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 쇼크’에 빠진 대한민국]
-상품권 배포 등 선심성 항목 많아 실효성 의문
-기업 활력 제고 등 성장 엔진 다시 살려야
커지는 경고음에 11조7000억원 ‘슈퍼 추경’…“근본적 정책 전환 계기 삼아야” 목소리도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경고들이 쏟아지고 있다. 해외 기관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연이어 하향 조정하는 중이다. 0%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차 석유 파동(1980년), 외환위기 시절(1998년), 글로벌 금융 위기(2009년) 등 세 차례뿐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내수 활성화와 영세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카드를 꺼냈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기업 체감 경기도 11년 만에 최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3월 1일 코로나19를 반영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11년 만에 가장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어두워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월 2일 ‘2020년 OECD 중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OECD의 이번 분석은 코로나19 확산세가 1분기 이후 진정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OECD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1.5%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란 암울한 예측도 있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코로나19 사태로 최대 1.7%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건스탠리의 기존 전망은 2.1%였다. 최악에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0.4%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노무라증권도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으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0.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0.8%)과 외환위기 국면이던 1998년(-5.5%), 2차 석유 파동이 일어난 1980년(-1.7%)을 제외하고 2%를 밑돈 적이 없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가 악재로 작용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4%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2월 27일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낮춰 잡았다.
커지는 경고음에 11조7000억원 ‘슈퍼 추경’…“근본적 정책 전환 계기 삼아야” 목소리도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4분기 이후 모든 경제 지표가 회복됐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꺾이고 있다”며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한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의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민간 심리도 급격히 얼어붙은 상태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4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기업의 체감 경기는 11년 만에 가장 악화됐다.

한국은행이 2월 25일 발표한 ‘소비자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2월 CCSI는 96.9로 전달 대비 7.3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8월(92.4) 이후 최저치다. 이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자 심리가 장기 평균(2003~2019년)보다 낙관적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2월 CCSI 낙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2015년 6월(-7.3포인트)과 같았다. 금융 위기를 겪던 2008년 10월(-12.7포인트), 구제역과 동일본 지진 등이 겹친 2011년 3월(-11.1포인트) 이후 역대 셋째로 큰 낙폭이다.

자영업자의 체감 경기도 크게 악화됐다. 자영업자의 가계 수입 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전달 대비 8포인트 떨어진 87로 조사됐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3월(7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 체감 경기도 얼어붙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8.9로, 2009년 2월(62.4) 이후 132개월 만의 최저치다. BSI가 기준선(100)을 넘으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한국은행, 3월 중 금리 인하 가능성 높아

코로나19의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란 우려에 주요 국가들은 연이어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코로나19가 팬더믹(대유행)으로 번질 확률을 기존 20%에서 40%로 끌어올리면서 “올 상반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3월 3일 예정에 없던 특별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1.00~1.25%로 낮아졌다. 당초 Fed는 3월 17~18일 열리는 FOMC 정례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미국 CNBC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깜짝 조치”라고 분석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을 비롯해 한국·캐나다·영국·인도·유로존 등 주요 중앙은행이 연이어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월 4일 “Fed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고려해 통화 정책을 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4월 9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를 3월로 앞당겨 금리 인하에 전격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추경에 드는 돈의 88%(10조3000억원)는 적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나랏빚을 10조원 더 늘려서라도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추경 예산은 2015년 ‘메르스 추경(11조8000억원)’ 때와 비슷한 규모다.
커지는 경고음에 11조7000억원 ‘슈퍼 추경’…“근본적 정책 전환 계기 삼아야” 목소리도
정부는 3월 4일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추경안을 확정했다. 여야는 3월 17일까지 추경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피해 극복 지원과 경제 모멘텀 살리기, 당장의 방역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며 “필요하면 그 이상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체 추경 금액 중 8조5000억원을 코로나19 대응 사업에 투입한다. 나머지 3조2000억원은 세수 부족을 채우는 세입 경정에 쓰기로 했다. 코로나19 대응 사업 예산은 △방역 체계 보강 2조3000억원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2조4000억원 △민생·고용 안정 지원 3조원 △지역 경제 회복 지원 800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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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체계 보강 예산에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료기관을 지원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에는 긴급 경영 자금 대출과 연이율 1.48%의 초저금리 대출을 각각 2조원 확대하는 방안 등을 넣었다. 지역 경제 회복 지원은 코로나19로 피해가 가장 큰 대구·경북 중소기업과 상인들을 돕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김영익 교수는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2%대인데 반해 실제 성장률은 그 이하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수요를 부양해야 하는 만큼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돈을 생산성이 높은 곳에 적절히 배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추경 ‘선심성 예산’ 항목 논란

하지만 민생·고용 안정 지원 항목에 ‘선심성 예산’으로 보이는 예산안이 다수 포함돼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민생·고용 안정 지원에는 저소득층·아동·노인 등 500만 명에게 3월부터 4개월 동안 상품권 2조원어치를 뿌리는 방안을 담았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189만 명에게는 월 17만~22만원(2인 가구 기준)씩 8506억원을 지원한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보수도 22% 올려준다. 만 0~7세 아동(263만 명)을 둔 가구는 아동 1인당 월 10만원씩, 40만원어치 ‘공짜 상품권’을 받는다. 각각의 요건만 충족하면 상품권을 중복으로 받을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추경 예산안을 보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즉 막연히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노인과 저소득층에게 상품권을 뿌리는 등의 총선 대비용 선심성 항목이 많다”며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이고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마당에 불필요한 예산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 부채가 증가하는 판국에 경제 활성화를 위해 또다시 빚을 내는 상황이라면 목적에 맞게 적재적소에 편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경기 부양 효과가 상대적으로 덜한 민생·고용 안정 부문에 현금 지원을 남발하는 반면 실질적 도움이 절실한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에는 인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추경 편성에 따라 증가하는 나랏빚도 부담이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41.2%)은 사상 처음 40%를 넘어서는 등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취임 당시 수출 호조로 경제 상황이 비교적 좋았음에도 공약 이행을 위해 일자리 추경 11조원을 편성한 이후 매년 추경 카드를 꺼내고 있다”며 “코로나19 추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추경 없이는 경제성장률을 관리하지 못하는 ‘추경 중독’에 빠져 채무를 키운다는 비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커지는 경고음에 11조7000억원 ‘슈퍼 추경’…“근본적 정책 전환 계기 삼아야” 목소리도
한국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참에 정부의 경제 정책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은 이미 식어가고 있다”며 “기업을 적폐로 몰아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하기보다 시장을 믿고 그들이 한국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는 식의 정부 차원의 보다 확실한 시그널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예교수는 “올 상반기 우리 경제의 부진이 예상되는 모든 원인을 코로나19로만 몰고 가는 것은 곤란하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득 주도 성장’ 등 경제 정책 전반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기조를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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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7호(2020.03.09 ~ 2020.03.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