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퇴임 후에도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건재’…중도층 이탈은 딜레마
[글로벌 현장] 미국 상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 후 공화당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 지지층 다수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버리기 어렵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계속 붙들고 가자니 중도층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중간 선거와 2024년 대선에서 상·하원과 백악관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냐, 탈트럼프냐’를 두고 ‘노선 투쟁’이 달아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트럼프 둘러싸고 공화당 ‘노선 투쟁’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상원의 탄핵안 부결 하루 만인 2월 14일 폭스뉴스선데이에 출연해 “트럼프 플러스(전략)가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을 재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를 기본으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ABC뉴스에 나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힘이 사그라들고 있다”며 “공화당은 단지 한 사람 이상(의 정당)”이라고 했다. ‘트럼프 손절’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공화당 1인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2022년 중간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중간 선거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손잡겠지만 불리하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절연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전날 탄핵안 부결 후 연설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날 (1월 6일 의사당 폭동) 사건 유발에 실질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민간인이 된 전 공직자에게 유죄 선고를 내릴 권한이 우리에겐 없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친트럼프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퇴임했기 때문에 탄핵 대상이 아니라는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지도부가 당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래 영향력, 특히 2022년 상·하원 선거 캠페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역할을 두고 분명하게 갈라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공화당의 분열은 탄핵안 표결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2월 13일 탄핵 심판에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50명 중 미트 롬니, 리사 머코스키, 수전 콜린스 등 7명이 ‘반란표’를 던졌다.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외국 정부의 대선 개입 유도 의혹)’로 처음 탄핵 소추됐을 땐 상원에서 공화당 이탈표는 한 명뿐이었는데 이번엔 그 수가 대폭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상원의 탄핵 심판 역사상 대통령이 속한 정당 의원들이 던진 유죄 투표로는 가장 많은 숫자”라고 전했다. 하지만 나머지 공화당 상원의원 43명은 탄핵에 반대했다. 공화당 지도부에서도 탄핵 찬성표가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안은 상원에서 탄핵 정족수(67명 이상)를 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대선에서 패하고 소셜 미디어의 메가폰을 뺏기고 하원에서 다시 탄핵당하고 일부 공화당 내 반대 세력으로부터 대통령 취임 선서를 위반했다고 비난받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우파 정치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지지층 다수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몸 푸는 트럼프, 변수는 검찰 수사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1월 10~13일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8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대선 전 지지율인 89%와 별 차이가 없었다. 여론 조사 기관 갤럽의 1월 조사에서도 공화당 지지층의 82%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몬머스대의 최근 조사에선 공화당 지지층의 72%가 ‘지난해 대선에서 부정 선거 때문에 졌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 조사 기관 해리스X의 1월 조사에선 공화당 지지자의 64%가 ‘트럼프가 신당 창당을 주도할 경우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공화당이 섣불리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지 못하는 배경이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선거에서 막대한 대중 동원력을 과시했다. 공화당이 내년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의 투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화당으로선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동거’를 ‘필승 카드’라고 낙관하기도 힘들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밀착할수록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미 2020년 대선과 올해 1월 5일 조지아 주 상원 결선 투표에서 완패하면서 이를 절감해야 했다.
특히 의사당 폭동은 공화당으로부터 중도층의 이탈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AP통신은 공화당 다수의 반대로 부결된 이번 탄핵 심판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 반대자 쪽에선 이번 투표 결과는 (공화당이) 중도층·여성·대졸 유권자와 다시 연결하려는 희망이 거의 없고 당을 위험한 방향으로 더 휘청이게 하는 경고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올인’했다가는 2022년 중간 선거와 2024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다시 패배를 반복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매코널 원내대표와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4년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린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회복하는 동시에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배하는 정당을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의 칼날’을 피하자마자 다시 ‘몸 풀기’에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안 부결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 역사상 최대 마녀 사냥”이라며 탄핵 심판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는 아름다운 운동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일부 지역의 공화당 조직은 ‘탄핵 찬성파’ 공격에 나섰다. 2월 1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루이지애나 주 공화당 집행위원회는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빌 캐시디 상원의원에 대한 불신임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마이클 와틀리 노스캐롤라이나 주 공화당 의장은 지역구의 리처드 버 상원 의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데 대해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고 비난했다.
내년에 중간 선거 때 정계를 떠나는 버 상원 의원의 지역구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며느리 라라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폭스뉴스선데이에 “이번 탄핵 심판의 최대 승자는 라라 트럼프”라고 말했다. 로런스 타바스 펜실베이니아 주 공화당 의장도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지역구 팻 투미 상원 의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탄핵 심판을 ‘위헌적 시간과 에너지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내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위해선 각종 검찰 수사의 벽을 넘어야 한다. 워싱턴D.C. 검찰과 연방 검찰은 지난달 의사당 폭동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폭력 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아 주 풀턴 카운티지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패배 후 조지아 주 국무장관에게 전화해 ‘조지아 주에서의 대선 패배 결과를 뒤집을 표를 찾아내라’고 압박한 것을 조사하고 있다. 당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조지아 주 국무장관에게 ‘부재자 투표를 무효로 해 달라’는 압력성 전화를 걸었다. 뉴욕 맨해튼지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맨해튼 부동산 관련 금융 거래를 조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핵의 칼날’은 피했지만 검찰 수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려고 할 수도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것을 예상하고 ‘플랜 B’로 수정헌법 14조를 적용하는 방안을 거론해 왔다. 수정헌법 14조는 내란 연루자의 공직 출마 등을 금지한 조항이다. 상·하원에서 각각 과반수가 찬성하면 적용할 수 있다.
워싱턴(미국)=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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