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율 20%대로 올라, 여권은 종로 출마 등 ‘총선 역할론’ 불 지펴…8, 9월 여의도로 복귀할 듯
이낙연 국무총리는 그를 잘 아는 정치인과 기자들 사이에서 ‘신사’로 불린다. 언행이 신중하고 사석에서도 좀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역대 총리들 사이에서 ‘가시밭 길’로 꼽히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그와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한 호남 출신의 여당 중진 의원은 “이 총리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여권 내에서 취임 2주년을 맞은 이 총리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긍정적인 것은 이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처리는 매서울 만큼 치밀하고 독하다”는 게 한 총리실 관계자의 반응이다. 여권에선 위기 상황 때마다 ‘소방수’, ‘내각 군기반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실세 총리’의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깨알수첩 리더십’과 ‘사이다 총리’ 소리도 듣는다.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유일 것이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5월 27~3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2511명을 대상으로 여야 주요 정치인 12명에 대한 차기 대선 주자의 선호도를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2.0%포인트,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이 총리는 20.8%로 집계됐다.
‘여니 대망론’ 나와…“시키면 합당한 일 할 것”
이 총리 지지율이 20%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올해 1월 15.3%에서 2월 11.5%로 하락했다가 3월 14.9%, 4월 19.1%에 이어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22.4%)와 격차는 오차 범위 내인 1.6%포인트였다. 여권 내 2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10.1%)와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지지자들은 ‘여니(이낙연 총리 이름 끝 글자인 연의 애칭) 대망론’ 군불을 지피고 있다.
여권에선 이 총리의 총선 역할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총선이 현 정부 임기 후반기 국정을 좌우할 최대 변수인 만큼 여당은 총력전을 펼 태세다. 가용 자원을 모두 총선에 투입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런 만큼 상품성이 높은 이 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관심은 이 총리의 당 복귀 시점과 총선을 앞두고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모아진다. 내년 4월 예정된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선 늦어도 8, 9월까지는 개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총리와 함께 내각에 남아 있는 현역 의원 가운데 총선 출마 가능성이 있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여의도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이 총리가 서울 종로 등 상징성이 높은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나돈다.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선거를 지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할 전망도 나오지만 현재로선 지역구 출마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총선 역할론에 대한 이 총리 측의 공식 반응은 “아무런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5월 말 취임 2주년을 맞아 내놓은 자료도 지난 2년간의 국정 평가와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정 방향에 대한 언급뿐이었다. 현직 대통령 아래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 언급은 ‘불충’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총리의 발언을 뜯어보면 즉답을 피하고 있지만 총선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5월 8일 에콰도르 방문 중 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내년 총선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저도 정부·여당에 속한 일원으로 거기에서 뭔가 시키면 합당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5월 15일 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선 총선 역할론과 대망론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늘 나오는 보도니까 일일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는 않지만 저로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여당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심부름을 시키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직 총리 신분으로 정치권 복귀의 뜻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어려운 만큼 ‘당의 필요’라는 명분을 내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총리는 자신의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돌아오더라도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이 적지 않다. 총리 시절 보여준 리더십은 결국 2인자 리더십일 뿐이다. 총선을 넘어 대선 주자로서 우뚝 서려면 ‘이낙연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강점(Strength)은 살려 나가고 약점(Weakness)은 보완해야 하며 위협(Threat) 요인은 제거해 기회(Opportunity)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총리의 강점으로 안정감과 경륜을 꼽는다. 그는 20여 년간의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한 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 입문했다. 국회의원 4선을 한 뒤 전남도지사로 도정을 이끌다 2017년 5월 말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에 발탁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언론사와 정치·행정 등 다양한 경험은 대권 주자 이 총리에게 안정감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강점”이라고 했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도 “언론인·정치인·지자체장·총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안정감과 중량감,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현실 경험에서 나오는 합리적인 판단력이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 총리의 안정감과 다양한 경험은 국민에게 ‘언제든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더라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게 한다”고 했다.
약점으로는 여권 내 확고한 지지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계파색이 옅다. 친노(친노무현)도 아니고 친문(친문재인)도 아니다. 계파 패권주의에서 자유롭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조직이 가지는 실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정치인으로서 특유의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이 총리는 지나치게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며 “역대 총리를 살펴보면 대통령과 순응적 관계였을 때 정치적으로 크지 못했다. 정치를 하려면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낙연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도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신만의 분명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 총리에게서 이런 점이 보이지 않는다”며 “당내 정치 기반의 부재도 약점”이라고 했다. 배 소장은 “총리로서 주어진 일은 잘하는데 주어진 길과 주도하는 길은 다르다”고 했다. 김명준 글로벌리서치 상무도 “이 총리는 자신만의 정책적인 선명성을 보여준 게 없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지역·세대별 지지율 30% 이상씩 확보해야”
위협 요인으로 김 교수와 서 교수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꼽았다. 외연 확장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이 실패하면 총리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배 소장도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진다면 국정 운영의 공동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 소장은 “이념·지역·세대 등 세 가지 변수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이 총리는 지역 기반으로는 호남밖에 없고 이념적 기반도 공고하지 않으며 확고한 지지를 받는 특정 세대도 없다”며 “이낙연 대세론의 관건은 중도층 지지율, 수도권 지지율, 30대와 40대 지지율이 각각 30% 이상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유시민 전 의원이 불출마 뜻을 밝히고 있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사실상 출마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등 뚜렷한 친노·친문 대선 주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기회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친문 세력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대선 고지에서 유리한 자리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총리가 다양한 경험과 경륜, 안정감 등 강점을 살려 내년 총선에서 존재감을 나타낸다면 대선 주자로서 기회를 충분히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명확한 자기 정치 비전과 철학 수립, 당내 정치 기반과 대중성 확보 등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홍영식 대기자 yshong@hankyung.com
이낙연 국무총리 약력 :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국제부장, 논설위원. 제16대~19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정동영 대통령후보 공보특보단장.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사무총장. 전남도지사.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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