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정치인] 삼성 ‘고졸 신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 “총선 압승, 기뻐하기보다 민심에 대해 두려운 생각 들어…어깨에 큰 바위가 얹힌 것 같다”
- "정치하라고 30년 나를 가혹하게 훈련시켰다고 생각"
- "문 대통령의 '그 다음 인생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4년 전 이게 운명이다 싶어 정치에 발 디디게 돼"
- "저 사람이면 뭐든지 맡겨도 되겠다는 정치인 될 것"
- "노조, 투쟁 위주 벗어나 대안 제시하는 역할 해야"
- "이재용 부회장 사과, 삼성 다시 도약하는 계기 될 것"
양향자 “개인적 삶 장례 치러…이제 정치에서 한계 깨겠다”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광주 서을)에게 붙는 타이틀이 많다. 우선 ‘고졸 신화’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1985년 광주여상을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메모리설계실 연구원 사무 보조원으로 입사했다. 메모리사업부 책임, 수석을 거쳐 2014년 직장인들의 꿈인 임원(상무)에 오르는 단계 단계는 편견을 깨는 것이었다.

제품 설계 자동화를 통해 개발 기간 단축에 크게 기여한 것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스스로 규정한 ‘너무나 배움이 미천한 존재’라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가혹하게 훈련시키는 축적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내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는 순간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호남 지역 유일한 여성 당선인이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의 도전 상대는 6선 호남의 정치 거물 천정배 민생당 의원. 4년 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영입해 나선 첫 대결에선 무릎을 꿇었지만 ‘4·15 총선’ 리턴매치에선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그는 이제 정치 영역에서 한계를 깨겠다는 각오다. “정치를 하라고 지난 30년 나를 가혹하게 훈련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내 개인적 삶은 장례를 치렀다. 정치 영역에서 내 역할이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며 각오를 밝혔다.

▶천정배 민생당 의원과 두 번째 대결에서 이겼는데 승리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4년 전 낙선 실망감이 들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역 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한데 대해 인정해 준 것으로 봅니다. 4년 전엔 국민의당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중도를 표방한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신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남 민심이 민주당엔 회초리를 들었죠. 민주당이 호되게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국민의당에 기회를 줬는데 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으로 깨지고 다시 대안신당·민생당으로 이합집산 하는 등 부끄러운 당이 돼 버렸습니다. 반면 민주당 원외 위원장들은 대오를 흩트리지 않았어요. 그 중심에 양향자가 있다는 말씀들을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뉴DJ’를 내세웠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천정배 후보가 2016년 선거에서 ‘뉴DJ를 발굴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들고나왔어요. 정치 거물이 왜 ‘뉴DJ’를 이야기하나 싶었어요. 그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책을 보면서 나도 어쩌면 그분의 정치적 역경과 삶과 같은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양 당선인은 ‘행동하는 양심이 돼라’ 등 김 전 대통령의 어록을 빼곡하게 메모한 내용을 보면서 설명했다.)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연구 보조원으로 간 이유가 뭐죠.

“초등학교 때 적성검사를 받았는데 자연계가 적성에 맞는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이공계 분야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꿨죠. 하지만 집안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광주여상에 진학하면서 꿈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마음속에 나는 기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광주여상 졸업을 앞두고 취업 선택을 할 때 당시 삼성반도체통신 연구원 보조를 뽑는 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어요. 모두 반도체에 대해 낯설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나는 지원해 합격했어요.”

▶당시 반도체에 대해 알고 지원했습니까.

“반도체의 반자도 몰랐죠.”

▶입사해 어려움이 있었겠습니다.

“처음엔 커피, 복사 심부름을 하거나 손님이 오면 안내해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어로 된 반도체 관련 자료들이 책상에 수두룩했는데 연구원들이 일본어를 잘 몰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단지 일본 자료에 나와 있는 반도체 회로 부분만 유심히 볼 뿐이었어요. 그때 일본어를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광주여상 3학년 때 교장 선생님이 강사를 초빙해 일본어를 배우게 한 덕분이었습니다. 내가 일본어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번역해 복사한 다음 연구원들 책상에 올려놓았죠. 다들 ‘이런 뜻이었나’라며 놀랐습니다. ‘미스 양, 커피, 물’ 이렇게 말하다가 그 이후엔 양향자 씨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때 회사에서 내 이름을 처음 찾았습니다. 그런 뒤 매일 그런 자료를 가지고 회의를 하는 모습을 한쪽 구석 보조 의자에 앉아 듣는데 나도 반도체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우선 일본어를 좀 더 잘해야겠다 싶어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연구원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지만 청강이라도 해달라고 사정해 뒤에서 들었습니다. 열심히 해 일본어 자격증을 가장 빨리 땄습니다.”

▶학벌 좋은 연구원들과 경쟁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겠습니다.

“한 번도 경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배움이 미천했고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대학 과정, 연수 과정까지 마치고 온 사람들을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삼성에서의 생활은 늘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배움 속에서 성장해 나가고 더 높은 단계의 일이 주어지면 해내던 과정이지 한 번도 동료들이나 선배들과 경쟁해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쭉 축적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질문 때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4년 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 대표가 영입을 제의하며 ‘양 상무님은 꿈을 이뤘는데 그다음 인생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꿈 넘어 꿈’이 뭐냐고 생각했죠. 그에 몇 달 앞서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 진행된 삼성전자 임원 힐링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고도원 국립산림치유원장이 내게 ‘꿈 넘어 꿈이 뭐냐’고 물었어요. 그 질문이 30년간 달려왔던 회사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이 고민했죠. 나머지 30년을 삼성에서 더 일하면서 내 경험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묘하게도 문 대통령의 질문이 또 한 번 제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운명이다 싶어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됐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까.

“정치인은 국민들이 권력을 위임해 주면 그 위임된 권력으로 국민을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내 개인적 삶은 장례를 치렀다고 할 정도로 생각할 겁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저 사람이라면 뭐든지 맡겨서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치인이 될 겁니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자신을 ‘시대가 부르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죠.

“새로이 변화하는 시대에 필요로 하는 지도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0년은 정치를 하기 위해 나를 가혹하게 훈련시킨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입된 여성은 비례대표를 하고 그다음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이 정석처럼 돼 있더라고요. 나는 비례대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례의원들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를 하다 보니 정치인으로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다분히 승부사 기질이 있습니다. 내가 호남의 지지를 다시 받기 위해 영입됐는데 호남에 출마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민주당과 정치 이념은 맞다고 봅니까.

“민주당이 나를 영입할 때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궤적이 확장성에 도움 된다고 판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정치적 상품이 굉장히 좋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접근하는 방향이 약간 다를 뿐이지 민주당과 내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같습니다.”

‘▶민주당의 총선 압승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대와 믿음이 크면 실망도 빨리 올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 잘해야 한다는 무게감·압박감·의무감이 있습니다. 어깨에 바윗덩어리가 얹힌 느낌입니다. 기뻐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민심에 대해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양향자 “개인적 삶 장례 치러…이제 정치에서 한계 깨겠다”
양향자 당선인 약력 : 1967년 전남 화순 출생. 광주여상·삼성전자기술대 반도체공학과·한국디지털대 인문학과·성균관대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졸업. 삼성전자 상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위원. 제21대 국회의원 당선(광주 서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거대한 변화를 몰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4차 산업혁명과 인구 절벽으로 산업 생태계는 물론 인류의 문명·문화가 완전히 바뀌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를 가속화시켰습니다. 기존의 문화와 관성을 완전히 바꾸는 문명의 충격으로 봐야 합니다. 기업의 도산, 소비와 생산의 급격한 위축, 글로벌 분업 체계의 파괴,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노동 대체와 고용 축소, 그에 따른 세수 감소까지 전에 겪지 못한 위기가 총체적으로 오고 있습니다. 국가 체계를 완전히 새로 디자인한다는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서비스산업발전법과 원격 의료 허용법이 오랫동안 국회에서 막혀 있습니다.

“영국의 빨간 깃발법처럼 새 산업을 가로막는 규제는 없애야죠. 다만 그 법 때문에 피해를 보는 분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돼 있지 않다면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는 완화하되 기존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다만 도도한 변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의사들도 원격 의료를 안 된다고만 할게 아니라 논의하고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삼성 임원 출신인데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 기자 회견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다만 국민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앞으로 후속 대책들을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중요하죠. 기대와 우려가 함께 있는데 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삼성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 생각을 합니다.”

▶반도체 전문가로서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봅니까.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일본이 굉장히 앞서가고 있는 소재 기초 과학 기술 부문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물론 글로벌 기술 밸류체인에 있는 반도체 기술은 한국이 최고예요. 이 부분은 일본이 함부로 못 건드립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가 30년 가까이 세계 1등을 하고 있죠.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도 잘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소재·부품·장비도 마찬가지예요. 사막에 뿌리는 물이 안 되려면 그 영역을 제대로 알고 있는 분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기술 패권으로 국가의 안위를 담보해 낼 수 있으려면 기술을 담당하는 대기업들과 그와 관련된 중소벤처기업·정부·정치가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이벤트성으로 일본에 대응하면 안 됩니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왔던 것처럼 정치도 그렇게 해야 하죠.”

▶노동조합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투쟁 인식에서 벗어나 기업 활동을 잘하기 위해 노동력의 품격도 높여줘야 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게 노조의 역할입니다. 노사가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려면 양쪽 모두 그만한 노력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력을 열정적으로 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쪽으로 바뀌어 대한민국에 희망을 줘야죠.”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