 서둘러 제각각 의견을 냈다. “어떡해, 부러뜨렸어!” “그럼 아예 스파게티 한 개를 4등분해 묶은 다음 튼튼한 기둥을 만들자.” 친구의 실수도 질책하기보다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구조부터 탄탄하게 세워 올리는 팀도 있었고 움집 모양으로 면을 휘어 구조물을 만든 팀도 있었다. 한 팀은 테이프로 실을 천장에 고정한 후 실에 마시멜로를 꽂은 스파게티 면을 붙이고 길게 늘어진 실을 따라 면을 이어 붙였다.

시간제한이 끝난 후 5팀 중 3팀이 구조물 만들기에 성공했고 2팀의 구조물은 무너졌다. 테이프의 접착력이 약하고 스파게티 면이 마시멜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기 때문이다.
화성 삼괴고 ‘앙트십스쿨’ 가보니…첫 수업 주제는 ‘나 관찰하기’
눈으로 봤을 때 가장 긴 팀은 천장에 실을 이어 붙인 팀이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 팀의 승리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밑에서부터 쌓아 올려 가장 높은 탑을 세운 팀의 손을 들어준 아이들도 절반이나 됐다. 양 앙꼬가 그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저건 탑이 아니잖아요. 문제를 보면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가장 높은 탑을 만들고 맨 상단에 위치해야 된다고 했어요. 구조물은 천장이 없어도 버틸 수 있어야 하는데 쟤네가 만든 건 천장이 꼭 필요하잖아요.”

기발하다고만 생각했던 기자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 수업에 정답은 없다.

마시멜로 챌린지는 유명 휴대전화 제조회사 디자이너인 피터 스킬맨이 디자인 훈련을 위해 고안한 실험이다. 당시 건축학도와 공학도, 기업 최고경영자(CEO), 기업 CEO와 수행 비서, 유치원생, 변호사, MBA 학생 등 총 6팀을 구성해 이뤄진 실험에서 유치원생팀이 3위, MBA 학생팀이 6위를 차지했다.

유치원생팀이 높은 성적을 차지한 이유는 가장 많이 시도해 봤기 때문이다. 오랜 생각 없이 구조물 만들기에 돌입했고 무너지면 개선하는 방법을 반복해 문제를 해결했다. 마시멜로 챌린지의 배경을 설명한 뒤 양 앙꼬의 말이 이어졌다.

“예전 경영학에서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중·장기 전략을 짜는 게 중요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긴 시간 계획을 짜고 준비만 하는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업데이트되는 세상이잖아요.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일단 프로토타입을 내놓고 시장 변화와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발전시키거나 다시 엎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중요해졌어요.”

이후에 이어진 수업은 세상 관찰하기다. 양 앙꼬는 학생들에게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물건 5개를 준다. 아이들이 특징을 관찰하며 자유롭게 추측하고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언제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의견을 모아 발표한다.

구멍이 뚫린 큰 집게, 자석이 부착된 동그란 플라스틱, 펭귄 모양의 고무 등 다양하다. 이 물건은 모두 젊은 창업가들이 생활 속 불편을 해소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봤을 때는 용도를 추측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관찰하고 발표가 끝나면 그제야 제품의 사용 설명서를 나눠준다. 큰 집게의 정체는 휴대용 컵받이, 펭귄 모양의 고무와 자석이 부착된 플라스틱은 휴대용 우산 물받이였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바로 물건을 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3D 프린터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주는 스타트업에 샘플을 받아보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홍보와 판매를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양 앙꼬는 누구나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보다 쉽게 판매할 수 있게 된세상의 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이처럼 ‘시도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도전 정신과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간단한 게임을 통해 기른다. 앨빈 토플러가 쓴 책 ‘부의 미래’에서는 세상의 변화 속도에 각 분야의 주체가 어떤 속도로 대응하는지가 나온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변화에 대처한다면 학교는 10마일, 법은 1마일이이라고 주장한다. 수업 내내 양 앙꼬가 세상의 변화에 대해 알려주는 이유다.
화성 삼괴고 ‘앙트십스쿨’ 가보니…첫 수업 주제는 ‘나 관찰하기’

◆학생이 운영하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내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이란’이라는 물음에 단 한 명도 ‘창업’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도전’, ‘실패해도 괜찮은 것’, ‘자신감’, ‘남들과는 다른 기회를 발견하는 것’…. 아이들 스스로가 정의한 기업가 정신이다.

아이들이 정의한 기업가 정신은 혁신적인 기업가들에게만 필요한 역량이 아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정신이다.

오일환 삼괴고 교사는 “학생들은 기업가 정신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과 주변 문제점을 보면서 가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며 “자신의 관심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개척하고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인간적인 가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이씨랩의 앙트십스쿨은 네이버가 후원하고 있다. 오이씨랩이 1주일에 한 번씩 10주 동안 수업을 진행한다.

1~2강에서 ‘나와 세상 관찰하기’가 끝나면 3강에서는 청소년들이 드는 가방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문제 해결 가방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4~5강에서는 한정된 자원(1만원·2시간·팀원)으로 진행하는 ‘만원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수익을 만들어 내는 가치 창조 훈련을 해본다.

6~9강은 학생들 스스로 학교 안팎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때 아이들이 실제 기회를 찾아내고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다. 시장 수요 조사를 위해 인터뷰를 하거나 설문 조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10강에서는 ‘앙트십과 나’를 주제로 앙트십을 통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박누리 오이씨랩 매니저는 “만원 프로젝트에서는 학생들이 실패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이 역시 수업에서 실패 자산 교육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실제 오이씨랩의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프로젝트를 보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2018년 참여한 위례고 ‘데탕트’팀 5명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을 위한 ‘수면실’ 아이디어를 냈다.

신도시에 생긴 신설 학교라 빈 교실이 많은데도 이를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문제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친구들의 인터뷰를 통해 수면실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 냈다. 자는 학생들 때문에 이동 수업 참여가 어려울 수 있다는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쉬는 시간이 아닌 점심시간에만 수면실을 운영했다. 팀원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수업 시작 3분 전에 미리 깨워 주는 서비스도 실시했다. 유휴 공간을 활용한 공간 플랫폼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셈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달라지는 것을 예견한 팀도 있다. 2017년 앙트십스쿨 만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안산공업고 ‘생마감마’팀은 시험 기간에 마스크를 팔아 수익을 남겼다. 시험 기간에 밤을 새우고 민낯으로 오는 학생들을 타깃으로 했다. 대용량 마스크를 2500원에 사 한 장씩 팔았고 그 결과 매출 6000원, 순이익 3500원을 남겼다.

기업가 정신 교육을 진행하는 기관과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에서도 A~G까지의 교육 모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아이디어를 활용해 직접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거나 보드게임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해하는 등 체험형 수업이 대부분이다. 스타트업 창업가와 만나 하루를 나누거나 관련 전문가들에게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다.

김효정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연구원은 “미래 직업과 일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만큼 자신의 미래와 직업을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기업가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교육에 참여했던 대신중 2학년 윤재훈 학생은 “수업을 듣기 전 기업가라는 말을 들으면 CEO 이미지가 떠올랐다면 이제 기업가란 우리 사회 속 문제를 찾아 해결해 나가는 도전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 인덱스]
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국, 기업가 정신 쇠퇴" 56.4% "기업가 정신 교육 필요" 87.3%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나 창업해야 하는 시대, 지식만 가르치는 건 직무유기죠”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삼성, C랩 통해 스타트업 설립 지원…‘제2의 삼성전자’ 탄생 기대
-현대차, 반세기 달리며 ‘품질 경영’ 장착…미래차 게임 체인저로
-SK ‘직물 공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반도체·바이오에 공격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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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