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278호 (2020년 05월 25일)

손잡은 이재용·정의선, ‘전고체 배터리’ 뭐길래

기사입력 2020.05.25 오후 03:24

[비즈니스 포커스]

- 화재와 폭발 위험 없고 에너지 밀도 획기적 향상되는 ‘전고체 배터리’…양산화 시점은 ‘미정’


국내 양대 그룹 총수가 전고체 배터리로 손을 잡았다.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대화하는 모습. 사진 한국경제신문

국내 양대 그룹 총수가 전고체 배터리로 손을 잡았다.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대화하는 모습. 사진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두 총수가 손을 맞잡았다. 지난 5월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알버트 비어만 사장, 상품 담당 서보신 사장 등이 방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전영현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 등 최고경영진이 이들을 맞았다.



한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 경쟁 구도에 있던 두 기업의 총수가 공개적으로 별도 회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진이 삼성 사업장을 방문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양 그룹을 이끄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배경에는 ‘전고체(電固體) 배터리’가 있다.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개발 현황과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파격적 만남을 이끈 전고체 배터리는 과연 무엇일까.



‘전해액’ 없이 모두 고체로 만든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는 말 그대로 ‘모두 고체로 만들어진 전지’를 뜻한다. 지금도 배터리는 딱딱해 보이지만 그 내부는 액체로 가득하다. 전해액이 담겨 있어서다.



1800년 세계 최초의 전지인 ‘볼타전지’가 나온 뒤부터 전지는 핵심 4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을 걸고 금속 간에 전기가 흐를 수 있는 전도체를 넣는 구조다. 여기에 전기 쇼트(short-circuit)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속 사이를 갈라놓는 분리막 등을 전지의 기본으로 부른다.



이탈리라 과학자 알렉산드로 볼타가 처음 볼타전지를 개발할 때 사용된 전해액은 묽은 황산이었다. 실험실 안에서는 황산을 그대로 전해액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건전지에 황산을 그대로 넣을 수는 없었다. 자칫 액체가 샌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전해액을 딱딱하게 만들려는 꿈이 시작됐다. 당시엔 전해액을 젤리처럼 해 건전지를 만들었다.


 
현존하는 2차전지 중 최고의 전지로 평가받는 리튬 이온 전지는 1991년 일본 소니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을 전후로 LG화학과 삼성SDI가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 리튬 이온 전지에도 전해액이 사용된다. 전해액은 전자를 이동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리튬염을 용매에 녹여 만든다.


손잡은 이재용·정의선, ‘전고체 배터리’ 뭐길래


그런데 이 전해액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화재와 폭발의 위험이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해액을 채워 하나의 셀을 만들면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고 가면서 소위 삼지창처럼 자라나게 된다. 전지의 수명과 안전성을 낮추는 ‘덴드라이트(dendrite) 문제’다.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는 리튬이 음극 표면에 적체되며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체가 되고 이 결정체가 배터리의 분리막을 훼손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분리막이 뚫리면 전자들이 모두 여기로 통과하면서 열을 발생시킨다. 발생된 열로 리튬 이차전지가 부풀어 오르고 이마저도 견디지 못하면 불이 난다. 과거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7의 배터리 폭발도 분리막과 전해액의 기능이 충분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양극과 음극은 지금도 고체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전해질까지 고체로 바꾸면 화재와 누출이 없어 안정성이 확실히 담보된다.
장점은 또 있다. 고체 전해질은 전해액과 분리막의 역할을 겸하기 때문에 양극과 음극 사이에 고체 전해질을 끼워 넣으면 돼 콤팩트한 패키징이 가능하다. 또 고체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하면 불이 나지 않기 때문에 더 센 양극재와 음극재를 사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에너지 밀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나아가 전고체 배터리는 진정한 미래형 배터리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리튬 이온 전지를 능가하는 차세대 전지인 리튬 에어 전지, 리튬 황전지 등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손잡은 이재용·정의선, ‘전고체 배터리’ 뭐길래


말 그대로 ‘꿈’에 그칠 가능성도 있어
이 때문에 학계와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향한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져 왔다. 1970년대에 은· 동 고체 전해질이 개발됐고 리튬 고체 전해질도 개발됐다. 1980년대에는 시트 전지가 개발됐고 1990년대에는 산화물 양극과 인듐 음극, 결정계 리튬 고체 전해질 등이 나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리 전해질, 결정질 전해질, 자기 생성 전극 등 새로운 전지 구성이 제안되기도 했다.



특히 소재 기업에 강한 일본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앞장서 왔다. 도요타자동차는 일찍이 전고체 배터리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오랜 기간 연구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들은 아직 연구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제품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가장 앞서 있는 도요타자동차도 목표했던 2025년 상용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국책 연구원 2차전지 연구원은 “보수적으로 봐도 2030년을 예상할 수 있고 최소한 2030년 이전까지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의 가장 큰 난제는 첫째 소재에 있다. 이온 전도성이 좋은 소재를 찾아야 한다. 처음 폴리머계로 시도됐다가 성능에 한계를 본 후 산화물계와 황화물계가 등장했다. 현재는 산화물계와 황화물계의 장단점을 보면서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또 고체의 접합 부위에서 ‘계면’ 문제가 발생한다. 액체 전해질에 비해 ‘성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공정으로 인한 고비용 구조도 풀어야 하는 과제다.



물론 국내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기업 중에서는 특히 삼성종합기술원과 삼성SDI가 적극적이다. 삼성SDI가 생각한 전고체 전지의 콘셉트는 발화되지 않는 고체를 사용, 황화물 전해질의 채용, 음극 공정의 대폭적인 간략화로 저비용화 실현 등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지난 3월 초 전고체 전지의 수명과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크기를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게재했다고 발표했다. 1회 충전에 800km 주행, 1000회 이상 배터리 재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전지 연구 결과를 공개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덴드라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고체 전지 음극에 5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은·탄소 나노 입자 복합층을 적용한 ‘석출형 리튬 음극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배터리 전문가들은 이 기술을 진일보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겨우 한 발을 뗀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손잡은 이재용·정의선, ‘전고체 배터리’ 뭐길래



홍유식 INI산업리서치 대표는 “전지의 탄생 이후 고체 전해질의 꿈은 아직까지 실현되고 있지 않다”며 “아직 고체 전해질의 구조적 난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기술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고 말 그대로 꿈의 전지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만남이 공급처 다변화의 의미로 해석하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연구원은 “차세대 전지로 서로 시너지가 나는 그림보다는 현대차가 기존 LG화학에서 삼성SDI에까지 공급처를 확대했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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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5-27 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