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완제품에서 소재·충전 인프라까지 ‘배터리에 미래 건 10대 그룹’ ]
-유럽 20여 개국 내연기관차 완전 퇴출 계획
-LG·삼성·SK, 격전지 유럽에 전진 기지 확보 사활
탈내연기관 시대 왔다…유럽으로 헤쳐 모이는 ‘K-배터리’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유럽 시장은 환경 규제 강화와 보조금 확대의 영향으로 전기차 시장이 고속 성장 중이다.

영국은 2040년 예정이었던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를 5년 앞당긴 2035년부터 시행하기로 했고 아일랜드는 이보다 5년 더 이른 203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등록 금지를 시행할 예정이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유럽연합(EU)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는 주행 거리 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5g 이내로 낮춰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1대당 1g·km마다 95유로(약 13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강력한 환경 규제와 보조금 정책 등에 힘입어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전기차 시장 분석 업체 EV볼륨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41만 대를 기록해 중국(38만 대)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이끄는 국가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3개국이다.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24.6%)를 차지했고 중국 CATL(23.5%), 일본 파나소닉(20.4%)이 2·3위를 차지했다. LG화학(24.6%)·삼성SDI(6%)·SK이노베이션(3.9%)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34.5%에 이른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올 상반기 유럽 시장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전기차 관련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유럽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기업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고 폭스바겐·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해외 배터리 업체 간 합작 법인 설립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탈내연기관 시대 왔다…유럽으로 헤쳐 모이는 ‘K-배터리’

◆ 배터리 빅3, 동유럽에 공격 투자


한국 배터리 3사는 유럽 시장 선점을 위해 글로벌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생산 거점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유럽은 메르세데스-벤츠·BMW·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와 배터리 회사들의 생산 기지가 밀집된 곳이다. LG화학은 폭스바겐 ID.4 등 배터리 물량 확대에 따라 폴란드 공장 증설을 통해 배터리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LG화학은 한국을 비롯해 2012년 미국 미시간 주 홀랜드시, 2015년 중국 장쑤성 난징시 1공장, 2018년 폴란드 브로츠와프, 2019년 중국 난징시 2공장 준공 등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생산망을 구축하고 있다. 배터리 공장 증설 등을 포함해 배터리 사업에 지난해 3조80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도 3조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유럽 전기차 성장세에 따라 최근 폴란드 공장의 대대적 증설에도 나섰다. 증설을 통해 생산 능력을 30GWh에서 6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도 중국 옌청, 미국 조지아, 헝가리 코마롬에 있는 배터리 생산 공장의 추가 증설을 진행하며 해외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미국 조지아 주에 제1, 2공장을 짓고 있고 폴란드에는 지난해 말 완공해 가동 중인 1공장에 이어 2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여기에다 폴란드 3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연간 생산 능력을 현재 19.7GWh에서 100GWh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SDI도 유럽 생산 기지인 헝가리 2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현재 4개 라인이 가동 중인 헝가리 괴드 배터리 공장에 새롭게 4개 라인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기존 와인딩 공법 대신 SK이노베이션처럼 소재를 층층이 쌓는 ‘스태킹’ 공법을 적용한 신규 생산 라인 증설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배터리 3사의 배터리 제조 방법은 삼성SDI의 와인딩 공법, LG화학의 스택 앤드 폴딩 방식, SK이노베이션의 스태킹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업계에선 삼성SDI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법과 비슷한 신공법을 검토한 이유로 최근 주요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 화재가 연달아 발생하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에서만 화재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시장은 배터리 업체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도 중요한 시장이다. 현대차는 한국 배터리 3사와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며 테슬라에 맞서 유럽 시장 선점에 시동을 걸었다. 내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탑재한 아이오닉 5를 유럽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차의 유럽 물량을 담당하는 SK이노베이션이 현대차의 E-GMP 1차 물량을 수주했다. 2차 물량은 LG화학과 중국의 CATL이 수주했다.

현대차는 E-GMP가 적용된 모델을 처음 도입하는 내년을 전기차 원년으로 삼고 있고 2025년 세계 3위 전기차 제조사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에게 유럽은 북미·한국·중국에 이어 넷째로 큰 시장이다. 또 유럽은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징벌적 벌금, 보조금 확대, 신규 모델 출시 증가 등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고 올해 100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판매된 전기차 시장의 글로벌 격전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그동안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주도했던 유럽과 중국 등 주요 국가가 자동차 환경 규제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데 따라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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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필두로 한 아시아 독주에 제동 움직임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유럽자동차부품공업협회·유럽딜러협회 등 유럽 자동차업계는 올해 상반기 EU 집행위원회에 자동차 1대당 이산화탄소 연평균 배출량을 95g·km으로 제한하는 규제 시행을 늦춰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중국은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소멸 시기를 2020년 말에서 2022년 말까지 2년 연장했다. 미국도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해야 배터리 업체도 수혜를 볼 수 있는데 전기차 판매량은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의 정책 방향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 LG화학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10월 21일 열린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유럽에서 차량에 대한 보조금은 오히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늘리고 있다”며 “환경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존 환경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향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럽 시장의 ‘K배터리’ 견제구도 해결 과제다. 유럽은 전기차 산업과 연관된 화학·자동차·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발전한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에서 핵심 부가 가치를 차지하는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뒤처져 있다.

지난 8월 폴란드 정부가 자국에 있는 LG화학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증설에 9500만 유로(약 1326억원)의 공공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자 유럽공동체(EC)가 EU의 보조금 규정에 부합하는지 심층 조사를 시작한 것도 한국 배터리 회사에 대한 견제구로 풀이된다. EC는 헝가리 정부가 신청했던 삼성SDI의 현지 배터리 공장 증설에 대해 지원금 승인도 오랫동안 보류한 바 있다.

한국의 배터리 3사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가운데 EU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에 대한 아시아 국가의 높은 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 유럽 지역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적극 육성 중이다.

2017년 프랑스와 독일 정부 주도로 설립된 유럽배터리연합(EBA)에 4년간 60억 유로(약 8조628억원)를 투입해 전기차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고 유럽의 배터리 업체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EBA는 배터리 원재료 확보에서부터 핵심 소재 연구·개발(R&D), 제조 과정과 사용 후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배터리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경쟁력 있는 지속 가능한 배터리 공급 사슬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다. 자동차 산업 관련 일자리를 보호하고 아시아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도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주요 고객인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도 자체 배터리 생산 능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2014년 배터리 자체 생산을 포기했던 다임러는 다시 자체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폭스바겐은 스웨덴의 배터리팩 업체인 노스볼트와 손잡고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배터리 자급자족을 추진하고 있다. 노스볼트는 지난해 LG화학·삼성SDI 등 한국 전기차 배터리 인력을 대거 영입해 논란이 됐던 업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거세지는 유럽의 견제 속에서 시장 주도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핵심 원재료의 안정적 확보와 미래 기술 선점이 관건”이라며 “가격 경쟁력이 높은 차세대 배터리 R&D에 지속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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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