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성공 시 단숨에 업계 판도 뒤집혀…5조원 몸값이 ‘걸림돌’
‘이커머스 1위’ 이베이코리아 매각 가능성에 술렁이는 유통업계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이베이코리아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해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미국 이베이 본사는 최근 이베이코리아 보유 지분 100%를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상 매각 금액은 약 5조원이다.

이베이코리아는 옥션·G마켓·G9 등을 운영 중인 한국 온라인 유통 시장의 ‘최강자’다. 연간 거래액 약 16조원을 거두며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1위(약 12%)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이커머스 중에서 유일하게 흑자 행진을 이어 가는 ‘알짜 기업’으로도 꼽힌다.

이베이코리아의 M&A가 성사되면 단숨에 국내 온라인 시장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는 만큼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관계자 “아직 본사로부터 공지 못 받아”


이베이코리아 내부는 본사의 매각 사실이 전해지면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진 가운데 직원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접했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아직 본사에서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며 “구체적인 공지가 내려오면 매각과 관련한 공식적인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사에 매각 여부 확인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엔 “아마 경영진이 연락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반 직원들에게 공유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이베이코리아의 매각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불과하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최근 이베이 본사가 보여준 행보를 감안할 때 매각 가능성이 단순하게 나도는 ‘설’은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현재 미국 이베이 본사는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물산 등의 지배 구조에 깊게 관여하며 잘 알려진 바 있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이베이 지분을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경영진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 그 배경이다.

엘리엇은 지난해 초 이베이 지분을 약 4% 정도 사들였다. 이후 이사회에 공개 서한을 보내 “이베이 경영진의 일관되지 않은 집행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상실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엘리엇의 지적처럼 이베이는 사실상 성장이 멈춘 상태다. 2019년만 놓고 보더라도 전 세계 전자 상거래 시장이 약 20% 증가하며 호황이었다. 하지만 이베이는 여기에 올라타지 못하고 정체된 실적을 이어 갔다.

엘리엇은 이베이가 저조한 실적을 보이는 이유가 핵심 사업(온라인 마켓)에 집중하지 않아서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요구사항들을 이사회에 전달했다.

이 같은 엘리엇의 주장에 수많은 주주들이 지지했다. 결국 이베이는 엘리엇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자회사인 티켓 플랫폼 기업 스텁허브(StubHub)를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에 매각했다.

현재도 자사의 광고 사업 부문을 약 100억 달러(약 12조원)에 내놓고 인수자를 찾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이베이코리아도 정리할 대상에 올라 매물로 나오게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베이코리아가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것도 매각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대목이다.

유한회사는 내부 실적이나 배당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이베이가 한국 사업 철수를 결정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이베이 본사에서 이베이코리아 측에 매각과 관련해 공지했는지 공지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이미 지난해 말부터 매각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둔화된 성장이 매각 배경으로 꼽혀


그렇다면 이베이는 과연 왜 한국에서 온라인 유통업계 1위인 동시에 온라인 유통 기업 중 유일한 흑자를 기록 중인 이베이코리아를 매각하려고 하는 것일까.

‘업계 1위’, ‘유일한 흑자 기업’ 등 표면적인 지표들만 놓고 본다면 매각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다만 국내 온라인 시장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베이코리아가 처한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는 부분에서 그 원인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 역시 미국처럼 온라인 시장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베이코리아는 미국 본사와 마찬가지로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실적이 정체국면에 접어들었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온라인 시장의 경쟁 심화와 이베이코리아의 사업 방식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그 배경을 분석했다.
‘이커머스 1위’ 이베이코리아 매각 가능성에 술렁이는 유통업계
경쟁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은 쿠팡을 비롯해 신세계·롯데 등 유통 공룡들까지 온라인 강화를 외치고 나서며 경쟁이 심해지는 모습이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이베이코리아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업체들은 수조원에 달하는 돈을 ‘물류’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상품을 직매입한 뒤 이를 초스피드로 배송해 온라인 시장에서 점유율을 점점 키워 나가는 비즈니스 모델이 대세다.

반면 이베이코리아는 미국 본사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오픈 마켓’ 형태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남 애널리스트는 “국내 온라인 시장이 직매입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단순 중개 형태의 매력이 감소하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베이코리아의 수익성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미국 본사가) 사업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커머스 1위’ 이베이코리아 매각 가능성에 술렁이는 유통업계
한 유통업계 관계자 역시 이베이코리아의 매각과 관련해 “지금보다 시장에서의 가치가 하락하기 전에 높은 값을 받아 회사를 매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베이코리아가 누구의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국내 온라인 시장의 판도가 변할 수밖에 없다. 아마존이 점유율 약 40%를 차지하며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미국과 달리 한국 온라인 시장은 1위 기업의 점유율이 10%대에 불과한 춘추전국 시대다.

만약 특정 기업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온라인 시장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 구축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것으로 관측된다.

조용선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신세계·이마트·현대백화점과 같은 유통 기업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 사모펀드 등도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며 온라인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인수를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물론 이베이코리아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생각만큼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특히 가격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약 2조1000억원)을 감안하면 이베이코리아의 매각가가 지나치게 높아 결국 인수할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기업들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악화된 것도 매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걸림돌로 지목된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