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세계 최고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자동차·도심 항공 모빌리티·로봇’ 미래 삼각축 완성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현대차그룹이 단숨에 글로벌 로봇 시장을 주도하는 ‘키 플레이어’로 급부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서다. 현대차그룹은 12월 11일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정의선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이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이다. 정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 공언한 로봇 사업이 이번 인수를 계기로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해 10월 임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그룹의 미래는 자동차(50%)·개인항공(30%)· 로보틱스(20%)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단숨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정의선 회장의 로봇 승부수
인수 금액은 8억8000만 달러(약 9558억원)다. 현대차가 지분 30%,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각각 20%와 10%를 보유하기로 했다. 정 회장도 직접 사재 2400억원을 들여 지분 20%를 매입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래 신사업에 대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규모도 역대급이다. 인수 금액은 현대차의 M&A 역사상 둘째로 큰 규모다. 현대차는 올해 미국 앱티브와 자율주행 합작 법인 모셔널을 설립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20억 달러(약 2조1850억원)를 썼다. 현대차는 반드시 로봇 시장을 선점해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5년 후 로봇 시장 193조로 커진다

현대차가 로봇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이 시장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술 발전을 등에 업고 로봇 수요는 빠르게 증가해 왔다. 어느덧 물류·산업 현장 등에서 효율적인 운영을 돕는 ‘필수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약 444억 달러(약 48조 8490억원)로 추산된다. 그런데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시장 규모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비대면이 모든 산업을 관통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른 것이 이 같은 관측을 내놓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더욱 각광받으면서 내년부터 로봇 시장은 평균 32%의 성장세를 기록해 2025년 1772억 달러(약 193조5910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단숨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정의선 회장의 로봇 승부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런 로봇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인정받는 기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였던 마크 레이버트가 1992년 설립해 약 30년 동안 오로지 로봇 연구·개발(R&D)에만 집중해 왔다. 그 결과 로봇개로 유명한 ‘스팟(Spot)’,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는 ‘아틀라스(Atlas)’ 등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그간 개발한 로봇의 모습을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해 왔는데 이때마다 혁신적인 로봇의 움직임이 세간의 주목을 끌며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이런 기술력에 반해 2013년에는 구글이, 2017년에는 소프트뱅크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번에 현대차가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지분 80%를 사들이면서 이 회사를 품은 셋째 글로벌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모든 로봇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를 다투고 있는 기술 기업”이라며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로봇 시장 흐름에 맞춰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로봇 연구만 주력해 온 보스턴다이내믹스

그렇다면 왜 구글과 소프트뱅크는 로봇 시장에서 촉망받는 기업인 보스톤다이내믹스를 매각한 것일까. 그 배경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성 때문이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것은 분명했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를 수익 창출과 연결하기보다 계속해 기술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에만 주력해 왔다. 이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두고 이윤을 내는 기업 보다는 연구 조직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빠르게 로봇을 상업화해 성과를 내기 원했던 구글은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인수 약 3년 만에 소프트뱅크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팔기로 결정한다.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당시 소프트뱅크가 인수에 쓴 금액은 1억6500만 달러(약 1800억원)로 알려졌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매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운영하고 R&D를 지원하는 데 5000만 달러(약 550억원)를 투입하며 미래 로봇 시장 석권을 꿈꿨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경영난이다. 소프트뱅크는 야심차게 추진한 비전펀드가 좋지 않은 성과를 내면서 올해 사상 최악의 실적 성적표를 받아들인 상태다. 실적 개선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낮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결국 현대차에 넘기기로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소프트뱅크로선 현대차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분 80%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현대차로부터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기로 했는데 이는 약 3년 전 소프트뱅크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때 썼던 돈 보다 6배 정도 많기 때문이다.
단숨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정의선 회장의 로봇 승부수
반대로 현대차가 지나치게 큰돈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은 이렇다. 최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 금액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올해를 기점으로 로봇을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올해 6월부터 4족 보행 로봇개로 유명한 ‘스팟’의 상용화에 나섰다. 스팟 로봇은 네 다리로 걷고 장애물을 피하며 스스로 균형까지 잡을 수 있다. 후면에는 별도의 모듈을 장착할 수 있어 가스 누출을 감지하는 등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한 대당 가격은 7만4500달러(약 8200만원)다. 스팟은 현재 건설 현장 모니터링, 가스·석유·전력 설비 감시에 투입되는 성과를 거뒀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까지 스팟은 400여 대가 팔렸다”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3000만 달러(약 33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매출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약 6개월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이 고무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양산 능력을 토대로 한 글로벌 사업 네트워크와 연구·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뒤 로봇 양산화와 수익성 강화를 보다 수월하게 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단숨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정의선 회장의 로봇 승부수
◆우선적으로 ‘물류 로봇’에 집중

그렇다면 현대차는 어떻게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활용할까. 우선 인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내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등 관련 정부 부처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인수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간 독자적으로 축적해 온 현대차의 로봇 개발 역량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로봇을 핵심 미래 혁신 성장 분야로 선정하고 2018년 로봇만을 전담하는 연구 조직인 로보틱스팀을 신설한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로보틱스팀을 실급 조직인 로보틱스랩으로 확대하며 역량을 강화했다. 여기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이 어우러지면 그룹 차원에서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현대차의 판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단기간에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선두 업체를 계열회사로 편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룹 차원의 로봇 신사업이 보다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공개했다. 로봇 산업은 용도에 따라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구분된다. 산업용 로봇은 운반·조립·가공 등 제조 현장의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의미한다. 서비스용 로봇은 의료·군사·구조 등 특수 용도와 상업 용도 그리고 가사·교육·엔터테인먼트 등 개인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개인용 로봇을 지칭한다.


현재 시장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는 산업용 로봇이다. 전체 시장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는 산업용 로봇 중에서도 가장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를 물류로 꼽고 이와 관련한 로봇 시장에 최우선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빠른 배송을 위한 물류 혁신은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로봇을 활용하면 현장·창고 등의 작업을 사람보다 신속하게 진행해 이를 구현해 낼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물류 자동화를 위한 로봇인 ‘픽(Pick)’과 ‘핸들(Handle)’ 등의 로봇을 보유하고 있다. ‘픽’은 고정된 채 움직이는 물류 로봇이다. 딥러닝을 활용해 고해상도의 2차원(2D)·3차원(3D) 센싱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많은 박스들이 쌓여 있는 물류 창고 내에서 분류가 필요한 박스들을 정확하게 찾아내 피킹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움직이는 피킹 물류 로봇인 ‘핸들’은 기존에 물류 창고에서 사용되는 이동형 피킹 로봇들과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뽐낸다. 물품이 쌓여 있는 팰릿을 통째로 옮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팰릿에서 물품을 하나씩 꺼내 예정된 공간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이후에도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해 물류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다는 방침이다. 또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최근 상용화한 스팟을 앞세워 건설 현장, 시설 보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 공급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서비스용 로봇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인간형 로봇으로 불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세우기로 방향을 정했다. 휴머노이드 손과 다리를 사용해 실제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뜻한다. 실제로 상용화되면 환자 간호부터 집안일 등 사람이 하던 다양한 업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미래기술분석센터와 명지대 데이터사이언스 연구실은 2020년대 중반까지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유망 기술에 재생에너지·자율주행 기술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을 선정하기도 했다. 시장 조사 기관 리포트앤드리포트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2023년에 39억 달러(약 4조2600억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숨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정의선 회장의 로봇 승부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해 현대차는 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떠올랐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6년 2족 직립 보행이 가능한 로봇인 아틀라스를 처음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꾸준히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끝에 아틀라스는 지난해 물구나무서기·공중제비 등의 고난도 동작까지 가능할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아틀라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중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봇의 센싱(인지) 기술이 자율주행차나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등에도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만큼 현대차 내부에서는 그룹의 새 비전인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 역시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일고 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8호(2020.12.21 ~ 2020.12.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