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시대에 뒤처진 현재의 교육을 어떻게 21세기에 걸맞은 교육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은 ‘21세기 교육 혁명’에 단단히 꽂혔고 모든 것을 걸었다. 4년여 가까이 미래 교육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수많은 성공 사례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했기에 ‘작은 실험’을 뛰어넘어 ‘공교육 전환’으로 가는 비상구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 사무총장은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변하고 있고 진짜 세상에서 통하는 능력은 배움의 재미와 가치를 깨달을 때 만들어진다”며 “표준화된 시험으로는 더 이상 인재를 발굴할 수 없다. 놀고 웃고 떠드는 미래 교육을 통해 스펙이 아닌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C프로그램에서 펀딩을 하고 있다. 여기에 투자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 포인트는 뭔가.
“21세기 교육의 의미는 바깥세상에서 원하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기존의 교육 체계와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개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바로 기업가들이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가 그렇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그랬고 인텔·시스코 등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기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교육 프레임워크는 2000년대 초반에 나온 개념으로,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서 거꾸로 읽어 냈던 것이다. 이 시대에 길러져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능력을 길러 내기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의 구도로 접근했다. ‘우리는 미래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하는 순간 IT업계의 선두 주자들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다.”
21세기 교육 프레임워크가 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어떤 능력을 가져야 하나.
“한마디로 역량이다. 그중 핵심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것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능력에 해당한다. 기존의 강의식 교육, 지식 중심의 교육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다. 유일한 방법은 ‘해보게 하는 것’이다. 전면적인 프로젝트 교육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풀어 나가는 과정들을 낮은 수준에서부터 꾸준히 반복하면서 입체적 역량을 쌓아 나간다. 교사와 학교의 역할은 그것을 가속화하고 고도화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데 있다.”
글로벌 교육 혁신 사례 중 주목하고 있는 사례나 방법은 무엇인가.
“프로젝트 초반부터 혁신적인 교육의 모델들의 유사점에 주목했다. 올린공대, 미네르바 스쿨, 하이테크 하이(High Tech Hihg), 영국의 스쿨 21(School 21), 프랑스의 에콜 42(Ecole 42) 같은 교육 기관은 하나같이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식을 매개와 도구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대부분 대학 교육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실시한다. 우리가 깨고자 했던 것은 이 부분이다. 보편적인 초·중등 교육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최근 대학들도 기존과 다른 방식의 혁신 교육들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이 아닌 중·고교 교육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초·중·고 교육이 낭비여서 그렇다. 대학에서 그러한 교육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 방향이 옳기 때문이다. 초·중등 교육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법을 몰라서다. 2015 개정 교육 과정만 봐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반복한다. 문제는 실현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중등부로 넘어오면서 교육의 효과로 보면 쓸모없는 능력을 길러 내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행이 쌓인다. 학생들이 경쟁 구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잘못된 가치관이 심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부 잘하는 괴물’들이 만들어질 위험성으로 연결된다. 우리 사회의 굉장히 큰 위험 요소를 학교 시스템이 만들고 있는 셈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익을 위해 초중등 교육부터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증명해 가고 있나.
“거꾸로캠퍼스 교육 방법의 특성 중 하나가 주제 중심 모듈 학습이다. 교과를 쪼개 격벽을 치고 배우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소들까지 고려해 전반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게 목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지식은 시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기초 학습 이후의 역량 쌓기가 순서라면 통념에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실제 무엇이 거꾸로일까. 태초에 사람들은 과목을 쪼개서 배우고 사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냥을 위해 어떤 도구를 쓸지, 더 나은 도구를 개량하고 재료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인류가 지식 습득과 문제 해결 방식으로 축적해 온 방식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 쪼개기 시작했는데 추상 수준이 높아져 자신이 왜 그것을 배우는지 모르는 상태에까지 와 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거꾸로의 거꾸로’다.”
대학 입시는 목표가 아닌가. 이곳에서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필요하다면 대학도 목적이 될 수 있다. 초창기 거꾸로캠퍼스에 오는 학생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학교생활이 힘들었던 이들이 많았다. 성적이 매우 우수한 아이들도 있지만 학습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오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낙오 상태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깨닫기 시작하면서 관심사가 늘어난다. 점수에 따라 맞춰 가는 대학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대학이라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으로 개념이 바뀐다. 그러면 자유로워진다. 졸업한 학생들은 실제 영화·패션·자동차 등 학과를 선택해 나갔다. 대학이 아닌 더 빠른 길을 택할 수도 있다. 2015 개정 교육 과정에도 진로를 이렇게 찾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미래의 잠재력은 크지만 현재 당장 점수가 낮은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의 능력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나.
“1년 넘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거의 포기 상태인 아이가 있었다. 도저히 안 되는구나 했을 때 1년 반 만에 놀랍게 반전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잠재력이 눌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때 ‘기다림’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기다리는 동안 변화의 계기가 될 만한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잠재력이 있다고 믿나.
“그게 가설이었다. 혹은 잠재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문제는 잠재력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실패한 사례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5% 이상의 성공이라고 보고 있다. 100명이 입학했을 때 85명까지는 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역량을 쌓는 데까지 성장하고 있다.”
주류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가.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미래 교육의 비상구’가 열렸다고 본다. 활짝 열린 대문이나 고속도로는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놀다 보니 슈퍼맨, 웃다 보니 어벤저스’라는 슬로건은 ‘배움은 놀이다’라는 의미를 살린 표현이다. 배우는 것 자체가 재밌는 상태, 거기에서 굉장한 깊이가 발생한다. 노는 것처럼 배우지만 실제로 얻어 가는 것들은 막강하다.”
최근 정시 확대 등 교육 이슈가 뜨겁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시 확대는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얘기다. 교육이 단지 아이들을 분류해 내는 기능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무서운 속도로 학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따라 공무원·공공기관 직원 채용에 대학 졸업장과 자격증을 내밀지 못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신입 사원 채용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대학 간판이 더 이상 아이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기존의 교육과 평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버렸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진짜 세상을 위한 교육이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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