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저비용 항공사 시작으로 두산중공업·쌍용차까지…코로나19 못 버티고 줄줄이 ‘응급실’ 찾아

산업은행에 빗발치는 기업들의 SOS…‘살릴 명분’ 고심하는 이동걸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한국 경제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파장이 본격화하면서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에 기업들의 긴급 구조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지원하면 막대한 대출 부담을 져야 하는 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 응급실’인 산업은행의 수술대엔 두산중공업과 저비용항공사(LCC)에 이어 쌍용차까지 올라있다.

최근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은 돌연 쌍용차에 대한 2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마힌드라가 앞으로 3개월간 쌍용차에 대한 4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일회성 자금 투입일뿐이다. 산업은행의 지원 없는 독자 생존이 어려운 실정이다.

산업은행이 가진 쌍용차 채권은 1900억원 정도다. 쌍용차는 오는 7월 이중 9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쌍용차는 2019년 말 기준 단기 차입금이 2500억원, 장기 차입금이 1600억원에 이르며 부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올해 1월 방한해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했을 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또 그동안 산업은행이 대기업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온 3대 원칙인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관계인 고통 분담’, ‘지속 가능한 정상화 방안’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경영 정상화 노력을 강조하며 “서로 맞아야 한다. 상대방(산업은행)이 하지 않으면 나(마힌드라)도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에 빗발치는 기업들의 SOS…‘살릴 명분’ 고심하는 이동걸


◆ 위기의 기업들 자금 지원 요청 ‘아우성’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대주주가 쌍용차에 대한 신규 투자를 거부하자 산업은행도 지원 여부를 검토해볼 수밖에 없게 됐다. 금융위원회가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 노력을 전제로 한 금융 지원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대주주가 일회성 자금 지원으로 인공호흡기만 달아준 쌍용차를 혈세 투입으로 연명하게 하는 방안보다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과감한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주주가 포기한 쌍용차를 지원하는 것은 이제껏 이 회장이 강조해온 구조 조정 원칙에 어긋나지만, 그렇다고 지켜만 보다가는 대량 실직과 관련 산업의 연쇄 도산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산업은행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항공사들의 자금 지원 요청도 빗발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2월 정부의 ‘LCC 항공사 금융지원’ 발표 이후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심화한 LCC 항공사들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티웨이항공에 60억원,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계열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에 각각 200억원, 300억원 등 총 560억원을 지원했다. 여기에 제주항공에 400억원, 진에어에 300억원의 운영 자금을 무담보로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산업은행이 LCC에 지원하는 금액은 1260억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4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에어부산에 280억원, 티웨이항공에 대해서도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제주항공이 인수한 이스타항공의 인수 자금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결합 심사를 완료하는 4월 중 1500억원에서 2000억원을 타행과 공동 지원할 방침이다.

LCC 노동조합은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불안을 호소하며 국가 기간 산업인 항공산업에 대한 정부의 금융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이스타항공은 정부의 LCC 긴급 경영 안정 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산업은행이 제주항공에 인수 자금을 최대 2000억원까지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에 빗발치는 기업들의 SOS…‘살릴 명분’ 고심하는 이동걸
LCC뿐만이 아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1조4700억원의 유상 증자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이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 차입금에 대한 금융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유례없는 항공업 위기에 대기업인 대한항공에 대한 자금 지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한항공은 코로나 영향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1조5000억~3조원 가량의 자금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은행은 최근 대한항공에 부족한 자금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실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도 응급환자다. 두산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한국수출입은행과 함께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5 대 5로 나눠 지원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의 전체 채권액은 4조9000억원으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4조2000억원을 연말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1조원 수혈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어서 업계에서는 두산중공업에 대한 정부 측의 추가 자금 지원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두산건설 등 계열사 지원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 온 두산중공업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특혜 시비도 불거지고 있다.

두산그룹이 “매각 가능한 모든 자산을 팔겠다”며 알짜 계열사인 두산솔루스 매각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두산솔루스의 몸값이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포함해 6000억원~8000억원대로 추산돼 자금난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많다.

글로벌 발전 수주가 감소하고 정부의 탈원전·석탄 정책,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맞물려 단기간 내 수익성 개선도 쉽지 않다. 참여연대 등 시민 사회단체들은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진 중인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한다.

참여연대는 4월 6일 논평을 통해 “정부가 4·15 총선 직전 표심을 잡을 생각에 코로나19를 핑계로 무작정 혈세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며 “무려 13조원을 투입하고도 결국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된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공적자금 투입 전 철저한 실사와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1조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 즉 국민 혈세가 투입될 때에는 해당 기업 재무구조에 대한 철저한 실사가 선행돼야 하지만 채권단은 선 자금 지원, 후 실사 계획을 밝히고 있다”며 “채권단은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혹시 있을지 모르는 회계 부실에 대한 정확한 실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3월 27일 두산중공업 지원 관련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워크아웃이나 법정 관리가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기간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실업, 지역 경제 타격 등을 고려할 때 자금 지원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은 채권단으로부터 1조원의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일부 계열사와 사업부 매각, 임원 보수 감축, 오너가 사재 출연 등이 담긴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 자금 지원으로 간신히 급한 불만 끄게 된 만큼 산업은행은 두산그룹의 책임 있는 자구노력 등을 보고 추가 자금 지원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두산중공업 지원 결정은 정부가 3월 24일 대통령 주재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나온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을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넓힌 이후 적용된 첫 사례다.

산업은행은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에 따라 정책금융 지원과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등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지원하기로 한 규모는 총 16조60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에 빗발치는 기업들의 SOS…‘살릴 명분’ 고심하는 이동걸
◆ 산업은행 체질 개선 작업 차질

문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산업은행의 응급실에 실려 오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점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두산중공업·쌍용차·아시아나항공 등에는 추가적인 자금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구조 조정이 필요한 대기업이 늘어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산업은행은 최근 이사회에서 연내 후순위 산업금융채권 발행 한도를 4조원으로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산업계 곳곳에서 산업은행에 손을 벌리고 있어 정책 금융 지원 확대에 따른 선제적인 자본확충 조치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는 이 회장이 그간 추진해온 산업은행의 체질 개선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취임 이후 ‘구조 조정 해결사’에서 ‘혁신 성장의 마중물’로 산업은행의 체질 개선에 속도를 높여온 이 회장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 회장이 평소 밝혀온 소신대로 대주주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하는 구조 조정 원칙을 지키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한국GM과 금호타이어 구조 조정과 관련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은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 위기에 ‘대주주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이 같은 구조 조정 원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산업은행에 새로운 역할 변화를 주문하며 기업 구조조정은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에 맡기고 KDB넥스트라운드 등을 통해 혁신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강조해왔다.

비금융 기업의 구조 조정은 구조 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에 맡기고 조선·자동차 등 기간산업이나 대기업 구조 조정은 여전히 산업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 조정 집도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자 최근에는 ‘기업경쟁력제고 지원단’을 신설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