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공모주 흥행에도 개미들에겐 ‘하늘의 별 따기’
-장외 시장 K-OTC 거래 대금 첫 1조 돌파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정부의 부동산 규제 등에 따른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연일 주식 시장에 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증시 활황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기준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등 경제 위기 대응책으로 풀린 돈이 주식 시장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상장 전 주식을 거래하는 장외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도 늘고 있다. 하반기 SK바이오팜·카카오게임즈·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의 공모주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지만 개미들에겐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던 때문이다.

공모주 1주를 사기 위해 내야 하는 청약 증거금은 최대 수천만원에 달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개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액수다. 반면 기업 임직원이나 초기 투자자들이 보유한 장외 주식은 증거금 납입 없이 매수할 수 있다. 공모주의 높은 벽을 실감한 개미들이 장외 주식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장외 주식을 매수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K-OTC 장외 주식 시장을 통하면 ‘주린이(주식+어린이)’도 쉽게 장외 주식을 사들일 수 있다. K-OTC 장외 시장 거래가 가능한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뒤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등의 연동을 요청하면 된다. 절차가 끝나면 증권사 HTS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통해 일반 주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K-OTC 장외 시장의 비상장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K-OTC 장외 시장을 취급하는 증권사는 교보증권·대신증권·메리츠증권·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유안타증권·유진투자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카카오페이증권·키움증권·하나금융투자·하이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한양증권·한화투자증권·현대차증권·DB금융투자·IBK투자증권·KB증권·ktb투자증권·NH투자증권·SK증권 등 34곳이다.

장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중개하는 플랫폼도 10여 개로 늘었다. 2014년 8월 출범한 K-OTC는 이들 중 가장 공신력 있는 채널로 꼽힌다. 증권사 HTS 등과 연동되는 플랫폼도 K-OTC가 유일하다. 일대일 상대 매매만 가능한 다른 서비스와 달리 다자간 상대 거래가 가능하다. 중소·중견기업 소액 주주 대상 양도소득세 면제와 증권거래세 인하 등의 혜택도 있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개인이 게시판을 통해 직접 거래 상대방을 찾거나 플랫폼 운영 업체가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 일대일로 연결해 주는 다른 채널과 달리 K-OTC 장외 시장에서는 매도자와 매수자를 자동 매칭해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세메스·SK건설·포스코건설 시총 1조 넘어

K-OTC 장외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된 올해 들어서는 연간 거래 대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0월 15일 1조원을 돌파한 이후 한 달여 만인 11월 23일을 기준으로 연간 거래 대금 1조1194억원을 기록 중이다. 일평균 거래 대금도 2018년 28억원, 지난해 40억원, 올해 50억원으로 지속 증가세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시가총액 증가 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201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14조원대에 머무르던 K-OTC 시총은 11월 23일 기준 16조121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종목별로는 전체 136개 기업 중 시총 1조원 이상 3곳, 5000억원 이상 7곳이다. 11월 23일 기준 세메스(1조2222억원), SK건설(1조2036억원), 포스코건설(1조1246억원), 롯데글로벌로지스(9244억원), 오상헬스케어(9162억원), 넷마블네오(8686억원), 삼성메디슨(7618억원), LS전선(7416억원), 비보존(6033억원), 현대아산(5123억원) 등의 순이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산업군별로 헬스케어 기업과 건설사가 각 2곳, 바이오·반도체·게임·물류 기업 각 1곳 등이 시총 상위에 포진해 있다. 이 중 증권가가 주목하는 곳은 세메스·SK건설·롯데글로벌로지스다.

세메스는 한국 최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일본 DNS가 1993년 1월 설립한 합작사 한국DNS가 전신이다. 2005년 2월 세메스로 사명을 바꿨다. 삼성전자가 2010년 10월 DNS 보유 지분을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91.5%)가 됐다. 지난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1257억원, 영업이익 299억원을 기록했다.

이민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세메스는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던 반도체 웨이퍼 이송 시스템(OHT)을 국산화했고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 OLED) 양산용 잉크젯 프린팅 장비는 미국 카티바를 제치고 완전 국산화하는 성과를 거둔 기업”이라고 말했다.

SK건설은 친환경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면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7월 친환경사업부문을 신설하고 에너지기술부문을 신에너지사업부문으로 개편했다. 9월 1일에는 사모펀드 운용사 어펄마캐피탈과 EMC홀딩스 주식 전량(지분율 100%)을 인수하는 매매 계약(SPA)을 체결하며 친환경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EMC홀딩스는 하·폐수 처리와 폐기물 소각·매립 등의 사업이 주력인 업체다.

박세라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SK건설은 건설사 중 가장 빠르게 환경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왔다”며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을 등에 업고 전통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을 탈피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롯데그룹이 ‘롯데온’을 통해 유통 계열사들의 역량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주목받는 기업이다. 롯데의 유통 사업 부문이 롯데온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택배 사업을 비롯해 국내외 육상·해운·항공 특송 물류업을 주력으로 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속적 투자를 통해 2022년 재무 실적 기준 기업 가치가 5000억~6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추가투자를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기업공개(IPO)와 리츠를 통해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이전 상장을 추진 중인 코로나19 진단 키트 기업 오상헬스케어도 개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8월 14일 한국거래소에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를 청구했다.

오상헬스케어는 혈당 측정기, 측정 센서, 콜레스테롤 측정기, 진단 키트 등을 개발하는 곳이다. 지난해 매출은 573억원, 순손실 42억원이었지만 올 상반기 매출 1609억원, 영업이익 1169억원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6개월 만에 지난해 매출의 약 3배를 달성했다. 3분기에도 매출 801억원, 영업이익 550억원을 기록하며 올해 매출 3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 돌파가 무난해 보인다.

◆장외 주식 시장 과열 조짐에 우려의 목소리도

다만 장외 주식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장 주식은 자기자본 300억원 이상, 최근 연매출액 1000억원 이상 등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K-OTC 종목 지정 주요 요건은 자본 전액 잠식 상태가 아닌 기업, 최근 사업 연도 매출이 5억원 이상인 기업, 감사인의 감사 의견이 적정인 기업 등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장외 주식은 상장 주식보다 투자 손실 위험이 크고 정작 매도하고 싶을 때 거래가 잘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며 “K-OTC는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제도권 장외 주식 시장이지만 규제가 최소화된 시장인 만큼 투자자는 반드시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과 위험성 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협회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줄이기 위해 K-OTC 종목 퇴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종 부도, 피흡수 합병, 영업 전부 양도 등으로 존립이 불가능하거나 자본 전액 잠식 상태에 도달한 기업이 퇴출 대상이다. 최근 사업 연도 매출이 1억원 미만인 기업, 2개 사업 연도 연속 매출이 5억원 미만, 감사 의견 부적정·거절·한정, 결산기 정기 공시 서류·반기 정기 공시 서류 5년간 2회 미제출 등도 퇴출 조건에 해당한다.

금융투자협회는 K-OTC 기업의 정보 제공 등의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이후 매년 ‘K-OTC IR 데이’ 행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15일 열린 올해 행사에서는 아하정보통신·산타크루즈컴퍼니·아리바이오 등이 참가해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알렸다.

남달현 K-OTC 시장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별 조치에 따라 온라인 웹 세미나 방식으로 진행된 올해 행사에는 증권사·자산운용사·벤처캐피털 등 투자 기관 관계자 80여 명이 온라인 화상 시스템에 접속해 K-OTC 기업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기업과 투자자 간 소통의 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한편 K-OTC 장외 시장을 통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하는 기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삼성SDS·미래에셋생명·제주항공·지누스 등이 K-OTC를 거쳐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다. 11월 20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독립법인보험대리점(GA) 업체 에이플러스에셋은 일반 청약에서 24.7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인산가·에이치엘비제약·카페24·파워넷·웹케시·피피아이·서울바이오시스 등은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다.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 10여 개로 늘어

최근 들어선 금융위원회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된 장외 주식 거래 플랫폼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두나무의 ‘증권플러스 비상장’과 코스콤의 ‘비마이유니콘’, PSX의 서울거래소(구 판교거래소) 등이다. 비상장 주식 거래 업무는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금융위가 지난해 4월 1일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하면서 이들 서비스의 출시가 가능해졌다.
상장 전 미리 ‘찜’하자…장외 시장으로 몰리는 개미들
증권플러스 비상장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지난해 11월 삼성증권과 함께 출시한 비상장 주식 거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통일 주권이 발행된 한국 비상장 기업 주식 대부분을 거래할 수 있다. 일별 비상장 주식 거래 현황을 비롯해 인기 검색, 키워드, 거래 기준별 종목 리스트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매매 거래는 삼성증권 거래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두나무에 따르면 증권플러스 비상장 거래 건수는 지난 7월 22일 서비스 출시 약 8개월 만에 1만 건을 기록한 데 이어 한 달 반 만에 1만 건이 추가돼 9월 3일 기준 2만 건을 돌파했다.

비마이유니콘은 지난 4월 코스콤이 선보인 비상장 주식 거래 모바일 앱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결제부터 주주 명부 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다. 비마이유니콘은 거래를 위해 별도로 증권 계좌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게 특징이다. 비마이유니콘 앱이 장외 주식을 매도하려는 주주가 실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 검증해 주면 투자자 간 채팅으로 거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식이다. 이어 일대일 협의 후 온라인 양수도 계약서에 전자 서명하면 은행 에스크로(안심 결제) 계좌를 통해 결제가 진행된다.

매수자 명의로 주주 명부 갱신 등 비상장 주식 거래의 전 과정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하는 한국 유일의 플랫폼이라는 게 코스콤 측의 설명이다.

판교거래소는 지난해 7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PSX의 비상장 주식 거래 모바일 앱이다. 마켓컬리·리디·무신사 등 스타트업의 비상장 주식을 비롯해 2021년 IPO 기대주로 꼽히는 SK바이오사이언스·크래프톤 등의 비상장 주식도 거래할 수 있다. 엔젤 투자자 등 비상장 주식 보유자가 매도 글을 올리면 거래소 측이 실제 주식 보유 여부를 확인하고 매수 희망자가 구매 신청을 하면 플랫폼을 통해 협의하는 식이다. 스타트업 중심의 비상장 주식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PSX는 오는 12월 판교거래소 서비스를 종료하고 서울거래소로 명칭을 바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PSX 관계자는 “서울거래소는 신한금융투자 주식 계좌를 통해 비상장 주식 양도와 결제가 동시에 이뤄지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5호(2020.11.30 ~ 2020.12.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