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창업자 고향·화학 3사 생산 거점 맞물린 ‘롯데의 뿌리’…성장 멈춘 도시에 활력 불어넣어
울산에 1조 투자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부친의 고향인 울산에 총 1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최근 신 회장이 집행유예 확정 판결을 받고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만큼 울산에 대한 투자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신 회장은 지난해 경영 복귀 당시 5년간 국내외에서 5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신 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롯데그룹은 ‘뉴 롯데’를 향한 대규모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5월 미국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 롯데케미칼 석유화학 공장을 준공하면서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입하기도 했다.

◆ 사법 리스크 해소…울산 투자 급물살

지난 9월 신 회장은 비공식적으로 울산을 찾아 KTX 울산역 복합환승센터와 북구 강동 리조트 등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KTX 울산역과 강동 리조트는 수년 전부터 투자 계획이 나왔으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과 신 회장의 법정 구속 등 이슈와 맞물려 사업이 표류해 왔다.

롯데는 쇼핑몰과 관광단지 특성에 맞게 새롭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신 회장이 직접 다녀간 만큼 앞으로 사업 진행 속도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의 도시인 울산은 주력 산업인 조선·자동차·석유화학의 위기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1인당 개인소득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부동의 1위를 지켜왔지만 최근 불황의 영향으로 1위 자리를 서울에 내줬다.

울산은 현재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수소 경제 등 신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신산업과 시너지를 높인 ‘울산형 일자리’로 지역의 체질을 바꿔 나가고 있다.

현재 울산에는 롯데를 비롯해 현대모비스·한화·삼성SDI 등 총 10개 기업이 총 2조원 정도의 투자(울산형 일자리)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 9월 발표한 울산형 일자리 로드맵의 일환이다.

송 시장은 기업의 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울산형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며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울산의 여건과 특성에 맞는 산업과 일자리를 발굴하고 육성해 울산 경제 재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다.

롯데지주와 울산광역시에 따르면 롯데는 울산에 기업 투자 금액의 절반가량인 1조원대 투자를 준비 중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1년 2월 조성 예정인 KTX 울산역 복합환승센터(쇼핑몰 포함) 건립에 3125억원을 투자한다. 기존 2500억원에서 울산시와 협의를 거쳐 600억원 정도를 더 늘려 잡은 것이다.
울산에 1조 투자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울산에는 롯데그룹의 화학 3사(롯데케미칼·롯데정밀화학·롯데BP화학) 생산 공장이 있다. 이 세 군데 생산 시설의 증설에 총 7000억원의 투자가 이뤄진다.

롯데정밀화학이 3872억원을 투자해 친환경 소재 공장을 증설하고 롯데BP화학은 2011억원을 들여 첨단 전자소재·정밀화학 분야에 사용되는 생산 설비를 증설한다. 롯데케미칼은 1060억원을 투자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공장을 추가로 신설한다.

이에 따라 침체됐던 울산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감동훈 롯데지주 상무는 “공장 투자는 생산설비이기 때문에 많은 상시 노동자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증설 과정에서 건설 인력들이 9000명가량 투입될 예정”이라며 “이번 투자가 지역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발전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의 강영훈 박사는 “저성장 시대에서 이제 전통 제조업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고도 성장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 투자가 일어나고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플러스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신산업을 육성하고 기존 산업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모멘텀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울산 내 롯데 위상 달라지나

롯데가 울산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는 울산이 창업자이자 신 회장의 부친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울산은 주력 사업인 화학 분야 생산 공장이 들어선 각별한 지역이기도 하다.

감 상무는 “울산은 창업자의 고향이고 롯데에 각별한 지역이어서 사회공헌 활동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며 “울산 시민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회공헌(그룹사 통합 CSR) 활동을 연구 검토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시절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이 살린 대표적인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오랫동안 지역 경제를 지탱해온 조선·자동차 부문에 불황이 닥치면서 수년째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줄면서 젊은 층 인구도 감소했다. 현대그룹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도 나온다. 지역 상공업계에서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정주영 명예회장뿐만 아니라 ‘신격호 브랜드’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 이번 롯데의 대규모 투자로 울산에서 롯데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롯데는 창업자인 신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고향인 울산을 중심으로 신 명예회장과 함께 일했던 그룹 공채 1기 직원들을 인터뷰하는 등 과거 업적에 대한 고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돋보기]
-울산 출신 1호 기업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1921년 영산 신씨 집성촌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났다. 신 명예회장은 울산 출신의 1호 기업인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우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키운 지역이 울산일 뿐 출생지는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이다.

신 명예회장은 1941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에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1950년 신주쿠구 신오쿠보에 껌 공장인 롯데 신주쿠 공장을 세웠다. 이때 껌 사업의 성공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됐다.

한국에서는 1966년 롯데알루미늄을 시작으로 1967년 롯데제과를 세웠고 유통·화학·건설·제조 분야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키웠다.

양국 롯데를 모두 총괄하기 위해 홀수 달은 한국에서, 짝수 달은 일본에서 머무르며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로 불리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의 책상 위에는 늘 롯데 껌이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껌 사업으로 성공 신화를 쓰고 한국에서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운 만큼 롯데 껌에 대한 애정이 깊다.

신 명예회장은 울산 지역을 평소 각별하게 여겨 왔다. 롯데그룹이 지금도 울산 지역에 적극적인 투자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 가는 이유는 울산이 롯데의 창업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의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집성촌은 1969년 울산공단 공업용수를 위한 댐 건설로 일부 수몰됐다. 신 명예회장의 친인척들도 전국 각지로 흩어지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 명예회장은 1971년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 잔치를 열었다. 현재 호수 근처에는 신 명예회장의 생가가 따로 보존돼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8호(2019.10.28 ~ 2019.11.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