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화폐 가격 추종, 가격 안정화가 목표...‘1코인=1달러’ 유지하는 다양한 메커니즘 시도 잇달아

[비트코인 A to Z]
‘1코인=1달러’...새롭게 떠오르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나 한국 원화와 같이 각 정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법정 화폐의 가격을 추종하는 암호 자산을 의미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블록체인 인프라 위에서 법정 화폐 등가물을 거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중앙화된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도 비트코인이나 이더와 같은 암호 자산을 달러 단위로 거래한다거나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달러 단위로 거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테이블 코인을 해외 송금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하나의 법정 화폐를 다른 화폐로 바꿔 해외로 송금하는 데는 여러 번거로운 절차와 비용이 초래된다. 중간단계에서 수수료를 떼는 금융회사도 한둘이 아니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면 이러한 절차를 간소화해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송금 절차 간소화 가능한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는 법정 화폐를 담보물로 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가장 큰 발행량과 거래량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테더가 발행하는 USDT와 서클이 발행하는 USDC가 대표적이다. 다른 방식은 암호 자산을 담보물로 하는 것이다. 이더(ETH) 등을 담보로 하는 메이커다오(MakerDAO)의 다이(DAI)나 우마(UMA)의 uUSD가 대표적이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최근 들어 많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그 가격이 추종 자산(Peg) 대비 높거나 낮을 때 미리 정해진 수학적인 알고리즘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처음 대중에게 제시된 것은 2017년이다. 미국 뉴저지의 베이스코인(Basecoin)이라는 스타트업은 이러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아이디어를 공개하며 크게 주목 받았다. 특히 2018년 4월 배인캐피털·라이트스피드·앤드리슨 호로위츠 등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에게 1억3300만 달러(당시 약 1500억원 이상)를 유치하면서 더욱 큰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곧이은 2018년 12월 ‘규제상의 제약 조건’을 이유로 팀은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팀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고 오로지 팀 스스로의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규제 기관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주를 이뤘다.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관심이 꺼지고 커뮤니티에서 거의 잊혔을 2020년 9월 엠티셋달러(Empty Set Dollar)라는 익명 개발팀 주도의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엠티셋달러를 이해하려면 먼저 베이스코인의 최초 아이디어를 이해해야 한다. 베이스코인에는 총 세 개의 토큰이 존재한다. 1달러에 연동돼 가격을 유지하는 스테이블 코인, 프로토콜의 시뇨리지(화폐 주조 차익)를 나눠 받는 셰어 토큰 그리고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때 발행되는 본드 토큰이 바로 그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이 1달러보다 높을 때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추가 발행한다, 추가 발행한 토큰은 셰어 토큰의 보유자들에게 분배되고 이것이 시장에 풀리면서 스테이블 코인 가격이 1달러에 맞춰진다.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을 때는 가격을 높이기 위해 미래에 1개의 스테이블 코인을 받을 수 있는 본드 토큰을 추가 발행하고 이를 1달러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 그리고 추후에 다시 스테이블 코인이 1달러보다 비싸졌을 때 추가로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본드 토큰 보유자들에게 스테이블 코인을 선분배하는 방식이다.

엠티셋달러는 모델의 단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종류의 토큰만 발행한다. 1달러에 연동돼 교환의 매개가 되는 ESD라는 토큰이 있고 이 토큰을 시스템에 스테이킹해 두면 이것이 셰어 토큰처럼 동작한다. 즉, 신규로 발행되는 ESD는 ESD를 스테이킹하고 있는 계정들에 분배된다. ESD가 1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때의 메커니즘은 베이스코인과 동일하다.

무절제한 통화 팽창, 실 사용처 부재 등 걸림돌

익명의 개발팀이 시작한 엠티셋달러는 페어런치(팀이나 기관투자가가 토큰을 미리 분배받거나 사전 채굴하지 않고 커뮤니티 참여 방식으로 토큰 분배를 시작하는 페어런치) 콘셉트로 출시해 더욱 큰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었다. 자발적으로 엠티셋달러의 기획·개발·개선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개발자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엠티셋달러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이스코인의 기본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한 베이시스 캐시(Basis Cash)부터 이를 폴카닷에 구현한 폴카캐시(PolkaCash),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을 미국 달러에 연동하지 않고 금값에 연동한 베이시스 골드(Basis Gold), 이더와 같은 담보를 허용하면서 무제한 통화 팽창이 가능한 페이 프로토콜(Fei Protocol)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볼 때 이들 알고리즘 스테이블 프로젝트들은 포부에 비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선봉장 격인 엠티셋달러의 ESD 토큰은 1달러와 같은 가격을 가지도록 설계됐지만 현재 가격은 0.3달러 이하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베이시스 캐시의 스테이블 코인인 BAC는 0.5달러 수준이고 비교적 늦게 등장한 리플렉트 캐시(Reflect Cash)의 스테이블 코인은 0.006달러 만큼 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이들이 잘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절제한 통화 팽창이다. 네트워크 초기에 참여한 사용자들에게 주식 성격의 토큰을 분배하는 일드 파밍 개념을 도입하다 보니 이들 프로젝트는 초기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모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기는 이들이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의 과평가로 이어졌다. 1달러를 목표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인데 가격이 100달러가 넘기도 했다.

스테이블 코인 가격의 과평가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의 폭발적인 팽창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둘째 문제점이 등장하는데 바로 실사용 사례의 부재다. 이제 등장한 지 한 달 남짓된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처로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다양한 디파이, 게임 댑(Dapp : 분산형 애플리케이션)들에서 사용할 수 있거나 중앙화된 거래소에서 다른 암호 자산과 페어로 거래할 수 있다면 실사용 사례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팽창된 통화가 갈 곳을 잃게 된다. 갈 곳을 잃은 화폐들은 다시 거래소에서 매도되기 시작하고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은 1달러 밑으로 떨어진다. 이때 이들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것이 본드의 개념인데 이 불완전성이 셋째 문제다. 가격이 심하게 떨어지는 토큰에 이자를 얹어 주는 대신 스테이킹을 하라는 것인데 이는 가격 변동의 임계치를 벗어나게 되면 아무런 힘을 못 쓰는 장치가 된다. 담보물이 없는 한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는 좋지 않지만 이 방향으로 실험해 보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담보물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스테이블 코인들은 구조가 매우 복잡하거나 1달러 연동을 유지하기 위한 차익 거래 경로들이 잘 설계돼 있지 않거나 특히 수요가 증가했을 때 적극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통화 팽창 측면에서 약점들을 보여 왔다.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 가지는 구조적 단순성과 통화 팽창의 용이함을 잘 살리는 한편 담보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을 융합한다면 새로운 방향의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경진 해시드 심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