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지방 영업점을 위성 사무실로…도쿄에 집중한 인구 밀도 해소할 수 있는 ‘찬스’
‘분산형’ ‘원격형’ 점점 진화하는 일본 재택근무 [글로벌 현장]
[한경비즈니스 칼럼=도쿄(일본) 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일본 기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시장 조사 회사인 제국데이터뱅크가 지난 8월 전국 기업 1만2000개 회사를 조사한 결과 52.7%가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총무성이 2018년 집계한 일본 기업의 재택근무 도입률(19.5%)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도쿄에 있는 기업의 6월 말 재택근무 도입률은 58%로 1년 만에 33%포인트 올랐다.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회사만 느는 게 아니다. 근무 방식 역시 ‘분산형’, ‘원격형’ 등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재택·출근 장점만 결합한 ‘분산형 근무’

일본 통신 장비 대기업 NEC의 계열사인 NEC넷시스아이는 작년 10월 ‘분산형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많이 사는 수도권 7개 지역에 위성 사무실을 열고 ‘사무실과 집’ 등 2개였던 근무 장소의 선택지를 여러 개로 늘렸다. 직원들은 그날 업무 내용에 최적화된 장소를 골라 일하면 된다. 다양한 회사 사람들이 같이 쓰는 공유 사무실과 달리 NEC넥서스아이가 액티비티베이스(AB)라는 이름을 붙인 위성 사무실은 이 회사 직원들의 전용 공간이다. 총무부 소속 다케나가 유미(36) 씨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잡담과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어 출근 근무의 장점도 함께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NEC넷시스아이가 분산형 근무 제도를 도입한 이유도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이점을 조합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2017년부터 5000여 명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도입한 만큼 고립감과 의사소통 부족 등 재택근무의 한계와도 일찍 맞부딪쳤다.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단순 재택근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형태가 분산형 근무다.


도쿄 신주쿠에 본사를 둔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사 무겐업은 원격 근무제를 도입했다. 230명의 직원이 홋카이도에서부터 규슈까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산다. 무겐업 관계자는 “입사 면접을 포함해 단 한 번도 본사에 와 본 적이 없는 직원도 있다”며 “원격 근무 덕분에 우수한 크리에이터를 거주지에 관계없이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가 진화하면서 본점과 지점의 구분도 희미해지고 있다.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은 약 60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지방 영업점에서 일하더라도 본사 소속으로 본사 업무를 보는 ‘원격형 근무제도’ 직종을 내년부터 신설한다. 지방에 거주하면서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지만 총무·인사, 보험금 지급, 보험 계약 관리 등 본사에 소속돼 본사 업무를 처리하는 직군이다.


핀테크 시대를 맞아 골칫거리가 된 지방의 오프라인 영업점을 위성 사무실처럼 활용하면 재택근무 확대와 영업점 축소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메이지야스다의 영업점은 1159개로 손해보험(513개), 은행(474개), 증권사(126개)의 평균보다 2배 이상 많다.
‘분산형’ ‘원격형’ 점점 진화하는 일본 재택근무 [글로벌 현장]
‘도쿄 집중’ 완화 찬스, 정부도 지원

정부도 재택근무의 진화를 거들고 나섰다.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위성 사무실을 운영하는 기업에 법인세와 고정자산세를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방도시에 위성 사무실을 설치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제도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도쿄도는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기업 약 1만 곳에 저금리 융자를 지원한다. 또 주 1회를 ‘재택근무의 날’로 지정해 재택근무 정착을 장려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재택근무에 목을 매는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 방역이다.


코로나19를 완전 박멸하려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코로나와의 공존(with 코로나)을 선택했다. 코로나19의 추적을 사실상 포기한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도쿄에서만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 비율이 60.1%에 달하지만 시스템 미비로 더 이상의 경로 추적이 불가능하다.


올림픽도 중요한 변수다. 새로 들어선 스가 요시히데 총리 내각은 어떻게든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을 치를 계획이다. 전제 조건은 확진자 수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확대해 인원을 분산하고 이동을 제한하면 코로나19의 확산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스가 내각의 계산이다.


일본의 해묵은 과제인 도쿄 집중도를 해결할 기회라는 점도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이유다. 한국의 지나친 수도권 집중도가 비용과 불편함의 문제라면 일본 도쿄의 집중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도쿄에서 30년 이내에 리히터 규모 7.0의 대지진(수도직하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70%로 전망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2만3000명이 사망하고 95조 엔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예상이다.


이 때문에 역대 일본 정부가 도쿄 집중도 완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도리어 도쿄의 인구는 처음 1400만 명을 넘어섰다. 인구의 블랙홀인 도쿄지만 실질 성장률은 0.6%로 전국 평균에 그치고 있다. 후지카와 다쿠미 일본종합연구소 수석 주임연구원은 “노동집약형 서비스업이 많은 것이 원인”이라며 “도쿄의 성장은 인구 증가에 의존해 왔다”고 분석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일본 경제의 핵심 축인 도쿄가 추락한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전망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도쿄도의 80세 이상 인구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수십 년 전 일자리를 찾아 도쿄에 몰려든 젊은 층이 고스란히 고령층이 된 결과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311만1000명으로 도쿄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 사태가 내려진 지난 2분기 고령자들이 집에 틀어박혀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자 도쿄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가 한순간에 감소하기도 했다. 도쿄의 집중도를 완화하지 못하면 일본 경제가 서서히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와 재택근무의 확산은 인구의 지방 이주를 촉진할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고객을 잃은 철도 회사들은 공유 오피스 운영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본업 대신 늘어난 재택근무자들을 역과 호텔로 끌어들여 손실을 만회하려는 전략이다.


일본 최대 철도 회사인 JR동일본은 도쿄역과 신주쿠역 등 주요 역의 역내와 주변에 공유 오피스를 늘려 나가고 있다. 현재 30여 개인 공유 오피스를 1년 내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원래는 거래처에서 일을 마친 후 본사로 복귀하지 않는 영업맨들을 노렸지만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타깃이 바뀌었다.


모두 개별 실 타입으로 넓이 1㎡, 높이 2.2m 규모다. 액정 화면과 와이파이 등 통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용료는 15분당 250엔이다. JR동일본 계열 호텔인 메츠도 공유 오피스로 변신 중이다. 현재 16개 호텔에서 일부 객실에 와이파이 설비 등을 갖추고 시간제 공유 오피스로 활용하고 있다. 요금은 오전 8~12시 2300엔이다. 2025년까지 10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8월까지 15개 역에 부스형 오피스를 설치한 도쿄메트로는 100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게이오전철은 역 주변의 계열 호텔 객실을 1시간 단위로 임대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유통 대기업 도큐도 지난 3월 150개 호텔 지점을 활용해 시작한 공유 오피스 임대 사업을 10월 현재 200곳으로 늘렸다. 2028년까지 10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