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 2부 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1·2세대 모여 77억원 펀드 조성…바이오 벤처 선배들도 투자 나서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액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국내 벤처 투자 총액이 3조4249억원을 기록했고 신규 벤처 펀드의 결성액도 4조6000억원을 넘어섰다. 2017년과 비교하면 무려 43.8%나 늘어났다.

정부, 해외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의 지원도 늘었지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벤처 1세대들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군 선배들이 자금, 창업 지식,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며 ‘혁신 전도사’로 변한 지 오래다.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벤처 1세대들도 후배 스타트업을 위해서라면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한국의 벤처 붐을 이끈 1세대들은 이제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자금을 투자하고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창업자들을 육성하며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벤처캐피털 세운 벤처 1세대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이재웅 쏘카 대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 이재웅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3개의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2007년 다음을 떠난 그는 2008년 투자회사 소풍(sopoong)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후진 양성에 나섰다. 이 대표가 특히 관심을 보인 분야는 소셜 벤처(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벤처기업)다. 소풍은 이 대표가 창업한 2008년부터 쏘카·텀블벅·자란다 등 42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 국내 기업의 가치는 6422억원에 달한다.

투자를 받은 신생 단계 스타트업 중 후속 투자를 유치 받은 비율도 52%에 달한다. 주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 기업의 전체 가치를 4억4000만원으로 고정하고 기업당 9000만원(지분율 9%)의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투자에 이어 멘토링과 후속 투자 유치 연계 등을 지원한다.

이 대표는 2009년 ‘SOQRI’를 세우고 스타일쉐어와 퍼블리를 비롯해 쏘카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대표는 소풍 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SOQRI 대표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SOQRI는 이 대표 개인 보유 자금으로 투자 활동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현재 SOQRI는 쏘카 최대 주주다. SOQRI의 쏘카 투자는 이 대표가 지분율을 유지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해왔다.

2014년엔 다른 벤처 1세대들과 힘을 모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현 글로벌투자 책임자) 등 벤처 1세대들과 함께 기금을 모아 벤처 자선 기업 C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17년 8월 서울 혜화동의 샘터 사옥을 C프로그램이 매입해 ‘공공그라운드’로 탈바꿈시켰다. 2015년엔 서울 성수동에 소셜 벤처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을 오픈했고 이듬해엔 임팩트 투자회사 ‘옐로우독’도 설립했다. 이재웅 대표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풍과 SOQRI·옐로우독·C프로그램은 모두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 입주해 있다.

이재웅 대표는 벤처 투자자로 활동하다가 작년 4월 차량 공유 서비스 ‘쏘카’의 최고경영자(CEO)로 경영 일선에 돌아왔다. 그는 복귀와 함께 “벤처 선배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택경 다음 공동 창업자 역시 2013년 초기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매쉬업엔젤스를 설립했다. 매쉬업엔젤스는 스타일쉐어·드라마앤컴퍼니(리멤버)·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브리치·튜터링 등 74개의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1세대 벤처 창업가들과 2세대 벤처 창업가들이 모여 개인 투자조합을 결성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 2월 결성된 개인 투자조합 2호(이하 2호펀드)는 총 77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액셀러레이터가 결성한 순수 민간 자본 개인 조합 중 최대 규모다.

지난해 진행된 개인 투자조합 1호펀드에서는 이재웅 쏘카 대표, 네오위즈 창업자인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이 25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했다. 2호펀드는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 정보기술(IT) 창업자들이 출자자로 참여했다. 1호펀드에 참여한 이재웅 대표와 장병규 의장 외에도 이기섭 비트망고 창업자 등이 참여했고 2세대 IT 창업자로는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문보국 레저큐 대표 등이 참여했다.

◆‘규제 완화’ 요구하며 벤처업계 목소리 대변
이택경 대표는 “이번 2호 펀드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팀, 특히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이 가능한 팀에 적극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첫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 역시 벤처 1세대들이 힘을 합쳐 설립했다. 전자 결제 업체 이니시스와 이니텍 창업자인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를 중심으로 이재웅 대표, 장병규 의장, 이택경 대표, 송영길 엔컴퓨팅 창업자 등 5명이 2010년 설립했다.

성공한 선배 창업가가 후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는다는 것을 유일한 운영 방침으로 내세워 각각 1억원의 투자금을 출자했다. 권 대표는 이후 마이리얼트립과 스타일쉐어 등 17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창업 DNA를 전했다.

네오위즈 창업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2010년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설립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동영상 검색 서비스회사인 엔써즈와 우아한형제들·틱톡 등 국내 스타트업 61개에 투자했고 자금 회수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IT뿐만 아니라 바이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창업자들 역시 후배들을 위해 엔젤 투자자(개인 투자자)로 나섰다. 2017년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과 김완주 씨트리 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와 민간이 조성한 초기 바이오 기업 육성 펀드에 5억원씩을 출자했다.

벤처 1세대들은 정부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국내 스타트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규제 완화는 더디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벤처인들과의 만남은 올 들어 다섯 번이나 진행됐다. 이재웅 대표, 이해진 창업자, 김택진 대표 등 1세대 벤처인들은 문 대통령을 만나 신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직접 전달했다.

벤처 1세대들이 후배 창업자들에게 갖는 아쉬움도 있다. 이택경 대표는 “1세대 벤처 붐 때와 비교할 때 액셀러레이터와 엔젤 투자자를 비롯한 초기 투자자들도 많아졌고 관련 정부 지원 사업들도 많이 늘어 생태계가 탄탄해졌다”며 “반면 초반에는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강한 창업 의지를 가지고 스타트업을 시작했던 것 같은데 현재 창업자 수가 급격히 많아지면서 창업 의지나 정신력이 강하지 않은 창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 인덱스]
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국, 기업가 정신 쇠퇴" 56.4% "기업가 정신 교육 필요" 87.3%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나 창업해야 하는 시대, 지식만 가르치는 건 직무유기죠”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삼성, C랩 통해 스타트업 설립 지원…‘제2의 삼성전자’ 탄생 기대
-현대차, 반세기 달리며 ‘품질 경영’ 장착…미래차 게임 체인저로
-SK ‘직물 공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반도체·바이오에 공격 투자
-LG, 4대째 이어진 ‘연암정신’, 초일류 기업 만들다
-롯데, 기업 문화 혁신에 팔 걷어…유연근무제 도입·남성육아휴직 의무화
-포스코, 기업 시민 위한 ‘위드 포스코’ 새 비전…비철강 ‘강자’ 노린다
-한화, 과감한 투자·빅딜로 태양광 등 수직계열화…‘글로벌 한화’ 날개 편다
-신세계, ‘유통 혁신의 아이콘’…배송 경쟁력·스마트 초저가로 승부
-두산, 경영 혁신으로 ‘턴어라운드’ 성공…신사업 도전 나선다
-CJ, 창업 이념 ‘사업보국’ 정신, ‘K컬처’에 이어 ‘K푸드’로 확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