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비용과 가치가 같은 ‘비트코인’…암호화폐 내 독보적 위상 더 강화될 것 (사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소송을 벌여 2011년 합의금으로 받은 6500만 달러를 비트코인에 투자한 윙클보스 형제.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페이스북이 2020년까지 글로벌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하기로 하는 등 핀테크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페이스북은 내년 초까지 10여 개 국가에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카드사와 손잡고 암호화폐 결제와 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글로벌코인을 지불해 광고를 올리고 사용자들은 광고를 보거나 상품을 구매할 때 코인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 회원 간에도 암호화폐를 인증 없이 주고받을 수 있으므로 ‘좋아요’ 대신 팁을 주는 문화가 꽃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페이스북을 거대한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얼마 전 IBM이 선언한 월드와이어가 금융 네트워크의 B2B(기업 대 기업) 모델에 가깝다면 20억 명 이상의 글로벌 개미를 끌어안고 있는 페이스북은 C2C(개인 대 개인) 버전의 월드와이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비트코인을 소액 결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암호화폐 진영에서는 페이스북이 비트코인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즉 페이스북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터넷 화폐를 발행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는데 비트코인에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블록체인은 페이스북 아이디어의 원천을 놓고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와 송사를 벌였던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공개적으로 투자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글로벌코인의 발행 소식은 비트코인에 대한 저커버크 CEO의 복잡한 심경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저널리스트들은 달러와 안정적으로 교환될 글로벌코인이 아무 ‘소용’이 없는 비트코인을 몰아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암호화폐 진영은 페이스북의 글로벌코인은 암호화폐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자기 파괴적 혁신은 ‘생존’을 위한 선택
페이스북이 자사의 플랫폼에서만 통용되는 코인을 만들 의도였다면 애초에 블록체인을 접목할 필요가 없다. 즉 글로벌코인도 네트워크에서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계열의 암호화폐가 맞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게다가 가격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거래를 원하는 이들은 수집하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글로벌코인의 가장 우선적인 효용은 소액 결제이므로 영세한 콘텐츠 공급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인터넷 소액 결제가 어렵다 보니 콘텐츠 무료 제공은 거스르기 어려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광고 시장이 인터넷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강줄기가 됐는데 광고주에게는 흩어져 있는 콘텐츠 제공자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보다 포털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 결과 분산 시스템을 꿈꿨던 인터넷은 정부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몇몇 초대형 포털들의 독무대가 돼 버렸다.
페이스북이야말로 구글과 함께 글로벌 광고 시장을 양분하는 거대 포털이다. 이런 포털이 자신의 권력을 분산할지도 모르는 소액 결제 수단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수세적이기 마련인 주류 기업의 관성을 고려할 때 1등 기업이 자기 파괴적인 신사업에 진출할 때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확실하게 바뀌었다는 뜻이다. 사업의 무게중심을 옮기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액 결제에 대비하지 않고 무료 콘텐츠를 받아 광고와 맞바꾸는 전통적인 모델을 고집하는 중대형 포털들은 물론 신용카드 회사나 은행들이 인터넷 생태계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다.
페이스북의 금융업 진출이 정부의 허가를 받는다면 타격을 받을 기업들은 다른 포털들과 신용카드 회사들이다.
반면 페이스북의 글로벌코인이 비트코인을 대체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비트코인이 인터넷 소액 결제에 쓰이고 있었다면 글로벌코인의 등장을 위협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회의론자들의 말마따나 비트코인은 특별한 효용이 없다. 비트코인은 쓸모도 없으면서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비트코인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한 번은 넘어서야 할 사고의 장벽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를 전통적인 쓸모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랫동안 암호화폐 진영에 몸담고 있는 이들조차 벗어나기 어려운 관성이다. 쓸모를 이유로 다른 암호화폐에 의해 비트코인이 조만간 대체될 것이라는 예언은 비트코인 만큼이나 오래됐다.
◆비트코인의 본질은 용도와 기술이 아냐
비트코인의 독보적 위상을 용도나 기술적 특성에서 찾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비트코인의 위상은 화폐론적인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발행 비용이 시장가격에 수렴하는 속성이 중요하다. 얼마 전 중국 공안이 전기를 절도해 비트코인을 채굴한 할머니를 구속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탕 할머니'로 알려진 채굴자는 1300달러어치의 전기를 사용해 940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전기료가 더 비쌌지만 어차피 절도여서 수지가 맞았던 셈이다. 조폐공사가 1만원권을 찍어 내기 위해 특별한 종이와 잉크에 위조 방지 장치를 붙이느라 1만원을 넘게 쓴 것과 같다. 돈의 가치와 발행 비용의 차이(시뇨리지)를 독점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돈을 찍어 내는 정부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므로 1만원권을 찍어 내기 위해 1만원을 소비해야 하는 시스템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페이스북 역시 글로벌코인을 발행하는 데 글로벌코인과 동일한 비용을 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코인이 달러와의 교환을 보장하기 때문에 증권의 발행 비용은 고스란히 적자로 돌아온다. 페이스북보다 더 거대한 존재가 암호화폐를 발행한다고 해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발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의 독보적인 위상은 이 점에서 오랫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은 발행 비용이 가격과 동일한 진정한 의미에서 ‘가치물’로서의 화폐다. 화폐와 관련해 특권적 지위를 없앤다는 의미다. 정부마저 1만원을 얻기 위해 1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색해 보이지만 일반적인 경제 주체들에게는 상식적인 원리다. 학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발행 비용과 시장가치가 동일한 화폐가 초래할 경제 질서의 변화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비트코인을 지니 램프 속으로 욱여넣을 수 없다면 말이다.
[돋보기] 3무 소액 결제의 어려움과 주류 미디어의 오해
‘
3무(無) 소액 결제’는 인터넷의 태동과 함께 추구돼 왔지만 풀지 못했던 난제다. 개인 정보 입력에 따른 정보 노출의 위험과 회원 가입을 하는 번거로움, 100원 결제를 위해 50원을 수수료로 내는 거래비용 등이 없어야 한다. 암호화폐 등장 이전에 3무 소액 결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건건이 정보를 입력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원 정보를 누군가에게 의탁해 놓거나 신용카드나 계좌 정보를 알려줘야만 100원짜리 인터넷 기사를 보기 위해 50원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이건, 신뢰건 법적인 장애건 간에 소액 결제가 어려운 인터넷 환경의 최대 피해자는 전통적인 언론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콘텐츠를 건별로 과금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콘텐츠 제공자 모두 손해를 보고 있지만 여타의 콘텐츠 제공자들은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등장했으므로 종합적으로는 이득인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오기 전에 잘나가가던 언론사들은 광고 시장을 인터넷에 빼앗기고 게이트키핑(뉴스 선택) 권한도 포털에 넘겨주고 말았다.
비트코인의 발명과 동시에 3무 소액 결제의 가능성이 열렸다고 천재들이 비밀스러운 통찰을 열심히 나눠 줬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디어의 기자들은 비트코인을 폄하하거나 무시했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명제가 들어맞지 않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는 해도 어딘가 정말로 계산할지 몰라 생긴 해프닝 같아 보인다. 글=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로체인연구소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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