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양대 국적사 체제 확립…조양호 회장, 항공동맹 ‘스카이팀’ 탄생 주도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한국의 항공 역사와 함께했던 대한항공이 3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크고 작은 대내외 변화를 겪었지만 대한항공이 앞으로 맞이할 50년은 과거의 50년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또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될 아시아나항공이 양대 항공사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해외여행 자유로 급격한 성장
대한항공의 전신은 1962년 설립된 교통부 산하 대한항공공사다. 1969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립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민간 항공사가 됐다. 대한민국 첫 민간 항공사 ‘대한항공’은 1969년 3월 1일 공식적으로 창립됐다.
대한항공은 창립 2년 후인 1971년 한국 최초의 태평양 횡단 노선인 서울~로스앤젤레스(LA) 화물 노선에 첫 비행기를 띄웠다. 이듬해인 1972년 서울과 LA를 오가는 여객 노선도 취항했다. 지금은 B777 42대와 A380 10대 등 항공기 161대를 보유한 대형 항공사지만 1972년만 해도 대한항공의 항공기는 미국 보잉사의 B747 점보기, 에어버스의 A300기종 6대가 전부였다.
1970년대 발생한 1·2차 오일쇼크로 글로벌 항공사들이 감원·감축의 위기를 겪었지만 대한항공은 이와 반대로 공격적인 확장을 통해 ‘정면 돌파’ 전략을 구사했다. 1973년 서울~파리 화물 노선, 1975년 서울~파리 여객 노선을 취항했다.
1980년대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토대를 다진 시기다. 특히 대한항공은 자국 산업 보호를 내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대형 항공기를 확보해 공격적인 취항에 나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개최한 최초의 대형 스포츠 이벤트이자 지금의 양대 항공사 체제가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서울올림픽의 활성화와 원활한 개최를 위해 제2의 항공사를 필요로 했다.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1국가 1항공’ 체제를 포기하고 항공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다수의 항공 사업자에게 면허를 발급하면서 한국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당시 정부는 제2의 민간 정기 항공운송 사업자로 제계 20위권이던 금호그룹을 선정했다. 1988년 2월 ‘서울항공’으로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은 그해 8월 현재 사명으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해 12월 첫 항공기 B737-400을 도입해 서울~부산, 서울~광주 등 국내선에 첫 비행을 시작했다.
1989년 정부가 해외여행 자유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두 항공사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복수 민항기 경쟁 체제를 확립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아시아나항공은 시세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90년 서울~도쿄 노선을 취항하며 국제선에 진출했고 1991년 서울~LA 장거리 노선에 취항했다. 1995년에는 항공사 최초로 기내 전면 금연을 실시해 서비스 향상도 꾀했다. ◆동맹항공 참여로 글로벌 영향력 높여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은 항공업계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초반 차례로 항공사 수장 자리에 올랐다. 박삼구 전 회장이 1991년 아시아나항공 사장직에,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직에 취임했다.
순항하던 항공업계는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계 항공업계의 공급 증가에 따른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로 국내 사정도 녹록하지 않았다.
항공업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해법을 찾았다. 대한항공은 2000년 조양호 회장의 주도로 아에로멕시코·에어프랑스·델타항공 등과 세계적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을 창설했다. 그 후 스카이팀은 175개 국가 1150여 도시에 매일 1만14500편의 항공기를 운항하며 연간 6만3000명을 실어 나르는 세계적 동맹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스카이팀의 창설로 대한항공의 글로벌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특히 조 회장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의결 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직을 수행했다.
아시아나항공도 2003년 유나이티드항공·루프트한자 등이 속한 세계 최대 항공 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에 열다섯째 항공사로 합류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항공동맹은 같은 팀 내 항공사들과 코드셰어(공동 운항)는 물론 공동 마케팅과 기술 개발을 통해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 항공동맹 체제에 합류함으로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글로벌 항공 시장에서 더 영향력을 높일 수 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00년대 들어 저비용 항공사(LCC)라는 새로운 도전자들을 만났다. 2005년 국내 첫 LCC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이 취항했다. 기존 대형 항공사(FSC)보다 서비스는 뒤지지만 절반 정도 저렴한 운임을 제공하는 LCC의 성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거스를 수 없는 항공 시장의 거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새로운 기류에 대응하기 위해 두 항공사는 자회사로 LCC 시장에 취항했다. 2008년 대한항공의 자회사 진에어가 첫 취항에 나섰고 같은 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회사인 에어부산도 설립됐다. 이후 아시아나는 2016년 에어서울을 통해 또 하나의 자회사 LCC를 취항했다. 2014년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가 터지면서 대한항공은 연이은 위기를 맞았다. 급기야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연임에 실패했다. 박삼구 전 회장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감사 보고서 문제에 따른 책임을 지고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곧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공식화했다.
공교롭게도 양 사는 똑같이 세대교체 시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8일 조양호 회장이 지병으로 미국에서 별세했다. 대한항공은 향후 조원태 사장을 중심으로 3세 경영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박삼구 전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도 매각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 여전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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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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