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조선사 이끄는 ‘컨트롤 타워’ 역할…판교에 5000명 규모 글로벌 R&D센터 세운다
닻 올린 한국조선해양, 조선업 패러다임 바꿀까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조선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했다. 현대중공업은 5월 31일 주주총회를 열고 현대중공업을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선업의 중간지주사 역할을 함으로써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을 거느리게 된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완료하면 자회사는 4개로 늘어나게 된다.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돼야 한국조선해양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셈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는 대내외적으로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노동 집약에서 기술 중심 산업으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초대형 메가톤급 조선사’ 출범의 첫걸음이다. 한때 세계 1위의 위상을 자랑하던 국내 조선업은 2016년부터 시작된 ‘수주 절벽’과 중국 조선소들의 저가 입찰로 큰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수주가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이러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였던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가 되고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로 출범하는 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의 2대 주주로 참여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선 자회사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연구·개발(R&D)과 엔지니어링 기능을 통합한 기술 중심 회사로 운영된다. 한국조선해양 초대 대표이사를 맡은 권오갑 부회장이 6월 11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살펴보면 향후 한국조선해양의 방향을 알 수 있다.

권 부회장이 강조한 것은 조선업을 기술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성격이 강한 조선업은 저렴한 노동력과 원가를 내세운 중국 조선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권 부회장은 “원가를 줄이는 것으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값싼 인건비로 추격해 오는 중국 등 후발 업체와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조선업 진출을 서두르는 자원 부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제 조선업의 역량을 좌우하는 것은 ‘기술력’이다. 이를 위해 한국조선해양은 판교에 건립 예정인 글로벌 R&D센터에 최대 5000명 수준의 R&D 인력을 채용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또 지금과 같이 업황에 따라 희비를 겪어야 하는 ‘천수답 조선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조선해양은 앞선 기술력과 품질을 확보, 외부 환경에 상관없이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십을 안정적으로 수주해야 한다는 포부다.

권 부회장은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은 물론 기업결합 심사를 통해 자회사로 편입될 예정인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로서 자회사에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각 사별 자율 경영 체제를 확실히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닻 올린 한국조선해양, 조선업 패러다임 바꿀까
◆무산된 현장 실사 대신 기업결합 집중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양 사의 결합이 한국 조선업에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정부 또한 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월 5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계약은 대우조선해양의 근본적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6월 16일로 예정된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현장 실사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대중공업은 당초 예정된 현장 실사를 건너뛰기로 했다. 서류 심사를 마친 뒤 이뤄지는 현장 실사에서는 조선소 현장의 자산이 서류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지분 교환 비율을 산출해야 한다.

현장 실사를 건너뛴 현대중공업은 기업결합 심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산 또는 매출액 3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억원 이상인 기업과 결합할 때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일본·중국·카자흐스탄 등 주요 선박 발주 국가에서도 기업결합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내보다 국외에서의 기업결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EU의 공정거래 당국이 문제 삼는 부분은 ‘독과점’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으로 양 사의 글로벌 기준 수주 잔액 점유율은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2위인 일본의 이마바리조선이 6%, 세계 기준 4위인 삼성중공업이 5.9%인데 이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은 LNG 운반선이다.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에서도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LNG선 수주 점유율은 현대중공업이 25척으로 36.2%, 대우조선해양이 18척으로 26.1%를 차지했다. 양 사의 점유율을 더하면 62.3%로 절반이 넘는다. 이는 곧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해외 조선사들은 신성장 동력인 LNG선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LNG선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와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변화로 수요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2030년부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LNG의 수요치는 3억 톤 이상으로 최근 같은 기간의 물동량인 2억5000만 톤을 넘어선다.

이에 따라 LNG를 실어 나르는 LNG선의 발주는 더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LNG선에서 국내 조선업계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는 일본과 중국의 결합 심사를 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EU 또한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동익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업결합 심사는 경쟁 심사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전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향후 M&A보다 하반기 신규 수주 증가, 선가 추가 상승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0호(2019.06.24 ~ 2019.06.3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