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이득 약속하고 풋옵션 가격 과대 산정…딜로이트안진 회계사 3명과 공모 혐의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사옥.
(사진)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사옥.
교보생명과 어피너티컨소시엄 간 ‘주식 풋옵션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이 분쟁의 핵심 쟁점인 풋옵션 행사 가격을 산출한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과 어피너티 관계자들을 기소하면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최근 딜로이트안진의 임직원 3명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딜로이트안진에 교보생명 주가 산출을 맡긴 어피너티와 IMM 등 재무적 투자자(FI) 관계자 2명도 함께 기소했다.

ICC 중재에도 영향 미칠듯

검찰 공소장에 드러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의 범죄 사실은 허위 보고와 부정 청탁 관련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알려졌다. 공정 시장 가치(FMV)를 산정하고 가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검찰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인이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에 유리하도록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딜로이트안진이 제시한 풋옵션 가격도 사실상 어피너티컨소시엄이 결정한 것이라고 봤다.

검찰은 또한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 3인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용역비를 받은 뒤 해당 가치 평가 보고서와 관련한 민·형사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어피너티컨소시엄에서 그 법률비용을 지급받기로 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결국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이 부정한 청탁을 받은 뒤 금품을 수수하고 법률비용에 해당하는 이익을 약속하는 등 어피너티컨소시엄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금전상의 이득을 얻도록 가담했다고 봤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기소가 국재상사중재위원회(ICC) 중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공소 내용이 중재 판정부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있고 형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중재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어피너티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주당 24만5000원, 총 1조2000억원 규모였다. 당시 어피너티컨소시엄과 대주주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매수 청구권(풋옵션) 조항이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말까지 상장을 위해 노력하고 상장이 불발되면 어피너티컨소시엄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교보생명은 오랜 기간 기업공개(IPO)를 준비해 왔다. 이사회를 통해 자본 확충 계획 등을 보고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어피너티컨소시엄도 이사회에 참여해 IPO와 관련한 제반 사항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저금리 기조가 심화되면서 회사의 경영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됐다. 이에 더해 금융 감독 당국이 심화된 자본 규제 도입을 예고하면서 교보생명의 부채 규모가 크게 증가해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교보생명은 이후 주식 시장, 금리 상황, 업계 현황, 규제 환경 등을 면밀히 살펴 IPO의 최적 시점을 저울질했다. 이후 자본 규제 등 불확실성 요인이 다소 수그러든 2018년 8월 IPO 주간사 회사를 선정해 상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교보생명이 IPO 주간사 회사를 선정하고 불과 한 달여 뒤인 2018년 10월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신 회장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했다.
디자인 전어진 기자
디자인 전어진 기자
“1조원의 부정 이득 얻으려고 한 것으로 보여”

어피너티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23일 풋옵션 행사 직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교보생명의 기업 가치 평가를 의뢰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2018년 6월 말의 재무 데이터와 주요 생명보험사의 주가를 활용해 교보생명의 FMV를 산출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산출한 교보생명의 주당 가치는 40만9000원이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어피너티컨소시엄이 주장하는 주당 40만9000원을 적용한 교보생명의 시가 총액은 8조4000억원이었다. 이는 풋옵션 행사 당일 한화생명 시가 총액의 2.1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2012년부터 2018년 풋옵션 행사 당일까지의 기간을 적용했을 때 어피너티컨소시엄이 주장하는 수익률은 67%에 달해 매년 9%의 투자수익률을 달성해야 이룰 수 있는 수치였다. 이를 통해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산출한 FMV가 부풀려졌다는 객관적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어피너티컨소시엄은 FMV를 제시한 이후 제3의 평가 기관을 선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피너티컨소시엄이 제시한 복수의 평가기관 중 한 곳을 선정하게 돼 있어 신 회장에게 현저히 불리한 조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이에 따라 FMV를 제시하지 않았고 어피너티컨소시엄은 ICC 중재 재판을 신청하게 됐다.

교보생명은 중재 국면이 장기화하며 평판 저하 등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교보생명은 결국 2020년 4월 분쟁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가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미국회계감독위원회에도 고발장을 제출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다양한 기업 가치 평가 방법론 중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을 취사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상대 가치 평가법을 사용했는데 피어그룹으로 삼성생명·한화생명·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을 포함했다. 당시 ING생명은 인수·합병(M&A) 이슈가 불거지며 주가가 상승세를 보였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어피너티컨소시엄이 2012년 교보생명의 지분을 사들일 때도 가치 평가 업무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때는 한화생명만을 피어그룹으로 선정했다. 풋옵션 행사일인 2018년 10월 23일의 주가가 아닌 2017년 6월~2018년 6월까지의 주가를 사용한 것이다. 저금리·저성장 등이 심화하며 생명보험사의 주가는 2017년 말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이에 따라 풋옵션을 행사하기 훨씬 이전 시점인 6월 말의 주가를 활용해 10월까지의 주가 하락분을 상쇄하려고 한 것으로 분석된다. 풋옵션을 행사하던 시점에는 당시의 주가나 시장 상황, 투자 심리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6월 말을 기점으로 직전 1년의 주가를 활용한 것이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특히 성명서 발표를 통해 교보생명이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6월 말의 수치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법조계 관계자는 “주가는 교보생명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공개된 만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자료”라며 “이를 통해 산출한 교보생명의 주당 가치는 40만9000원으로 과대평가된 수치를 가지고 1조원에 달하는 부정 이득을 얻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피너티컨소시엄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FMV를 조작하기 위해 긴밀하게 공모했다는 점은 검찰이 이들을 공범으로 기소함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검찰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FMV 산출 과정에서 어피너티컨소시엄의 부탁을 받고 이익을 얻은 정황이 있다고 판단해 1월 18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명과 함께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의 임원 2명을 공범으로 기소해 재판에 회부했다. 베어링 PE의 임원 1명은 해외에 체류 중이어서 기소가 중지된 상태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