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기의 이름은 ‘프링커(prinker)’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스케치온’이 개발했다. 스케치온은 이미 유럽 최대 스타트업 경연 대회인 ‘슬러시 2016’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세계 3대 가전 쇼를 휩쓸며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화장품 원료로 개발한 잉크
기존 타투는 바늘을 이용해 피부 진피층에 색소를 넣어 그림이나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프링커는 잉크젯 프린터 기술을 응용했다. 이종인 스케치온 대표는 “사무용 프린터의 미디어가 종이었다면 우리는 모바일 프린터를 이용해 피부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잉크도 유럽 인증을 받은 화장품 원료만 이용해 새롭게 개발했다. 프링커는 흰색을 제외한 모든 색을 구현한다. 텀블러만한 크기지만 4600개 노즐에서 잉크가 발사되기 때문에 3초 이내에 선택한 이미지를 피부에 출력할 수 있다.
잉크가 마르면 타투는 하루 정도 지속된다. 마찰이 없으면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물에 닿아도 유지된다.
프링커는 세계 최초 디지털 타투 솔루션이다. 화장품 원료를 이용한 잉크 역시 전례가 없다.
“프링커는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제품입니다. 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미지 처리 알고리즘부터 피부와 노즐과의 간격이 얼마나 멀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수십 마이크로의 노즐을 막지 않고 잉크가 통과할 수 있을지 등 모든 기술 영역이 도전이었죠.”
스케치온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잉크까지 대부분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17명의 직원 중 개발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개발 직무도 애플리케이션·웹·소재·기기 개발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 대표를 비롯해 프링커를 개발한 스케치온의 공동 창업자들은 모두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 대표는 프린터사업부에서 10년간 잉크젯 프린터용 잉크를 개발했다. 그가 화장품을 이용한 새로운 잉크를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프링커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낸 윤태식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이규석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각각 반도체와 하드웨어 디바이스 개발팀에서 일했다. 2010년 사내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 때 스킨 프린터 아이템이 선정됐고 스킨 프린터 아이템은 2015년 분사 과제로 선발됐다. 이후 세 명이 함께 퇴사해 법인을 설립했다.
스케치온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프링커를 처음 선보인 후 그동안 B2B(기업 간 거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해 왔다. 삼성전자·LVMH·로레알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며 그들의 소비자를 먼저 만났다.
B2B 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인지시키고 반응을 분석했다. 이후 클럽이나 스포츠 경기장, 음악 축제 등에 렌털하며 제품을 홍보했다.
“B2C 사업을 위해선 기기나 소재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B2B 사업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사용자 분석에 활용했고 전 세계 7000만 명이 시청한 프링커 영상 반응을 보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확인했죠.”
스케치온은 올해 본격적으로 B2C 시장 확대에 나섰다. 반응이 가장 큰 시장은 구매력이 높은 유럽·미국·중국이다. 스케치온은 B2C를 위해 온라인몰과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 향후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전 세계 이커머스 사이트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또 다양한 타투 디자인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사용자들은 프링커 플랫폼을 통해 언제든 자신만의 디자인을 그려 업로드하거나 타투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프링커 기기가 없는 사람도 디자인을 올릴 수 있고 이름이나 회사 로고 등 어떤 이미지 파일도 올리기만 하면 타투 디자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타투는 여전히 아날로그 사업이다. 또 한국은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스케치온은 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국내외 타투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이들의 디자인을 프링커 플랫폼에 업로드 하고 저작권료를 주는 방식이다.
스케치온이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타투는 1000여 개다. 하지만 앞으로 사용자들과 디자이너들의 활발한 업로드가 이뤄진다면 디자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B2C를 통한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원이다.
◆피부에 QR코드·환자 체온 체크도 가능
“스케치온은 타투이스트나 타투 시장과 경쟁하려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국민 4분의 1이 타투를 하지만 우리는 타투를 하지 않는 4분의 3을 공략합니다. 아플까봐 무서워서 혹은 지우기 힘들어 타투를 꺼리던 사람들이 재미있는 자기표현 수단으로 프링커를 이용하길 바랍니다.”
프링커 가격은 60만원대로 저렴하지 않다. 하지만 잉크 하나로 1000회 이상 사용할 수 있다. 약 600원으로 하나의 타투를 새길 수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타투 스티커는 선택할 수 있는 그림이 많지 않은 데다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헤나는 전문가의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지만 프링커는 이런 단점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케치온이 공략하는 소비층은 세 그룹이다. 첫째, 젊은 여성들이다. 이 대표는 “글로벌리서치센터의 설문 조사 결과 남성보다 여성이 타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귀엽고 개성 있는 타투를 자기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여성들이 프링커를 사용한다면 매일 아침 화장하듯 다른 타투를 새기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 타깃은 새로운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다. 셋째 타깃은 가족이다. 이 대표는 “그림뿐만 아니라 알파벳이나 글자를 새겨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놀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링커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현재는 타투를 위한 미용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정보기술(IT) 기기와의 연동이나 헬스 케어 분야까지 활용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에 입장할 때 종이 입장권이나 팔찌형 입장권 대신 피부에 바코드나 QR코드를 새길 수 있다. 여기에 증강현실(AR) 기술을 연동하면 QR코드에 스마트 디바이스를 갖다 댔을 때 음악이 나오거나 새로운 영상 정보와 연동할 수도 있다.
헬스 케어 분야를 위해 온도를 감지하는 잉크를 활용해 신체 온도 변화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환자에게 프링커로 잉크를 새겨 놓으면 응급실에서 모든 환자를 체온계로 체크하지 않더라도 온도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연구진과 함께 피부를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경피 흡수 연구를 진행 중이다.
“프링커의 정체성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힘듭니다. 소재부터 디바이스까지 다양한 기술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프링커 비즈니스’가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죠.”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