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지난해 신규 유입 자금 전년 대비 4배 상승…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쳐
월스트리트를 달구는 ‘ESG 투자’ 열풍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1.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3일 다보스 포럼에서 “올해 7월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다양성을 가진 이사회 후보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지 않은 기업의 상장은 돕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여성 이사가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둘 것이고 내년엔 해당 이사를 두 명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덧붙였다.

#2.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1월 14일 연례 서한에서 환경(Environmental)·사회(S)·지배구조(Governance) 요인을 자산 운용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중반부터 화석 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들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ESG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지금의 두 배인 150개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블랙록은 약 7조 달러(약 811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 ESG 관련 투자 열기가 뜨겁다. ESG 투자는 기업이 환경(E)과 사회(S)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적절한 지배 구조(G)를 갖췄는지 평가해 투자 대상을 고르는 방법이다. ESG 관점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투자 비율을 낮추는 식이다. 점수가 낮으면 지속 가능한 경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SG 관련 펀드에 몰리는 자금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기후 변화 등의 영향으로 초대형 산불이 연이어 발생했다. 발화 원인을 제공한 전력회사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은 희생자들과 135억 달러(약 16조원)의 배상금을 주기로 합의한 뒤 파산 위기에 처했다. 또 미국의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 우버의 트래비스 캘러닉 창업자 등 상당수 경영자들이 성추문 등으로 갑작스레 사퇴했다. 다양성이 결여된 백인 남성 중심의 지배 구조에서 독단적 경영이 이뤄진 때문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런 일들은 주가와 기업 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ESG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모건스탠리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투자자의 85%가 지속 가능한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 2015년 같은 조사(71%)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국부펀드, 일본정부연기금투자펀드(GPIF) 등 대형 연기금과 블랙록 등 자산 운용사들이 속속 ESG를 핵심 투자 지침으로 삼으면서 관련 펀드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펀드 평가사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이름을 내건 펀드에 신규 유입된 자금만 206억 달러(약 24조원)다. 2018년(55억 달러)의 네 배 규모다.

모닝스타의 존 할 지속가능성 연구책임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ESG 관련 펀드의 부상은 과거를 잊게 할 만큼 거대하다”며 “세계에서 ESG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SG 추종 펀드에는 현재 30조 달러(약 3경5610조원) 이상이 편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이 관련 ETF를 추가로 내놓겠다고 한 배경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지수 산출 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JP모간 등도 여러 종의 새로운 ESG 인덱스를 만드는 등 ESG 요인의 반영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ESG 투자를 앞세우는 측은 ESG를 감안하면 수익률을 높이거나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비타 수브라매니언 미국 주식 전략총괄은 “ESG를 따르면 투자 위험을 줄이고 수익률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ESG를 등한시하다가 회계 스캔들, 데이터 유출, 성희롱 사건 등에 휘말린 기업들 주가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대비 수익률이 10% 정도 낮았다. 또 2005~2015년 ESG 원칙에 따라 투자했다면 그 기간 파산한 S&P500 기업 중 90%에 대한 투자를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골드만삭스의 솔로몬 CEO는 “지난 4년간 기업 공개를 한 기업 중 적어도 한 명의 여성 이사가 있는 기업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훨씬 좋았다”고 지적했다.

◆“결국엔 ‘좋은 회사’에만 투자가 몰릴 것”

하지만 ESG 투자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많다. 정보 제공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ESG 추종 펀드의 수익률은 S&P500지수 추종 펀드보다 살짝 높았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따지면 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3년간 ESG 추종 펀드의 수익률이 나아진 것은 2016년 이후 지속된 유가 하락으로 주가가 급락한 에너지 주식들을 보유하지 않은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기, 술·담배, 석탄 관련 기업은 모두 ESG 투자 기피 대상이다. 보잉·록히드마틴·필립모리스 등 꾸준한 수익을 내면서 많은 배당을 돌려주는 기업들이 포트폴리오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월가 관계자는 “ESG 요인을 반영하는 펀드가 늘어날수록 관련 투자의 수익률은 알파(시장 초과 수익)가 아니라 베타(시장 평균 수익)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블랙록의 핑크 CEO가 투자자들의 돈을 최고의 수익률이 아닌 자의적 ESG 기준에 따라 집행하는 데 대해 반발이 있다고 지적했다. 월가의 한 자산 운용 담당자는 “핑크 CEO의 말은 ESG 붐에 편승해 더 많은 펀드를 내놓고 수수료를 벌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펀드의 마케팅을 위한 것이란 뜻이다.

씨티뱅크의 마이클 콜벳 CEO는 다보스 포럼에서 ‘은행이 화석 연료와 관련된 기업들과 거래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는 승자와 패자를 지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주도권은 정부가 가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ESG의 지속 가능성 목표 중 일부는 상충되며 ESG 점수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도 없는 상태다. 통상 ESG를 추종하는 펀드는 제3의 평가사가 산정하는 ESG 점수에 따라 투자 대상을 고른다. 석탄 등 화석연료를 쓰거나 △무기, 술·담배 등과 관련된 회사 △이사회에 여성이 없는 등 다양성이 모자란 기업 △성추행 예방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업체들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감점을 당한다.

JP모간이 쓰는 ESG 평가 점수를 보면 한국 기업 중에선 한국가스공사·신한금융지주·현대자동차·현대캐피탈·우리은행·SK텔레콤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한국동서발전(석탄 발전), 포스코(석탄 사용, 무기 재료 생산), 대한항공(술·담배 판매, 무기 생산) 등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의 투자 자문 회사 코너스톤캐피털의 창립자이자 CEO인 에리카 카프는 “ESG와 관련된 기업 점수 산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투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ESG 투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측정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한 월가 투자자는 “ESG 점수를 보면 결국 좋은 회사에만 투자하게 된다”면서 “이머징 마켓 기업들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월가 일부에선 ESG 기준을 지키라는 압력이 주로 선진국 기업에 가해지면서 그런 압력이 덜한 아시아 등 개도국 기업에 비해 상대적 경쟁력 하락을 경험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들이 화석 연료 기업에 대한 자금 거래를 끊는다고 하더라도 석유·가스·석탄에 대한 수요가 계속 있는 한 공급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러시아의 가스프롬, 이란의 국영 석유 회사처럼 에너지업계엔 초대형 국영 기업들이 많다. 이런 국영 기업이 세계 석유 매장량의 66%, 세계 가스 매장량의 60%를 통제한다. 민간 금융사가 거래를 끊어도 에너지 수요가 있는 한 생산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