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특별기획 대한민국 ‘구해줘! 홈즈’ 프로젝트④
-무주택자 내 집 마련 위한 패러다임 대전환 필요
-공공 임대 대신 바우처 활성화한 미국…파격 금융 지원책 효과 본 영국
‘공공임대주택 30년’…양적 확대→질적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한국에 30년 이상의 임대 기간이 보장된 장기 공공임대주택이 도입된 지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30년 동안 역대 정권마다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쏟아냈다. 1989년 영구임대주택을 시작으로 1998년 국민임대주택, 2003년 10년 공공임대, 2004년 다가구 매입임대, 2006년 전세임대, 2013년 행복주택 등 시기별·정권별로 다양한 공공임대주택이 도입돼 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양적 확대라는 정책 기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은 사회 취약 계층의 주거 복지를 실현하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들의 주거 징검다리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차별과 저소득층 주거지로 낙인찍히는 부정적인 외부 효과도 함께 가져 왔다. 일반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은 복도식의 협소한 아파트를 떠올리기 쉽다. 양적 정책 목표를 정해진 기간 내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단지 형태로 공급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이렇게 외관으로 식별되고 노후 아파트 등 물리적 공간의 차별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 저소득층의 집단화에 따른 사회적 배제·고립·단절 등을 통한 사회적 낙인이라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 30년간 양적 확대에만 치중했던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대해 질적 수준을 높이고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검토해 볼 시점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상황과 주요 선진국 사례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봤다.

공공임대주택은 민간 주택 시장에서 적절한 주택을 구하기 어려운 빈곤층과 저소득 계층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에 의해 공급되는 주택이다. 공공 주택 사업자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나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임대하거나 임대 후 분양 전환을 할 목적으로 건설, 매입 또는 임차해 공급한다.

빈곤층과 저소득층의 주거 복지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부족한 저소득층 주택 공급량의 확대를 통해 무주택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공임대주택의 기본적인 목적이다. 최근에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 효과를 해소하기 위해 중산층을 포괄하는 보편적 주거 복지 개념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목적이 확장되는 추세다.
‘공공임대주택 30년’…양적 확대→질적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 공공임대 7.2%…OECD 평균엔 못 미쳐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공공 임대 비율은 평균 8%로, 한국은 7.2%에 그쳐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영국·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보다 낮지만 미국·일본·독일 등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 공급을 추진해 온 유럽 복지 국가들의 공공 임대 비율은 네덜란드 35%, 덴마크와 오스트리아가 20%에 이르며 영국과 프랑스가 15% 안팎이다. 미국·일본·독일·캐나다 등은 한국보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낮다.

정부는 전체 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인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OECD 평균인 8%를 넘어 1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주거 복지 로드맵 2.0에 따르면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2025년까지 240만 가구 수준으로 늘려 연평균 21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현재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OECD 평균을 넘어선 10%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를 설정할 때 참고한 기준인 OECD 평균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먼저 주요 선진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각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크고 공급 주체 측면에서도 국가와 지자체가 공급 물량 대부분을 책임지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은 민간 비영리 조직·주택조합·개인 등 여러 주체가 공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네덜란드 등은 비영리 조직·주택조합의 비율이 높고 미국·독일은 개인·영리조직의 비율이 높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있어 민간 비영리 조직·주택조합의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정부 재정 지출 없이도 민간 부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만으로는 서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짧은 기간 내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에 정책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주택의 품질 문제도 계속 불거지고 있다. 특히 좁은 면적과 관련해 공공임대주택은 성냥갑 아파트, 닭장 아파트라는 서글픈 별명도 갖게 됐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공공임대주택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중 최저소득 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신혼부부·사회초년생 등을 위한 행복주택 등 특정 유형의 경우 전용면적이 40㎡ 미만이 90% 이상으로 소형 주택에 쏠려 있다.

일반적으로 40㎡인 주택은 거실 겸 침실 1개, 소형 침실 1개, 욕실 1개, 부엌 1개로 구성된다. 신혼부부와 사회 초년생을 위해 공급하는 행복주택은 40㎡ 미만으로 입주자가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결혼·출산·자녀 양육 등을 위한 공간 확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공임대주택은 공적 재원이 투입돼 건설, 공급되고 있고 한정된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대개 주택의 면적이 작은 소형 주택으로 공급된다. 수요자의 가구원 수가 다양한 만큼 유형별 주택 면적과 규모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국토교통부의 주거 실태조사 결과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면적 40㎡ 미만이 46.7%, 40~60㎡ 미만이 40.7%, 60~85㎡ 미만이 11.3%, 85㎡ 이상이 1.4%였다. 공공임대주택은 일반 주택보다 가구당 주거 면적과 1인당 면적이 각각 21.4㎡, 6.4㎡ 작다.

OECD 가입국 중 한국보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낮은 일본·영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일본과 영국보다 40㎡ 미만 소형 주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60㎡ 이상 주택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선진국에서는 1970~198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재정 부담이 큰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대신 주택 바우처(HCVP : Housing Choice Voucher Program)가 활성화돼 있다. 주택 바우처(주거비 보조) 제도는 저소득층에게 일정 수준의 임대료를 보조해 그들이 살고 싶은 지역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1970년대 이후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주택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주택의 양적 부족 문제를 해소한 선진국들은 저소득층 주택 문제의 원인을 주택의 양적 부족 문제가 아니라 주거비용에 대한 지불 능력의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30년’…양적 확대→질적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 주거비 보조에 집중하는 선진국들


미국은 재정 보조 아래 주택 바우처를 중점적으로 운용하고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높은 유럽은 주택 바우처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영국은 주택 구입 지원 프로그램인 ‘헬프투바이(help to buy)’를 시행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들에게 금리와 대출 조건 등에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이를 통해 집값의 10%만으로 자신이 살던 임대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헬프투바이 시행 이후 범죄율이 줄고 공공임대주택 관련 사회 문제도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에서도 서울시 등 지자체가 2002년 5월부터 ‘서울형 주택 바우처’를 통해 주거 급여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거나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차상위 계층 가구에 매달 월세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자체보다 수요자가 살고 싶은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 사례는 사람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임대주택의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로,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195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도심 한가운데 지어진 33개의 고층 타워로 이뤄진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단지로,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디자인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기획한 모더니즘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였다.
‘공공임대주택 30년’…양적 확대→질적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아름다운 외관으로 당시 미국 건축가협회상까지 받았지만 경제적인 논리에 치우친 물량 위주의 이 고층 아파트 단지는 결정적으로 그 곳에 살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거주성 향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조였다. 결국 완공 후 빈곤층 유입, 범죄 소굴화, 인종 분리 현상 등의 문제가 발생해 급격한 슬럼화가 진행됐다.

당초 프루이트 구역은 흑인, 아이고 구역 은 백인이 거주하도록 계획됐다. 하지만 백인들이 흑인과 섞여 살기를 거부했고 연방대법원이 흑백 분리 수용에 제동을 걸면서 결국 흑인들만 사는 주거지가 됐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거주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임대료로 유지, 관리해 왔지만 거주율이 낮아지면서 유지 관리가 지속적으로 허술해져 한때 34대의 엘리베이터 중 28대가 운행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날로 황폐해져 거주율이 계속 감소하는 악순환을 겪으며 범죄 소굴이 되자 이 같은 문제를 견디다 못한 주정부가 1972년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를 폭파해 해체했다. 1950년대 당시 미국의 주택 정책 입안자들의 주택 공급 대상인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저소득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 부족이 불러온 예고된 실패 케이스로 저소득층 주거 환경 문제는 결국 소득수준 등 제반 사회적 환경이 향상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준다.

이후 프루이트 아이고는 공공 정책에 의한 도시 재건축 실패의 상징이 됐다. 프루이트 아이고 폭파 사건은 미국이 공공임대주택을 포기하는 대신 주택 바우처와 같은 수요자 보조 정책으로 정책 방향을 전면 전환하게 된 배경이 됐다.
‘공공임대주택 30년’…양적 확대→질적 개선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ahnoh05@hankyung.com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공공임대주택 30년 새 패러다임 찾기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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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교언 교수 “대규모 임대 단지 슬럼화 부작용…주택 바우처가 소셜 믹스의 해법”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