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포스코, 사회적 가치·기업시민 경영 철학 공통분모
'미래 사업' 전기차 배터리 소재·수소 사업 시너지 주목

[비즈니스 포커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9년 12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기업시민 포스코 성과 공유의 장' 행사장에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오른쪽)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9년 12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기업시민 포스코 성과 공유의 장' 행사장에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오른쪽)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삼성·현대차·SK·LG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등 미래 사업을 위해 직접 회동하며 전략적인 협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재계 리더들의 만남이 있었다. 최태원 SK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만남이다. 두 회장은 지난 1월 29일 경북 포항시 송도동에 있는 한 소규모 식당에서 만나 ‘희망 나눔 도시락’을 함께 만들고 사회 취약 계층에 직접 전달하는 합동 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이날 봉사 활동은 최태원 회장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과 포스코가 각각 ‘사회적 가치’와 ‘기업시민’을 추구하는 만큼 두 기업의 총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두 회장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태원 회장이 2019년 12월 포스코의 행사에 참석해 ‘사회적 가치와 기업시민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했던 인연이 있다. 최태원 회장의 강연에 화답하듯 최정우 회장은 2020년 9월 열린 SK그룹이 주도하는 사회적 가치 축제인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20' 행사에 직접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SK그룹과 포스코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전기차 배터리, 수소 등 경영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에 대해 공통분모가 있는 만큼 이날 봉사 활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양 사 모두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고 최태원 회장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단독 추대된 만큼 회장 취임에 앞서 포스코와 함께 상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에서는 그 무엇보다 두 회장의 만남이 향후 SK그룹과 포스코의 본격적인 사업 협력을 위한 신호탄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양 사가 신성장 동력으로 수소와 전기차 관련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실제 양 사가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서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서 가동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서 가동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총수 회동, 배터리에서 결실 보나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포스코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SK넥실리스·SK실트론 등이 각각 배터리·동박·실리콘카바이드(SiC·탄화규소) 웨이퍼 등 전기차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지주사 SK(주)를 통해 실리콘카바이드 전력 반도체를 생산하는 예스파워테크닉스 지분 33.6%를 인수해 전기차용 전력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고성장과 생산 체계 안정화를 통해 2020년 처음으로 배터리 사업에서 1조6102억원이라는 조 단위 매출을 달성했다. 2021년에는 배터리 사업에서 매출 3조원을 돌파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에코프로비엠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미국·헝가리·중국 등 해외 생산 거점을 늘리면서 안정적인 배터리 소재 공급을 위해 공급사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의 셋째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7’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업의 성장세에 따라 배터리 소재 공급사 확보 차원에서 다른 공급사와의 협업이 예상된다. 바로 이 새로운 공급사로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코케미칼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리튬·니켈·흑연 등 원료부터 양극재와 음극재까지 이차전지 소재 일괄 공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차전지 소재 원료 공급부터 생산까지 밸류 체인을 구축한 기업은 포스코케미칼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포스코케미칼은 전기차 시대가 개화하면서 2020년 매출액 1조5662억원을 달성해 창사 이후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전기차 배터리 필수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매출이 전년 대비 144% 성장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포스코케미칼의 전체 사업에서 이차전지 소재가 차지하는 매출 비율도 15%에서 34%로 확대되며 명실상부한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포스코케미칼은 올해 1월 유상 증자를 통해 확보한 1조2735억원으로 국내외 이차전지 소재 생산 시설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주 고객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에 양극재 공급도 확대한다. 포스코케미칼은 이를 위해 전남 광양에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양극재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얼티엄셀즈에 음극재 공급도 협의 중이다.

SK그룹과 포스코의 사업 협력이 실제 이뤄진다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케미칼이 SK이노베이션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포스코케미칼은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를 고객사로 두고 양·음극재를 납품하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에는 음극재만 공급하고 양극재는 아직 공급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케미칼도 LG에너지솔루션에 집중됐던 수요처를 다변화하고 있어 SK이노베이션에 양극재 공급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월 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한 식당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도시락 만들기 봉사활동을 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서로 조끼로 바꿔입은 모습. /연합뉴스
1월 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한 식당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도시락 만들기 봉사활동을 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서로 조끼로 바꿔입은 모습. /연합뉴스
‘수소 동맹’ 가능성도
친환경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 받는 수소 사업에서도 다각도로 협력할 여지가 많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2050년 전 세계 수소 경제 규모가 2조5000억 달러(약 28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그룹과 포스코는 대기업 중에서 현대차그룹과 함께 수소 사업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SK그룹은 수소 유통과 공급에 강점이 있고 포스코는 현재 7000톤의 부생수소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어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이 용이하다.

SK그룹은 2020년 말 SK이노베이션과 SK E&S 등에서 전문 인력들을 꾸려 수소 사업 전담 조직인 ‘수소사업추진단’을 신설해 수소 생태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단순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과 판매까지 아우르는 밸류 체인의 완성이 목표다. SK E&S를 중심으로 2023년부터 연간 3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 생산 설비를 건설해 수도권 지역에 액화수소를 공급하고 2025년부터 25만 톤 규모의 블루 수소(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한 수소)를 추가 생산할 방침이다. 올해 1월에는 수소 핵심 기술을 보유한 미국 플러그파워에 1조6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9.9%를 확보하는 등 수소의 생산·유통·공급까지 가능한 수소 밸류 체인을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이 추진 중인 비철강 사업 확대의 핵심으로 수소·배터리 등 미래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 12월 그린 수소 선도 기업이라는 비전을 공개하고 2050년까지 수소 500만 톤 생산 체제를 구축해 매출 30조원을 달성해 탈탄소 시대를 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포스코는 현대차그룹과 수소전기차와 수소 연료전지 발전 사업 등 수소 사업 협력을 추진하는 ‘수소 사업 협력에 관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수소 사업을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과 함께 미래 사업의 핵심 축으로 키우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 외에도 다른 기업들과 사업 협력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