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124년 '형제 경영', 구조조정 걸림돌 우려
-원전 전문가 "원전에 묶인 돈 풀어주면 5~6년 벌 수 있어…공적 자금 투입보다 바람직"
“신한울 원전 재개하면 자력 생존 가능”…두산 구조조정 ‘가시밭길’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고강도 구조 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산 매각과 유상 증자,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등을 통해 3조원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매출액은 15조6597억원으로 전년보다 6.1% 증가했지만 당기순손실 1043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올해 1분기에도 371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최근 국책 은행 등 채권단 지원을 받은 뒤에도 올해 갚아야 할 돈이 1조원대 중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자금 지원을 받는 대가로 명예퇴직과 자산 매각 등 뼈를 깎는 구조 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만 45세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2차 명예퇴직 신청자 중에는 입사 6~7년 차인 20대 전문직 직원도 4명 포함됐다. 5월 21일부터 약 350명을 대상으로 휴업에 들어갔다. 휴업 대상자들은 연말까지 약 7개월간 일을 하지 않으며 이 기간 평균 임금의 70%를 받게 된다.
“신한울 원전 재개하면 자력 생존 가능”…두산 구조조정 ‘가시밭길’


◆ 그룹 상징도 매각설…형제 경영 막 내릴까


‘돈 되는 것은 다 판다’는 기조 아래 자산 매각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두산그룹의 사옥이 있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와 골프장인 클럽모우CC도 공식적으로 매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마스턴자산운용과 두산타워 매각을 위한 마무리 협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매각 가격은 7000억원 안팎에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두산타워 부지와 빌딩에 이미 4000억원 정도 담보가 설정돼 있어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세금과 재무비용을 제외하면 두산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약 1000억~2000억원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옥 매각만으로는 재무 구조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추가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알짜 계열사들의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두산이 어떤 것을 매각할지 채권단에 제출할 최종 자구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두산의 알짜 사업부인 산업차량BG·모트롤BG(유압기기)·전자BG(동박)를 비롯해 두산중공업의 핵심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도 시장에서 매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비핵심 계열사나 사업부를 우선 정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2008년 5월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도 매각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두산그룹의 재무 상황에서 대학 운영의 실익이 없다는 분석이다. 또 한 가지 두산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야구단 ‘두산베어스’의 매각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주력 사업과 무관하고 두산이 B2C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두산베어스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두산베어스 매각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두산베어스 매각설에 대해 두산그룹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주력 사업과 연관성이 없어도 야구단은 두산그룹의 자존심”이라며 “벼랑 끝에서도 야구단은 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두산타워 등 자산 매각 작업에 돌입했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오랫동안 전통으로 이어 온 가족 경영 체제가 강력한 구조 조정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3대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사 경영을 맡는 ‘형제 경영’ 체제를 유지하다가 박정원 회장이 2006년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면서 사촌 간 승계가 핵심인 4세 경영 시대의 막을 올렸다. 형제들이 각 계열사 경영을 나눠 맡고 있고 지분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계열사 매각 결정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사업적으로 얽혀 있어 부진한 사업 정리도 쉽지 않다.
“신한울 원전 재개하면 자력 생존 가능”…두산 구조조정 ‘가시밭길’

◆ 신한울 재개하면 자력 생존 가능 전망도


한편 채권단이 두산그룹에 2023년까지 3년의 시간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산이 향후 3년 동안 어떻게 경영을 정상화할지 주목된다. 채권단이 두산그룹에 시간을 두고 자산 매각·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는 두산중공업의 자력 생존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두산중공업은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자회사인 두산건설에 대한 과도한 지원 때문에 적자 상태였지만 문제는 미래가 달린 산업의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탈원전·탈석탄 정책의 영향으로 이제 미래 먹거리까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 정책으로 인해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이 재개되면 두산중공업이 독자 생존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신한울 3·4호기에 두산중공업이 묶여 있는 돈이 수천억원”이라며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풀어준다면 두산중공업이 계속 기업으로서 적어도 5~6년은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두산중공업이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원전 사업을 유지하는 동안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며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두산중공업이 잘하는 원전 사업의 길을 열어주고 자체 사업을 통해 계속 기업으로서 미래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원전 산업 역시 아직 발전 가능성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세계 18개국에서 현재 짓고 있는 발전소는 50여 개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글로벌 원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방 세계에 원전 기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은 두산중공업이다. 두산그룹 차원의 고강도 구조 조정으로 인해 해외에서도 두산중공업이 원자력발전소 제조 분야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문제는 두산중공업이 추진하는 가스터빈과 풍력사업은 원전만큼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액화천연가스(LNG) 가스터빈으로 체질 개선을 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트랙 레코드를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가장 확실한 먹거리인 원자력으로 회사를 먹여 살리면서 가스터빈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스터빈은 세계적으로도 과점 시장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MHPS) 등 3개 회사가 세계 가스터빈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3개사가 과점한 시장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 사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그 재원은 원자력 사업에서 얻을 수밖에 없지만 원전은 정책적으로 막혀 있고 시민 단체들의 반대도 심해 두산중공업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이 또 다른 미래 사업으로 추진 중인 풍력 사업은 전망이 더 어둡다. 풍력 발전은 국내 입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내수 시장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두산중공업은 한국중공업 시절부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자력 발전 설비 분야 기술을 쌓아 왔다”며 “정부 보조금으로 국민에 부담을 주지 않고도 두산중공업을 살릴 방법은 결국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밖에 없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